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2

방의 열기

방의 열기는 오전 정도는 버틸 만 하다. 하지만 오후 4시 쯤부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후(방 창문이 서향이다) 덥혀진 열기는 밤을 지내도록 식지 않는다. 물론 예전 살던 곳보다는 훨씬 낫다. 거기는 건물이 부실해 건물 채 덥혀진 다음 여름이 다 가도록 식지 않아서 비만 기다리면서 살았다. 물론 막상 비가 내리면 창문을 열 수가 없어서 더 더워진다.

여튼 방에서 열기를 내뿜는 물건들이 몇 있다. 컴퓨터, 외장 하드, 책상 스탠드... 스탠드가 쓰리엠 구형 삼파장인데 은근히 뜨겁다. 여튼 열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방은 금새 열기에 휩싸인다.

답답한 김에 잠시 밖에 나갔다 왔는데 오늘은 전혀 바람이 불지 않는다. 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다. 모기들이 살기 꽤나 좋아 보이고 모기들이 달려들기도 꽤나 좋아 보인다. 쓰레기 모아 놓는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가만히 살펴봤더니 흑백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아직 아기다. 2미터 접근까지는 그냥 자기 할 일만 했는데 그 이상은 보니까 무리다.

저 놈의 어미로 추정되는 흑백 고양이를 집 뒤 공원에서 본 적 있다. 공원 다음은 산이고 이제 그걸로 서울 도심은 끝이 난다. 경계 수준이 낮아 보이길래 같이 놀아 볼까 싶어 오리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접근했지만 실패했었다. 길고양이들은 모른 척 하고 있는 게 재미있다. 신경쓰고 있는 걸 빤히 아는데 모른 척 한다.

물론 나 역시 주변 어딘가 곰이 있다면 그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신경 쓰지만 모른 척 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올 궁리를 하게 될 거다. 곰을 만났을 때 대처법 안내문을 보면 눈을 마주치지 말고 + 몸을 돌리지 말고 + 가능한 살금살금(곰의 관심을 끌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빠져 나오라고 되어 있다. 

뛰어 봐야 곰이 더 빠르고, 나무도 곰이 더 잘타고, 수영도 곰이 더 잘하고, 힘도 곰이 더 세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총이나 혹시 있으면 모를까 승산이 전혀 없으므로 곰이 나에게 관심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 뿐이다. 그러므로 저 고양이도 적당한 거리 상황에서 적절한 대처를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곰을 만나기 전에는 아예 가방에 방울 같은 걸 메달아서 요란하게 다니며 알아서 안 만나게 하는 게 최상이라고 한다. 혹시 일본 정도라도 등산 가실 예정이 있는 분들은 참고...

요새는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뭔가 아주 강력하게 먹고 싶어진다. 며칠 전에는 계속 김치찜 생각을 했고, 또 며칠 전에는 계속 스테이크 샐러드 생각을 했다. 어떤 날은 타코 와사비가 머리를 멤돌고, 또 어떤 날에는 김치찌개나 새우 튀김 생각을 한다. 오늘은 토마토 소스를 넣어 만든 오무라이스다. 매우 구체적으로 생각나고 만드는 방식, 먹는 방식, 어떤 맛일지를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내일 일어나면 바로 만들어 먹어야지 하고 결심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입맛은 제로. 라면 끓여먹는 것도 귀찮고 계란 후라이 만드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식빵 구워서 치즈 껴서 먹는다. 배고프면 하나 더 먹고, 그래도 배고프면 또 하나 먹는다. 질리면 물이나 커피를 마시며 집어 넣고 이윽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때까지 먹는다. 라면은 이제 틀린게... 오늘 저녁에 끓였는데 국물만 토가 쏠려서 먹다 버렸다. 여튼 그러면서 이 삶의 방향이나 미래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기일을 정해 하기로 한 일을 이렇게 못 끝내고 있는 건 거의 처음인 거 같다. 생활의 리듬이 어디선가 삐툴어졌기 때문이다. 최면을 이용해 되돌아 가 본 다든가 하는 건 소용없고, 그냥 마음 어디선가 큰 결심을 하며 아 이제 제대로!라고 다짐하며 되돌려 놔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라고 생각하고 보면 배가 고프고, 먹을 건 없고, 공유기가 고장나고, 크롬 브라우저는 다운이 되고, 컴퓨터 때문에 손바닥은 뜨겁고, 두통은 끊임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씩 붙잡고 픽스 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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