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5

집안일

솔직히 청소는 별로 자신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재미가 좀 없다. 인류가 먼지와 경쟁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아주 어렸을 적에 깨달아 먼지에 대한 적대감도 낮은 편이고(평범한 기준보다는 사실 약간은 높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꽉찬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과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내다버리는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이건 어떤 면에서는 쓰레기 봉지를 안에 부착할 수 있는 압축 쓰레기통과 음식물 쓰레기 건조 분쇄기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는 자괴감,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공 청소기 질이나 빗자루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건 꽤 좋아한다. 이런 걸 가만히 보면 마음에 드는 도구의 확보가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다. 진공 청소기는 빌딩을 치울 수도 있을 만한거대한 게 있고(좀 시끄럽고 뜨겁다), 빗자루-쓰레받이 세트는 무인양품에서 예쁜 걸 구입했다.

 

정리도 그다지 잘 하는 편이 못된다. 우선은 넉넉한 수납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도 옷장 뒤에 옷장 높이만큼 책이 쌓여있고, 책상 아래에도 발이 들어갈 수 없게 책이 쌓여있다. 기본적으로 배치니 뭐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상당히 부산하기 때문에 이것 저것 들추는 일이 많아 어디에 뭔가가 있다는 걸 외워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누가 방에 들어와 함부로 건드는 걸 아주 싫어했다. 프라이버시 이런 걸 떠나 당장 필요한 걸 찾을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은 스머프의 빌리지나 심시티 같은 게임을 하면 대번에 드러나는데 넉넉한 공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건들면 건들 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커진다.

 

요리를 제외하고 잘 하는 건 우선 벌레 소탕. 벌레가 정말 싫고 귀찮기 때문에 뭔가 타겟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소탕한다. 앞에서 기어다니는 한 마리가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발본색원. 그런 식으로 개미, 바퀴벌레 등을 물리쳤다. 요즘은 초파리 잡이에 한창이다. 내 앉은 자리에서 반경 1km 내에 있는 초파리를 모두 멸종시켜버리고 싶은 욕망에 불타고 있다.

 

그리고 설거지. 이건 꽤 좋아한다. 일단 물놀이를 좋아하는데다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사기나 유리 그릇도 그렇고 은색 싱크대도 그렇고 이건 열심히 하면 할 수록 금방 성과가 보인다는 점도 좋다. 그릇이 깨끗해지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나름 일가견도 있어서 어디가면 그렇게 하는게 아니지 하면서 가끔 오지랖 질도 한다. 손이 계속 벗겨진다는 게 약간 문제인데 작년 검진 결과에 의하면 이건 주부 습진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며칠 전 지인의 집에서 길고 지리하고 꼼꼼하게 이어지는 설거지 장면을 목격하고 약간 컬쳐샥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자만을 버리고 각성하여 좀 더 철저한 설거지 노선을 걷기로 결심했다.

 

어쨋든 루틴만 제대로 구축할 수 있으면 문제될 것도 없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한데 루틴 구축이 어렵다. 비용이 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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