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9

소실을 보다

제목이 길어서...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消失)을 보다. 밤에 들어와서 기분이 뭔가 답답해 하고 있다가 봤다. 기분이 안 좋을 때 트위터나 블로그에 떠들면 떠드는 대로, 조용히 있으면 조용히 있는 대로 더 좋지 않다. 일종의 딜레마.

 

소실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애니 시리즈에서 이어지는 극장판 애니다. 사전에 TV판을 보지 않았으면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이 영화는 스즈미야 시리즈에 멍청이들만 나온다는 개인적인 가정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정도 의미가 있다.

큰 의미는 없을 듯 하지만 심심하니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

처음에 쿈이 트랩에 걸리고 문예부실, 그리고 나가토 유키의 집 신을 보고 저 트랩을 만든건 나가토 유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나중에 쿈이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는 하는데 별로 설득력은 없다. 뒤에 빤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깔려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차마 그 이야기를 못하니 그렇게 떠들게 된다.

이건 쿈과 하루히의 관계에서도 얼추 비슷하게 보인다. 자꾸 피해가다 보니 변명이 쌓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 세계를 구성한다.

사실 쿈이 선택지를 앞에 놓고 벌이는 절규에서도 그렇고, 나가토 유키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에바가 생각난다. 말하자면 넓고, 얇고, 소소하게 에바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짓(결국은 자아 확립 및 재발견에 대한 이야기다)을 하는데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우엔 극을 구성하는 프레임 자체가 그렇게 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어쨌든 나가토 유키는 이 영화에서 여러가지 면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캐릭터다. 결국은 고백했다 채인 이야기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사정상 스케일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고, 긍정적인 면은 아직 나가몽에게 가능성은 있다(이 구도를 본격적으로 이용한다고 해도 아마 끝까지 그저 끌고만 가고 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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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이 두 장면의 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머지가 존재한다. 뒤가 아마도 진짜 펀치용.

아야나미 레이는 갈등의 끝에서 때려 부숴졌는데 나가토 유키는 웃는다. 이 애티튜드의 차이가 두 작품의 세계관을 그렇게 벌려 놓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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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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