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문제는 이상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점심 먹은 뒤에도 평범하게 사용하고 있던 아이폰을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도 오류가 있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철썩같이 믿고 있던 비밀 번호가 틀렸다고 나오는 거다.
얼마 전부터 혹시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비밀 번호, 초기 화면에 나오는 PASSCODE를 설정해 놨다. 그것도 좀 귀찮아져서 한 가지 숫자, 8로 통일해 8888이라고 해놨다. 어차피 습득한 사람이 암호를 풀고자 한다면 0000이나 1111처럼 괜히 눌러볼 가능성이 큰 게 아니라면 무슨 숫자든지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전혀 이해가 안 가서 몇 번 해보다가 아이폰이 비 활성화 되었다. 다행이 10번 틀리면 초기화 시켜버리는 옵션은 꺼놨었다. 어쨋든 처음 경험해 봤는데 처음에 1분, 3분, 15분, 30분, 60분 순으로 틀릴 때 마다 비활성화 시간이 늘어난다. 60분 부터는 계속 그냥 60분이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숫자 4개를 쳐보고 또 비 활성화되었다는 빨간 바(Bar)를 멍하니 봐야만 했다. 초기화를 해야 하는건가, 비밀번호가 제 멋대로 바뀐 건가, 백업을 복원해도 비밀번호는 살아있잖아 같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멀쩡하게 사용하던 걸 갑자기 이렇게 헤매게 되었다는 현실 자체가 짜증이 나고, 한심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더운데 되도 않는 고민이나 하면서 방에 가만히 앉아있어서 이렇게 된건나, 딱히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그새 어디에 홀렸나. 우리집 강아지 웅이가 몰래 바꿔놓은건가.
결국 데스크탑을 켜놓고 초기화를 눌러야 하는 가를 고민하다가 5555를 눌렀는데, 이게 비밀번호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낮까지는 정말 5555였던 건가. 8888은 어디서 나온 걸까. 가끔씩 5888, 8880이라고 잘못 눌러서 다시 입력하던 기억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건가.
어디선가 차원이 바뀌어서 8888이 5555로 바뀐 세상으로 들어와 버린 기분이다. 1Q84에서 수도 고속도로인가 뭔가의 고가도로에서 내려온 주인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낮에 휴대폰을 사용하던 내 자신의 모습이 선명한데 그때까지 평범하게 5555를 눌러왔다는 사실이 여전히 이상하다.
달이 두 개인지, 아니면 혹시 바뀐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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