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기본적으로 인기 투표와 다를 게 없다. 여기서 투표의 유인은 기본적으로 원하는 사회, 원하는 세상 뭐 이런 것이고 그걸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뽑게 된다. 이게 분명 한때는 유효했다. 하지만 정치가 커버하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고 거기에 외교 등등으로 복잡하게 나아가면서 이 모두를 이해하는 사람은, 심지어 선거에 나간 후보자 자신마저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할 수는 없어졌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한계상 불가능하다.
지능이나 감각에 따라 많은 부분을 커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이게 복잡해질테니 그 한계는 점점 더 명백해지기만 할 거다.
물론 정치적 감각, 옛날 왕의 태도, 기본 원칙 같은 게 있을 순 있다. 다른 프로페셔널들이 그렇듯 정치 전문가는 일반인과 다르겠지만 아무리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마라톤 코스를 10분에 뛴다든가 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의 한계가 있고 그러므로 이런 것들의 결국 양의 차이다. 위에서 말했듯 별다른 일이 없다면(핵전쟁으로 구석기 시대로 회기한다든가 하는 별다른 일) 더 간단해 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프로 정치인들이 그런 판에 유권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분야 분야 더 잘 아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건 히틀러가 무선으로 전방의 중대장에게 직접 명령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여튼 그런 이유로 어디에 투표를 하느냐는 점점 더 취향의 영역이 되어간다. 어차피 완전한 건 없다. 무얼 보고 투표를 하느냐는 점점 더 멋대로가 된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사회 같은 전통적인 유인이 유효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이 미래를 볼 지 모르거나, 무지하거나, 생각이 짧거나 (그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는 책임 만으로 돌릴 수 없다.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서, 투표의 전통이 오래된 서구 국가들의 근래 추세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 이해가 쉽고 자기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지금처럼(보다 강화된 현 상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놓치지 않도록 하는) 살게 해준다는 이를 지지하는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냥 재밌어서, 잘 생겨서, 예뻐서 같은 이유가 본격적으로 부상할 날이 멀지 않은 거 같다.
여튼 분명 언제가는 대가를 치룰 거 같지만(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대가를 치룬 이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게 당장은 아니고, 하지만 어차피 올 거 같으니, 그때까지 괜히 어려운 일을 생각하지 않고(민주주의는 상당히 피곤한 이성의 각성과 유지를 필요로 한다) 신나게 지금의 주도권을 즐기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즉 지금의 선거 제도에 이제 더 이상 희망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선거로 뽑히는 사람의 권한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올바른 건 아니다. 분산된 책임은 어딘가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막기 위해선 (책임이 한 곳에 몰려 있는 현 상태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그리고 주도하는 자가 없다면 사회 개혁, 의식의 개혁은 더 어렵고 제도화는 더 느려질 거다. 차별 방지법 같은 건 우리 상황에서 비등비등한 결전이 벌어질 때 얻어낼 수 있다. 이번엔 글렀고 아마 다음 총선 때 정도 기대해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권한이 집중된 선거 제도 덕을 봐야 한다고 할 수 있는 데 이런 거 마저 없다면 모멘텀을 만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기차 시간표처럼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이 분명 필요한 데 권한이 없이 그런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봐도 전체적으로 희망은 없다...
뭐 요즘 드는 생각은 이런 대가를 치루는 때와 인공지능에 터닝 포인트가 오는 시점이 겹치면서 SF에서 보던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실제로 올 수도 있겠다... 는 정도. 이렇게 오늘의 암담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좀 희망적인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있긴 있다) 다음 기회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