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7

끝나가는 것들

1. 무슨 일인가가 생겨서, 나한테 쓰는 건 아니고 누굴 주려고,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조금 생겼다. 줍거나, 훔치거나 한 건 아니고 이벤트 비슷한 거에 당첨이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 했고, 그 대가로 다 주는 건 아니고 한정적으로 몇 명에게 주는 보상을 받았다. 조금 복잡한데 여하튼 그렇다.

요새는, 아주 가끔씩 이런 요행이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이게 내 마지막 운이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기운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린다. 돈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이 셋 중에 제대로 된 게 하나만 있다면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운이 아닌가 믿는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게 마지막 운이라는 건 너무 우울한 소식이다.


2. 계속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걸 피부로 느낀다. 무척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가 2년 전,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지도 모른다 - 나는 자잘한 기억에 무척 약하다, 쯤의 채팅이었다. 조금 멀리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몇 명, 각각 여러가지 종류의 호감을 가지고 다가간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호된 질책도 들었고, 욕 비슷한 것도 먹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급격히 희미해져 간다는 게 느껴진다.

지나가겠지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가 주는 상처를 깨닫는 것도 느리고, 치유도 느리다. 예전에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한 것 같은데 시류에서 점점 멀리 떨어져 나가나보다. 옛날 영화만 보고, 옛날 음악만 들으니 템포를 따라갈 수가 없다.

덕분에 요새는 뭔가 꺼내는 말마다 실수하고 있나보다 하는 자괴감을 견딜 수가 없다. 이 역시 1번과 마찬가지로 결과주의의 시대에 결과가 좋지 않으니 당연히 들게되는 환류의 과정이다. 실수나 실패를 되돌릴 남은 의지도 별로 없다.


3. 가끔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 자신도 눈치가 없는 행동을 하는 구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 눈치가 없지는 않다. 공기의 흐름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다만 직접 들을 때 까지 반응을 안 할 뿐이다.

종종 눈치가 빠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여자들은 눈치가 빨라하는 일반론적인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눈치가 빠른게 아니라 그저 성격이 급할 뿐이다. 분위기가 살짝 바뀌고 있구나하는 정도는 어지간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들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그에 기반해 미리 성을 쌓거나, 댐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건 오해의 가능성 때문이다. 어떤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을 때 눈치채고 미리 반응할 수도 있고, 느끼지만 잠자코 있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발란스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눈치가 만들어내는 득보다, 오해가 만들어내는 실이 더 크고 중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슨 일들이 있다면 섵불리 행동하지 말고 잠자코 실상을 확실히 알아내고 가믕한 직접 듣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살면 험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고, 혹은 찜찜함을 남긴 끝 이야기가 많게 되니 그만큼 상처가 많이 남는다. 보호 본능이 발동해 여기저기 다른 사람 헤집어대봐야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기 마음 속만 헝클어지고 결국 암이나 걸릴 뿐이다. 그런 상처 그냥 안고 사는게, 차라리 맘 편하다.


5. 커피를 많이 마신다. 아주 많이 마시고 있다. 두통도 끊이질 않는다. 둔탁한 어지러움.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 감각이다. 그나마 커피라도 마셔야 좀 덜어진다. 머리 속이 카페인에 점령 당했다. 본진이 털리니 도망갈 곳이 없다.

두 시간 쯤을 내놔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감에 영화는 거의 못 보지만, 음악은 계속 듣고 있다. 스피커가 고장나 집에서도 이어폰으로만 들으니 귓속이 축축한 느낌이다. 사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습기가 차는 듯 하다.


6. 너무 춥다. 정말 너무 춥다. 스웨터에 추리닝, 머플러까지 두르고 잠을 자는데도 몸이 떨린다. 그럴때면 겨울, 그 추울때 논산 훈련소 생각이 난다. 참 말도 안되게 춥고도 을씨년스럽구나 생각했는데, 요새 이불 속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막아도 어디선가 바람이 계속 부는 건 견디기 어렵다.


7. 곧 아홉시다. 살짝 배가 고프지만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별 소득없이 그냥 집에 가는게 너무 싫어 이리저리 헤매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그저 어디 먼 곳, 구미나 승부, 순천이나 벌교, 양구나 묵호 같은 곳에 있는 아래목이 따뜻한 조그만 여관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싶다. 요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패닉의 미안해라는 곡의 앞부분 피아노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한펜같은 걸 조금씩 먹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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