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7

5월 17일

1. 요즘 들어 꽤 많은 이야기를 여기에 끄적거리다가 지운다. 논쟁과 개종, 계몽, 혁명, 우파니샤드와 바흐리만, 마르크스와 발자크, 영화와 음악들, 사진과 메시지함 그리고 사람들. 소용없다. 끄적거리다가 보면 리셋/리셋/리셋.

1-1. 대부분의 경우 논증은 논리적 우위로 인해 설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사고체계 하에 있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논쟁은 설득이 아니라 개종 비슷한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사상을 품고 있는 혁명이 대부분 실패했다.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이상을 성급히 덮어씌울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건 상대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풍선에 산소를 가득 채워넣는 것과 같다. 틀린 건 하나도 없고 풍선은 부풀어 오를테지만, 위험하다.

가끔 생각하는 극단적인 비유가 있는데 : 예를 들어 그리스 시민들이 모여 투표를 해서 1+1=3이라고 결정을 했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1+1=2다. 우주가 어떻게 되지 않는 한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회에서는 1+1=3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 균형점으로 안정을 찾고 있다. 그래서 저런 투표 결과가 나왔을 거다.

그러므로 저게 1+1=2로 다시 되돌아가기 까지는 쉽지 않은 전개가 요구된다. 누군가 기득권을 내놓아야 하며, 안정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제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이 증명으로 인해 가능한 건 아니다. 자연 과학의 경우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사회 과학의 경우는 더욱 지난하다.

논증이나 야유, 비웃음이나 개탄으로 ㅇㅂ나 ㄲㅅㅁ, 혹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건 대체 어떤 배경 하에서 그런 종류의 인식이 탄생했느냐하는 구조의 빈틈이다. 교육, 그리고 기득권의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 다음은 일단 생성된 저런 이들이 일종의 전향을 하기 전까지 함께 사는 방법 - 무엇을 내줄 수 있고,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는가 - 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이런 걸 일소에 해소하려면 혁명, 혹은 이에 준하는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후자는 가능하고 꽤 자주 많은 사람들의 준거가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 부분이 약간 복잡하다. 지금의 설파가 그 순간 설득력을 가져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부정적이다.

1-2. 물론 실패한 혁명이나 실패한 이상의 설파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지금 우리를 살고 있게 하는 건 분명하고,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1-3. 마오는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 거의 모든 실권을 상실한다. 더구나 실권을 잡은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에 의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나타난 대기근이 사라진다. 마오로서는 이제 끝장이 난 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공산주의 교육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풀뿌리 교육을 실시한다. 권력을 잃고 침잠하는 줄 알았지만 그의 교육 이념 아래 몇 년 후 홍위병이 탄생한다. 마오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2. 윌리엄 깁슨의 카운트다운,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을 읽고 있다.

3. 5월 17일은 1980년 비상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킨, 쿠테타가 시작된 날이다. 박정희가 5.16에 했으니 나는 5월 17일, 그런 마인드였을 거다.

4. 아무래도 당분간 입을 좀 닫고 있는 게 좋겠다. 트위터를 보고 있으면 심하게 외로워진다. 블로그에다가 패션 이야기나 나불대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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