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의 마지막 날. 경산인가는 40도를 넘었다고 함. 내일 서울의 예상 기온은 최고 35도. 내 몸이 잘 익은 훈제가 되거들랑 서해 바다에 던져주세요. 세렝게티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2. 세상에 부러워할게 없어 날 보고 부럽다고 하냐. 겉치레라도 행여나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벌 받습니다.
3. 저만 불편한가요, 저는 불편합니다.
4. 온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너무 많다. 아프진 않지만 싫다. 꽤 옛날 일인데 무슨 영화에서 몸에 작은 흉터가 있는 노예들은 가격이 깎이는 모습을 보고난 이후 상처에 민감해졌다.
5. 방치하지말고 치료하세요, 라는 말은 가슴 아프다.
6. 현대 국가에서 대부분의 경우 자력구제는 금지되어 있다. 자력구제의 금지는 무력의 국가 독점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력으로 구제하지 않을 때 국가가 구제를 해준다는 가정하에서 성립된다.
우리네 한의 정서란 사실 그저 자력구제도 금지되어 있고, 국가(를 위시로한 기존 권력)도 거기에 전혀 부흥해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사회적 계약 위반의 한 형태이자 결과일 뿐이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 생각을 환기시킨 점이 있다면,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게 금지만 되었지 그외엔 별 수도 없는 자력구제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다 생생히 보여준 점도 있다. 중학교 때(맞나?) 사건을 평생을 두고 쌓아놨다 철저히 복수하는 모습은 실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잔뜩 있다.
한이 화두가 되는 나라들은(예를 들어 포르투갈, 멕시코 등등) 그저 정부가 역사 내내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따위 걸 우리네 고유 정서라고 교과서에 실은 걸 보면(지금도 실려 있는 지는 모르겠다) 어처구니가 없다. 딱히 굉장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국가로서는 행동을 바꿀 모티베이션이 전혀 없으므로(이대로도 계속 유리한 상태로 유지가 되는데)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반복 된다.
최근의 공권력 대행 콘탁투스와 직장내 따돌림 문제가 표면화된 티아라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뒤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자신을 비롯해 특히 자녀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분노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실 별 방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고문관 같은 사람이 들어와 자신에게 피해가 생기면 악의적이진 않을 지 몰라도 언제든지 동종의 인물로 변신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공적인 장치가 필요한 이유이고, 많은 국가에서 경영인에게 이 문제의 방지를 강제화하고 있다.
(직장 내 따돌림에 소송이 가능한가 궁금해서) 오늘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보니 왕따가 발생했을 때 가만히 있는 이유 1위는 '내가 나선다고 바뀔 거 같지 않아서'였다. 51%인가 그렇다. 위 검색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직장내 따돌림을 당하고 소송을 건 어떤 분은 7년인가를 법정에서 싸웠고 결국 이 분야 최초의 산재 판정을 받아냈지만, 동시에 회사의 손해가 생겼다고 2억원 보상 소송을 당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안 찾아봤다.
ㅎㅇ양에게 소송을 권해보고 싶었지만(경영인의 의무 태만 문제도 있겠지만 사측의 언론 보도 내용도 충분히 명예훼손 소송감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역시 전혀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런 구조라면 손쉽게 따돌림을 당하는 자에게 책임을 묻고 내쫓는게 합당화된다. 조직의 '융화'를 방해하는 자라면 그 이유가 어떻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소위 말하는) '합리적'이다.
7. 너무 더워서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걸 쓰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렸다. 더위에 허덕이는 강아지가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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