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6

영화 풍산개를 보다

영화 풍산개를 봤다. 김기덕이 각본, 제작을 했고 감독은 전재홍. 김민선은 왜 이름을 김규리로 바꿨을까. 김규리라는 배우 원래 있잖아.

영화는 꽤 재미있다. 분명 김기덕스럽지만, 그렇게까지 지글지글거리는, 보는 사람이 짜증나고 난처해지는 막장의 지점으로 돌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김기덕스럽지 않다. 장철수나 장훈 감독 등과는 조금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김기덕의 영향력이 보다 크게 느껴지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다.

거의 정보가 없이 봤기 때문에 (나는 풍산개가 한 번은 나올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_-) 김기덕이 깊숙히 관여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토요일 오후가 너무 우울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았다. 주제가 性이나 관계의 (구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뭐 그다지 복잡한 점은 없으니 관두고, 어쨋든 김기덕 감독 이야기나 좀 더 해보자.

김기덕 류의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지글거리는 것들 빼고, 개인적으로는 투박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이다. 비무장지대를 왔다갔다 하는 방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과 작가가 고민하며 과정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뭐랄까, 웃음이 나온다.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건 수취인 불명에서 논바닥에 거꾸로 쳐박혀있던 양동근의 모습이다. 김기덕의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 장면하고, 역시 수취인 불명에서 조재현이 개 때리는 장면, 해안선에서 장동건이 어리버리한 표정 짓는 장면, 그리고 그외 또 여러가지 잔상들이다.

예전 영화들에서도 알아듣기 쉽지만, 쉽게 발상하기 어려운 기발한 상상의 결과들이 꽤 있다. 그런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사람 은근히 참 재미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지글거리는 것들 때문에, 알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정면에 내놓는 탁월한 기술, 김기덕의 영화를 보는 건 그 자체로 매우 끔찍한 경험이다. 그로 인해 정화되는 일종의 감정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참 어렵다.

김기덕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로메로는 좀비 영화를 계속 만드는 거고, 김기덕은 짜증나고 끔찍한 영화를 계속 만드는 거고, 그걸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고 그러는 거지 뭐.

 

어째든 김기덕 사단(이제는 그렇게 불러도 충분할 만큼 류가 형성되고 있다)은 이렇게 또 범위를 확장해 나아갔다. 예전에 허지웅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는 김기덕은 지금처럼 이단아, 혹은 칸느에서 상을 많이 받는 감독 정도로 불리는 대신에, 뭔가 완전히 다른 밸류의 수사가 붙어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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