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들 한다. 많은 부분 그것은 옳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차 산업 부산물, 재료, 원료 등의 경우 눈에 확 보이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그저 흘러가면서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정보에는 불균형이 존재하고, 거래 비용도 있다. 또 담합이나 독점도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냐, 싶지만 요즘 거대 다국적 기업이나 거대한 권력은 손가락으로도 하늘 정도는 쉽게 가릴 수 있다.
덕분에 아디다스의 구형 유로파나 나이키의 고추장 에어 포스같은 나름 사연들이 있는 아이템들도 존재한다. 여기에 아디다스나 나이키가 개입하고 있느냐는 모르겠다.
모델들을 돌려가면서 PPL이나 광고, 연예인 손목에 채우는 롤렉스는 중고 가격에 명백히 개입하고 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모델들이 유행의 흐름을 타는 브랜드도 드물다. 샤넬 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가며 중고 가격을 유지시킨다. 물론 이건 수요가 확보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 여기에는 다음 시즌에는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갈 것이다라는 구매자들의 예상도 함께 개입되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 원래 잘 만들어진 고급품은 계속 가격이 비싸다. 고려 청자는 고려 중기에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그릇이었고, 지금은 아무도 쓸 수 없는 그릇이 되었다. 당시에 고려 청자 장인이 브랜드를 만들었다가 1000년 쯤 지나서 망해버렸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고려 청자에는 브랜드나 만든 이의 서명 같은 건 없다.
갑자기 가격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본 두가지 이야기 때문.
우선 체리. FTA로 체리 가격이 내릴 거라는 신문 기사가 널리 회자되었다. 안타깝게도 관세 하락 따위가 가격을 내리지는 못한다. 이건 대체재와도 관련된 문제다.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의 수요가 한정적이라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게 어느 정도 시장 안에 파고 들어간 이후라면 미국산 소고기를 호주산이나 뉴질랜드 산보다 아주 낮게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마진만 높아진다.
체리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딱히 체리 없으면 못사는 필수재도 아니고, 대체재도 많이 있다.
그 다음 에르메스. 가끔씩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에서 에르메스 가방 가격이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 버킨, 3500만원. 뭐 이런 건 화제가 되기 충분하다.
이건 뭔가 좀 더 복잡하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대충 이야기해 보자. 우선, 에르메스는 아주 훌륭한 가죽 구입 루트를 세계에 확보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좋은 품질의 가죽은 가죽 업자가 직접 쓸 게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에르메스로 흘러들어간다. 이건 에르메스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이런 확보 비용들은 고스란히 가방 값으로 전이된다.
예전에 로로 피아나의 베이비 캐시미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가죽이나 원단 이런 걸 중시하는 회사들의 재료 확보에 대한 집착은 나름 대단하다.
그리고 에르메스에는 어셈블 라인이 없다. 혼자 만든다. 에르메스의 모든 제품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버킨이나 켈리같은 가방은 혼자 만든다. 혼자 만들고, 만든 사람의 이름을 넣어둔다.
왼쪽의 69E가 만든 사람 표시다. 오른쪽 네모 L은 만든 연도로 2008년 생산분임을 알려준다. 버킨백을 혼자 만드는 광경은 시범이지만 여기(링크)서 볼 수 있다. 에르메스 장인은 에르메스가 세운 가죽 학교 출신으로 뽑는다.
이름을 새겨 놓는 이유는 뭐냐하면, 가방을 만들 때 가죽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만든 사람이 나중에 수리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 가죽을 가지고 직접 해준다(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말하자면 평생 책임제 비슷한 거다. 만든 사람이 은퇴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자 이렇게 해서 3,500만원이다. 비싸냐 하면 물론 비싸다. 가죽으로 할 수 있는 최고로 비싼 것들을 합쳐 놓은 다음에 최고로 비싸게 받고 있다. 과연 소나타 값 정도 되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는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벤츠 값 정도 되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는 남자도 있는 게 세상이다.
에르메스는 이렇게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
뭔가 이런 걸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용이 이상해졌다... -_-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