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8

12월 28일 새벽

눈이 밤새 계속 내렸다. 두텁게 쌓여 미끌거리는 불편함도 싫고, 온갖 것들을 그저 뒤덮어버리고 모른 채 예쁘장하게 포장하는 그 외양도 싫고, 녹아가며 질퍽거리는 건 실로 끔찍하지만 눈이 내릴 때 들리는 소리가 좋다. 조용한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미묘한 사각거리는 소리 때문에 눈을 기다린다. 마치 횡설수설하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건 끔찍하지만 좋다고 술을 퍼 마시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멍하니 눈이 쏟아져 내리는 걸 보고 있다가 새벽 2시 쯤에 잠바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사랑방, 벌집, 이브 따위의 여전히 불이 켜져있지만 한산해 보이는 술집들, 영광 굴비, 우정 용달, 모다 미용실, 호산나 유치원 간판을 지나친다. 사람 하나 없는 골목에 웬 아가씨가 나와 팔을 벌린 채 빙글빙글 돌며 눈을 만끽하고 있다. 조금 더 가다보니 술에 취한 몇 명의 젊은이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골목을 뛰어다녔다. 나를 포함해, 이상한 사람들만 살아 남아 좀비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조용한 골목을 활개하고 있다. 방범등이 밝히는 골목은 비정상적으로 환해 민망하다.

24시간 하는 패스트푸드집이 있으면 가보고 싶었지만 동네 롯데리아는 10시만 되면 굳건히 문을 닫는다. 조금 멀리 가볼까 싶었지만 옷이 점점 무거워져 갔고,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집으로 돌아와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계단 한칸 한칸마다 신발에 남아있던 눈이 녹아 물기로 얼룩지는게 계속 신경쓰인다. 옥상에 앉아 멍하니 담배를 피며 서울, 서울이라고 불리기도 사실 민망한 수도의 변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거리를 내려다보며 어제 들은 노래의 가사를 기억해본다.

"사무실 옥상에서 바라 본 서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
고마웠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엔 눈물이 흐르네"

밤은 그렇게 지나갔고, 바닥엔 산처럼 쌓인 눈만이 어제 흐드러지게 쏟아지던 그것들을 기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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