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9

경계

몇 년을 돌아다닌 조막만한 동네 뒷산에도 안 가본 길이 있었다. 사람의 경로 의존성이란 이렇듯 바로 코 앞에 있는 것들도 못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곳에 있었다고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같은 것을 보면서도 나중 이야기가 다르다. 서로 다른 삶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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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급격하게 경사를 이루는 곳에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법인 소유의 공원과 분리시키기 위해 철망이 쳐 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그냥 철망만 있는 게 아니라 곳곳에 철조망도 둘러져 있었다.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집들에 사람이 흔적이 있는 곳도, 베를린 장벽 다큐멘터리에서나 본 듯한 벽만 남아있는 집들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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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이렇게 나온다. 지도로는 경계가 모호해 보이지만 가보면 매우 확실하다.

 

동네가, 내가 지금 사는 곳 만큼이나 갑갑하다. 이런 곳들에는 주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다.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화분들도 늘어서있고, 빨래도 곱게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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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에 사람들의 귀여움을 잔뜩 받으며 놀고 먹는 고양이가 하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접근했고, 그나마 안전한 지역이라(학교) 사람들이 가져다 준 집에서, 사람들이 가져다 준 고양이용 밥을 먹으면서 산다.

그런데 산을 넘어가다가 똑같이 생긴 고양이를 만났다. 어, 이 놈이 왜 여기 와있지 했는데 사람들이 버리고 간 닭 뼈들을 뒤적거리다 잔뜩 경계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냥 동네 고양이는 다 비슷하지 그런게 아니라 정말 닮았다.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그제서야 제 할 일을 한다. 가만히 보니 몸이 약간 더 크다. 조미료와 소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길고양이들은 몸이 붓고(그래서 잘 먹어서 띠룩띠룩 살쪘다는 오해를 받는다) 신장이 안좋아져 일찍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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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가는 비가 올때마다 왼쪽 건물이 눈에 띄게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리는데 그래도 안없어지고 몇 년째 버티고 있다. 그 동안 고양이 가족들이 사는 모습도 봤고, 누군가 잠깐 사는지 빨래가 널렸다가 사라지거나 하는 모습도 봤다.

뭐 여기 역시 그런 곳이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파고 들어갈수록 갑갑해진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사는 거고, 알면 또 아는 채로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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