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9

발상

뭐 아시겠지만 꽤 여러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재미있어 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발상이다. 발상에 의해 뭔가 하려는 방향이 결정되고, 포지셔닝이 결정되고, 그 포지셔닝 안에서 살아남고 성과를 거두는 방법이 결정된다. 루틴을 따라가며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고, 역발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재미있지만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 재미있다. 사람들마다 환경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 패턴은 참 다르다.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만든 제작진이 건축가2 촬영을 위해 아로마 향초를 판매한다. 상상을 해 본다.

- 2 만들어야지

- 저번에 해 보니까 아무래도 카메라는 있어야 겠어

-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초를 팔아보면 어떨까?

어떻게 돈을 마련할까에서 초로 넘어가는 부분은 일단 그냥 상상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패턴이다. 주변에 누군가 있거나(보통은 이 가능성이 높다), 초와 관련된 무슨 이야기를 들었거나(만들기 쉽고, 잘 팔리고, 많이 남는다더라), 아니면 그냥 뜬금없이 생각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이 참 재미있는게 꾸며서 만든 이야기는 아무리 디테일을 집어넣어도 이런 식으로 방향이 튀는 게 참 어렵다. 그래서인지 완전히 꾸며 만든 이야기인데 이렇게 튀어버리는 걸 보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번 새누리당의 손수조 후보 같은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학생 회장을 했고, 이화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다음 졸업하고 홍보 대행사에서 1년 반을 일했다가 내가 아는 것의 거의 전부다. 분명히 이 비스무리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냈을테고,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경력을 가진 이들 중에, 포지셔닝이 적합하고, 자기들에게도 잘 맞는 후보 리스트가 확보되었을테고 선정 과정이 있었을 거다.

어찌어찌해서 손수조가 후보군에 포함되었고, 어찌어찌해서 발탁되었다. 이 몇가지 어찌어찌는 밖에서 보면 전혀 오리무중이다. 매우 심도깊은 플랜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냥 간단하게 어떻게 하다보니 대권후보-전혀 아닌 사람, 아저씨-어린 여자, 어떤 종류의 세련됨-순진한 포즈의 투박함으로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이 결정들의 '사이'에 꽤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평범한 범인으로서는 획득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아쉽다.

버려질 카드다, 신의 한수다, 새 정치의 대안이다 등의 여러가지 평이 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만약에 좀 더 오랜 플랜이 있는 카드라면(거창하게는 신인류 프로젝트류의), 앞으로 어떤 식의 행보를 보일지 더 주목하게 될 수도 있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조중동의 의제 형성 과정은 지금껏 많이 보아오던 거라 그렇게까지 신기하진 않다. 물론 선거가 다가오는 와중에 그 실력이 여전함을 만방에 과시하는 효과는 있었다. 이 똑같은 패턴에 마땅한 대항수를 내보이는 곳이 없다는 것은 역시 실망스럽다.

 

퓨처라마나 심슨을 보면 능수능난하게 패러디와 인용이 슉 들어왔다가 슉 빠져나간다. 시도때도 없어서 못 느끼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이건 위에서 말한 희한한 발상이 패턴화된 경우다. 이나중이나 마사루같은 만화도 그렇다.

20120328

1. 인터넷은 안되고, 가끔 얻어쓰는 와이브로는 느리고, 3G 검색도 느리고, 작업실 비스무리하게 사용하는 공용 공간은 누군가 토렌트를 쓰는 건지(의심하고 있다) 심하게 버벅대고 자주 끊긴다. 뭔가 원하는 자료들을 재빠르게 찾아 프린트를 해 놓거나 하면 모르겠는데, 에버노트나 탭클라우드를 가지고 열어놓고 찾아놓고/생각해보고 하는 템포러리한 작업의 경우 사고 자체가 시도 때도 없이 단절되고 그러다가 소멸되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다. 사고의 검색 의존성도 문제이지만, 이래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작업 공간을 마련하는 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일이 무엇이든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수익성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냥 투덜투덜.

2. 탄수화물 중독 증상표인가 하는 걸 보니까 밥을 막 먹고 배가 부른데도 뭔가 보면 먹고 싶어, 밤에 유난히 배가 고프고 뭐 이런 게 나와있다. 아무래도 탄수화물 중독인가 보다. 증세 호전을 위해서는 배가 고플 때 바나나 같은 포만감이 있고, 섬유질인 음식을 먹으라고. 하지만 바나나 따위 아무리 먹어도 배만 더 고프다. 이 이야기를 후배놈하고 같이 했는데(그는 담배도 끊었다) 걔도 밤에 바나나를 두 세개 씩 먹으면서 다른 무엇인가가 익거나/끓거나 하는 걸 기다린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달걀에 우유를 섞어 구운 토스트에 메이플 시럽과 아몬드 슬라이스, 시나몬 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이플 시럽(테스코, 9500원)과 시나몬 가루가 필요하다. 젠장, 핫바 하나에 비엔나 소시지 10개, 오렌지 1개, 초코바 3개를 방금 전에 먹었는데 또 배고파.

3. 퓨처라마의 시즌 4, 7번째 에피소드 Jurassic Bark는 너무나 슬프다. i will wait for you를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불렀다.

Seymourstill 

이 개가 브룩클린의 세이무어.

퓨처라마 스토리의 기본적인 틀을 빼고 지금까지 안 것들은 : 우선 프라이는 자기 할아버지가 자기 자신이다, 릴라는 돌연변이다, 벤더는 한때 신이었고 신을 만났다. 벤더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 에피소드도 꽤 재미있었다.

4. 날씨도, 사람도, 개도, 음식도 다들 참 덧없기만 한데, 그런 것들에 가장 민감해서 사는 게 어렵다. 어제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오늘은 갑자기 봄이 되었고, 뒷산에 올라갔더니 개나리들이 레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꼭대기 바위에 4명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음.

3gs로 접사는 역시 좀 무리였지만.

3gs

20120327

20120327

어제도 잠깐 트위터에 이야기했는데 요즘 머리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를 먹고 싶다'를 추상화, 구체화시키는 일이다. 왠지 매일 먹을 거 생각만 하는 거 같고, 먹는 것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도 하나도 없다. 그저 추상화되고 개념화된 맛이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이것은 오직 밥과 잠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훈련병 시절과 비슷한 기분이다. 주변 상황도 사실 크게 다를 바도 없고. 인터넷이 불통이라 모든 게 단절된 듯 하고, 생각이 아이폰에 의존하는 검색 속도에 의해 퇴화되고 소멸되는 아쉬움 속에서 들은 몇 가지들.

1. 하마사키 아유미의 Party Queen

오스트리아의 배우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이혼한 직후 나온 풀 버전 정규 음반이다. 통산 13집.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지금까지 정규 음반 CD를 총 2100만장 정도 팔았고 통산 5천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남편이랑 미국에서 살기로 했다가(남편은 미국 거주중) 대지진 이후 일본을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이혼했다(남편이 그 사이에 누드집을 발간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아유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모르고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복잡함). 역시 아유스럽다고나 할까, 양키의 기개.

간단히 요약하면 아유의 음악은 어떤 종류의 '웅장함'이 트레이드 마크다. 요즘들어서는 거기에 전자 음악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쿠스틱 오케스트라 믹스라든가 유로비트 믹스, 트랜스 믹스 같은 리믹스 버전들도 꾸준히 내놓는다.

새 음반 역시 기본적으로 웅장한데, 사이에 아예 보컬이 없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세레나데도 있고, 귀여운 뮤지컬풍 소품도 있고, 기타 솔로도 나오고, 다프트 펑크도 있고, 재즈풍도 있고 여튼 14곡에 다양한 것들을 담았다. 그냥 틀어놓아도 아이튠스 DJ에서 랜덤 플레이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감동에 밤잠 못 이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유 음악을 좋아한다면 손해볼 건 전혀 없다.

 

2. 퓨처라마 1~3시즌

하마 아유 빼고 새로 본 건 퓨처라마 정규 시즌 1~3까지. 영화판만큼 재밌지는 않은데 그냥 보고 있다. 정신이 제대로 된 구성원(인간, 돌연변이, 로봇, 외계인)이 하나도 없는데 세상이 돌아간다는 게 퓨처라마식 낙관주의인 듯. 신(神)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꽤 인상적이었다.

 

3. 벡의 Odelay, 비스티 보이스의 Paul's Boutique

퓨처라마를 보다가 벡과 비스티 보이스가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길래 생각난 김에 아이팟에 넣어놓고 다닌다.

 

이게 다인가.... 그런 듯.

20120323

굳이 멋지지 않아도

우는 거야?
난 말야, 난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몰랐어.
몰랐다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어, 난.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것도 몰랐었어.

구질구질한 유행가 가사같은 대사들에 하니씩, 둘씩 침식된다. 역시 괜히 봤다. 이런 걸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사실을 짐짓 잊은 척 하며, 따뜻한 것들을 생각하며, 괜한 기대를 품으며 만용을 부렸다. 그런 날이 오면 내가 완전히 없어진 날이 되겠지.

아무도 꺼내려 오지 않는다는 걸 계속 확인한다. 사람들은 뭔가를 버린다. 그들에게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잊혀진 것들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며 굴을 판다. 깊게, 아주 깊게. 하지만 하필 2012년이라는 시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자에게 더 없이 가혹하다. 고통을 만끽한다. 하지만 부랑자는 되지 않으리. 뭐 이런, 뭐 저런. 젠장.

20120322

러브 익스포져를 보다

컴퓨터를 고쳤다. 역시 비디오 카드 문제였고 옥션에서 구입한 10살 쯤 먹은 카드는 잘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터넷이 끊겼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뭐 할 수 없는거지. 그래서 잠들어 있던 영화를 꺼내 봤다. 저번 사이타마 사건으로 생각났던 소노의 영화다.

원래 제목은 愛のむきだし(아이노무키다시, 사랑의 노출), 영어 제목은 Love Exposure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고 막상 화면을 보면 우울해져서 잘 보진 않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알면서도 답답하다. 몇 부분은 그냥 넘어가 버렸다.

이 영화는 재미있지만 폭소를 터트리지는 않는다. 기발하지만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다. 메타포는 전형적인데다가 엉성하다. 가끔씩 필요없이 웅장하고, 필요없이 격정적이다. 마지막에 정신 병원에서 요코가 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세익스피어의 비극에서나 나올 법한 열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길다(3시간 57분). 하지만 슬프다.

결국은 다들 베베꼬여있는 세상 안에서 그저 순진하게 사랑에 메달리는 이야기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미치고, 누구는 신흥 종교에 빠지고, 누구는 변태가 된다. 슬픈 코이케는 죽어가면서도 그 사람을 원망했지만 결국은 그의 뜻대로 되지 못한다. 결국 코이케만 빼고 모두 사랑에 성공한다. 다행이다.

요코 역의 미츠시마 히카리는 무명이었는데 이 영화로 일본 내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고 키네마 준보에서 여우 조연상을 받는다. 오키나와 출신인데 할아버지가 프랑스계 미국인인 소위 쿼터다. 내가 좀 팬이라 좀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 1985년 생으로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연습생 뽑는 곳이다, 아무로 나미에나 스피드도 여기 출신)에 뽑힌다. Folder라는 초등 학생 남녀 혼성 7인조 그룹도 하고, 아역 출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그러다가 Folder의 남자 멤버 한 명이 변성기에 들어서자 여자들만 따로 Folder5라는 걸그룹으로 재편성을 한다.

Folder5는 2000년에 데뷔하는데 이들의 세번째 싱글이 Believe다. 원피스 애니메이션 48회부터 115회까지 오프닝 주제가로 사용된(원피스 오피닝 곡이 15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길게 사용되었다) 곡이다. 이 곡이 가장 큰 히트곡이다.

그러고 나서 그냥 고등학교 다니다가 도쿄MX에서 방송하던 제벳쿠 온라인이라는 버라이어티로 다시 연예계로 들어온다. 이후 그라비아도 하고, 탤런트도 하고 배우도 하지만(데스노트 시리즈에 다 나오는 데 아무도 모른다)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영화, 러브 익스포져로 급속히 연기파 배우로 자리잡았다.

작년에 무슨 드라마인가 출연해서 테츠코의 방에 나왔었는데 거기에 보면 부모님이 체육교사라 엄했고, 초등학교 때는 운석이 떨어질 걸 대비해 가방으로 막는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2010년에 결혼했다.

나머지는 뭐... 몰라도 되는 사람들. 이타오 이츠시는 이 영화에도 나온다. 이 사람은 보는 일본 영화마다 한 장면 씩이라도 꼭 나오는 거 같다.



20120319

20120318 일요일

1. 목요일에 정금형 비디오카메라를 보고왔다. 그랬더니 몸이 그 날이 금요일인 줄 알아버렸고, 그 이후 주간 리듬이 좀 이상해져 버렸다. 쉬이 변명을 찾고, 얼씨구나하고 본격적으로 잠들어 버린다. 쿨쿨쿨. 원래 꿈 같은 것도 거의 꾸지 않으니 그냥 무의 세계로 들어간다.

2. 봄이 오고있다. 시간이 흘러가고,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

3. 그나마 총괄적으로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유일한 대상, 데스크탑이 또 말썽이다. 의심되는 건 우선 두 가지로 파워와 그래픽 카드다. 만약 둘 다 아니면 메인보드일 확률이 높다. 여튼 무슨 부품이든 열 살 남짓이라 넘어졌다가 못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지만, 너마저 이렇게 나를 버리나하는 자괴감은 버릴 수가 없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버리는 구형 AGP 그래픽 카드가 있으시다면 부디 저에게(10세 남짓 컴퓨터면 해당 됨) 자비를.

4. 키보드를 닦았다. 누구는 마음이 심난할 때 청소를 하고, 누구는 다림질을 한다. 누구는 걷거나 키보드를 닦는다. 요즘 걷느라 다리가 튼튼해지고, 닦느라 손가락이 갈라진다. 참 양질의 플라스틱이다. 승화 인쇄가 아닌 건 여태 안타깝다.

5. 오늘은 컴퓨터가 불구라 못 봤지만 퓨처라마를 계속 보고 있었다. 시즌 2까지 봤다. 하지만 영화에 비해 덴서티가 아무래도 떨어진다. 그래도 이런 걸 한 편 한 편 기다렸다가 첫 방 때마다 챙겨 본 사람이 세상 어딘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어딘가 아득하다. 만드는 사람보다 더 어려울 거 같거니와 득도 없다. 하지만 맷 그로밍과, 폭스 티브이와, 광고주들은 덕분에 부자가 된다.

6. 애니메이션 수공업계에 종사하는 동창과 오래간 만에 연락을 잠시 했다. 일본 어덜트 계열 덕에 먹고 사는데 그 쪽도 영 별로인가보더라.

7. 요즘은 운동(을 빙자한 산책)을 나가면 매번 석관동 한예종 극장 안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고 오게 된다. 워낙 정처없이 나서니 몸이 그냥 관성에 젖는 듯 싶다. 김유신의 말이 이해가 된다. 엄한 주인 만나 억울하게 죽은 불쌍한 놈 ㅠㅠ 근데 그 뒷 산은 길 좀 터주지.

8. 어제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포장마차 떡볶이를 먹어볼까 싶어 장위 시장에 갔는데 마침 후배놈한테 연락이 와서 밤에 꾸역꾸역 돌아다녔다. 고려대 뒤 쪽에 개운산은 알았는데, 큰 절이 있는 건 처음 봤다. 밤 11시에 문 닫으려는 카페 베네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사 마셨다. 토요일 밤의 안암동 길은 이제 막 개강한 인파들로 '술렁~'하는 분위기가 넘치고 있었다. 술렁~

20120312

20120312, 이제 월요일

흘러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흘러가버리는 것들을 생각한다. 흘려버린 것들도 생각한다. 다들 내 의지와 기대와는 달리 제멋대로다. 붙잡은 것들은 빠져나간다. 소중한 것들은 날 버린다. 버리고 싶은 기억들, 자질구레한 실수들은 기억 속에서 부풀려진다. 그런 기억들이 일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쉼 없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RSS를 들추고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떠든다. 페이스북과 발전소 사이의 링크를 끊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와 있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심보다. 문에 미련은 없다. 다들 바쁘다. 뭔가 이뤄내려고, 아니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다들 열심히들 산다. 이런 즐거운 세상이라니. 하지만 낮에 앉아있다가, 역시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면서도 계속 떠든다. 글자만 보고, 오자가 없나 생각한다. 여행을 갔다. 실망했고, 추웠다. 두통이 멈추질 않았다. 커피를 너무 마신다. 커피물에 절여지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삶의 어느 부분이 아름답다고들 하는건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지에스이십오에서 이천 삼백원, 이천 팔백원하는 도시락을 사다 먹는다. 편의점 도시락은 컵라면과 같이 먹는 걸 디폴트로 양을 잡아 놨다. 약간 억울하다. 라면을 너무 먹었더니 살에서 방부제 냄새가 나는 거 같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나와, 모르는 표정으로, 모르는 노래를 부른다. 트위터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속으로 지나치다, 라고 생각한다. 버라이어티에서 일류 개그맨이 나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고 강연을 한다. 죽음을 결심했다가 포기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걸 하다 실패한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했다가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은 강연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는다. 뻔뻔하지 못한 자들은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깊숙히 생각하며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에, 정작 구원을 바라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미 들을 수 없다. 명동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에이치앤엠 매장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안내 방송을 했다. 예전에도 일본어로 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터무니없는 기억들만 둥실, 떠오른다. 말을 거는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 구걸은 팔자가 아닌가 보다.

20120311

20120310

요즘 들은 이러저러한 것들 이야기

요즘 정신이 산란하여 마음도 한 곳에 놓여있지 못하고 발전소 포스팅 내용도 오락가락하고 뭐 그렇슴니당. 그러는 와중에도 뭔가 계속 듣고 있다는 게 그나마 내놓을 변명이군요.

 

1. KARA의 スーパーガール

スーパーガール(슈퍼걸)은 카라의 일본반 2집. 2011년 11월에 나왔다. 일본은 음반들이 정말 복잡한데 :

한정 초회반은 원래 수록곡 10곡 + 미스터, 점핑, STEP(이건 한글 버전으로) 이렇게 13곡이 들어있다. 이런 초회반이 A, B, C 세가지가 나왔는데 A는 DVD, B는 포토북, C는 그냥 13곡만 들어있는 버전이다. 셋 다 커버가 다르다.

이 중 C 버전 커버를 기반으로 통상반이 나왔다. 물론 통상반은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고 10곡이 들어있다.

일단 통상반의 경우 가지고 있는 한국 버전 카라 음반의 곡들과는 겹치는 게 없는 거 같다. 보아도 이런 식으로 음반을 냈었다. 덕분에 한국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는 위화감은 없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딱히 떨어지는 퀄러티의 곡(그러니까 빈칸 채우기 용)은 없다.

솔직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난다. 틀자마자 ジェットコースターラブ(제토코스타=롤러코스터 러브)로 시작해서 ウィンターマジック(윈터 매직), GO GO サマー!(고고 섬머!), ドリーミンガール(드리밍 걸)까지 4번 트랙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리치고 달리는 건 가히 일품이다.

일단 아이돌이니 MV, 음악 방송, 버라이어티를 좀 봐야 과연 어떤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는 지 그 디테일을 좀 알텐데 AKB48 데뷔할 때 쯤 이후로 완전 끊어서 다시 뒤적거리기엔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져서 유투브에서 비디오나 몇 개.

고고 섬머! 오피셜 PV. 앞에 대사치는 건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롤러코스터 러브, 이건 음악 방송.

 

 

2. Lee Fields & The Expressions의 My World

사실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며칠 전에 들어보고 챙겨 듣다. 소울 계열은 한 두곡 까지는 괜찮은데 넘어가면 그 과한 에너지에 몸이 좀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리 필즈는 꽤 유순하게 흘러가는 게 마음에 든다. 멍 하니 틀어놓기에 좋다.

 

3. Joy Division의 Unknown Pleasure

뉴 오더 511 비디오 보다가 조이 디비전 생각이 나서 아이튠스를 뒤적거렸더니 없었다. 결국 CD를 뒤적거려서 집어 넣었는데 그렇다면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다는 걸까...를 생각해 봤지만 기억에 없음. 뉴 오더 Power, Corruption And Lies는 그래도 종종 들었는데 조이 디비전은 왜 그랬을까. 이안 커티스 좋은데.

 

4. Bonobo의 Dial 'M' for Monkey와 Black Sands

사이먼 그린의 프로젝트인 보노보는 애니멀 매직의 기억이 괜찮았기 때문에 기대를 했는데 크게 인상적이진 않다. 둘 중에서는 몽키가 좀 낫다.

 

5. Rei Hamasaki의 Lust와 와스레모노

예전에는 그냥 저냥 들었던 거 같은데 요즘엔 이어폰으로 들으면 좀 답답하다. 적어도 괜찮은 수준의 헤드폰 정도는 있어야겠다.

20120309

FUTURAMA를 보다

더 심슨스는 TV판, 극장판 할 거 없이 나름 열심히 봤는데 Futurama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냥 TV에서 지나가다가 로보트와 눈하나 있는 여자가 나온다 정도만 봤고 이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Futurama를 보게 되었다.

퓨처라마라고 읽는 거 같은데 자꾸 푸투라마라고 읽게 된다.

movie

이렇게 4편이다.

Bender's Big Score는 시간이 막 꼬이고 그런 내용, Beast with a Billion Backs는 벤더의 빅 스코어와 연결되어 균열된 우주 바깥의 오징어같은 놈이랑 벌어지는 일들, Bender's Game은 반지의 제왕, 마지막 Into the Wild Green Yonder는 어둠의 세계와 프라이의 대결.

이건 뭐 말도 안되게 재미있다. 이걸 이제야 봤다니 억울하다. 심슨 가족처럼 패러디와 인용이 너무 능수능난해 아는 만큼만 보이는 건 여전한데, 뭔가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을 생각하면 실로 원통하다.

TV 시리즈가 6시즌인가 까지 있던데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 중이다. 솔직히 너무 긴데...

인터넷 뉴스의 패턴

인터넷 뉴스라고 통칭했지만 특히 연예면,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사회면, IT 가십류 등등, 흔히 인터넷 뉴스의 폐혜할 때 그 인터넷 뉴스.

일단 방송이 있거나, 어딘가 게시판, 트위터 등 SNS에 어떤 글/사진이 올라왔거나 한다 -> 이런 일이 있었다 -> 거기에는 이런 댓글이 있었다.

ex1) 오늘 가인이 무슨 행사장에 갔던 사진이 모 게시판에 올라왔다 -> 댓글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ex2) 효리가 해피 투게터 10주년 방송에 나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 -> 이에 대해 댓글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ex3) 어떤 네티즌은 아이폰 5 예상도를 올렸다 -> 댓글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므로 최소 구성은 3단락으로 되어 있다.

 

어차피 가십이기 때문에 뉴스로서의 기능은 단 하나, 사람들을 끌어들여 광고를 보게 하는 데 있다. 그것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라면 중요하다. 어쨋든 그러므로 제목이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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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9일 모 포털 뉴스 많이 본 뉴스 순위. 당연히 내용은 별 게 없다. 하지만 반전, 벗은, 논란, 중요한 신체부위, 호텔방, 루머 등 효과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2차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뉴스는 어쨋든 팩트다.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문제 발생 여지를 미리 차단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 여부에 문제가 있다면 실제 사실이 게시판으로 들어가는 동안, 내용에 대해 잘못된 댓글을 쓰는 데에서 생긴다. 특히 전자에서 사실 관계의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후자에서 오해의 규명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사는 이러한 인과 관계가 생략되어 있으므로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따위가 뉴스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이건 DC와 베스티즈, 뽐뿌와 아고라, 트위터 팔로잉 등의 수고를 덜어주는 극현실적인 니즈가 있다. 사실 니즈가 꽤 많은 걸로 보인다.

예전에 미국의 파파라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에서 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만든 거였는데 어느 방송인지 잊어버렸다.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어쨋든 파파라치들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뭐라고들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네 부모는 니가 이런 일 하는 거 아냐 등등등.

맨날 그런 소리 듣는데 파파라치는 물론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랑곳할 사람이었으면 벌써 다른 직업을 찾았겠지. 그리고 하는 말이 저렇게 말하면서도 집에 가면 다들 열심히 보기 때문에(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의 수요지는 물론 미국인 들이다) 자기들이 먹고 산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마 저 인터넷 뉴스들도 비슷할 거다. 어처구니 없을수록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국회에서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 수록 투표율이 떨어져 기득권 보호가 착실히 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다.

재밌다고 생각하는 점은 디스패치 정도 이외에는 파파라치 문화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나라가 좁아서 사생팬들이 직접 뛸 수 있다는 것고 있을테고, 사생활 유출에 대한 대외적 반감이 크다는 것도 있을 거다.

연예인 유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대외적 비난(이건 두 부류인데 유출자에 대한 비난 혹은 유출된 자에 대한 비난) + 대내적 적극 검색. 회사에서 몇 년차 되지 않은 남자 직원이라면 여직원들 모르게 내려오는 상급자의 부탁을 금새 들을 수 있다.

며칠 째 집에 틀어박혀 뉴스를 열심히 봤더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연필 공장

케이스에서 막 꺼낸 연필을 보면서 대체 이 각도로/더구나 무척 거칠게 깎이는 연필 깎이가 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 저 각도가 마음에 들어서 비슷하게 깎이는 걸 한참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 그게 아니었다. 이런 거였군!

20120308

도끼(Axe)

axe 

day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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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실 툴의 4파운드 데이톤 도끼. 170불.

council

 

 

American Felling의 데이톤 도끼. 250불.

felling

개인적으로 덩어리 스테인리스, 덩어리 철, 덩어리 알루미늄, 콘크리트 같은 거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20120308 바람이 차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아 좀 더 두껍게 입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나섰다. 하지만 그 값을 나름은 치룬 것이다. 늦은 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방에 들어와 앉고 잠시만 누워있자 생각했던 것이 2시간이나 지나버렸다. 구석까지 차가워지니 다시 데우는 데 오래 걸린다. 10시 반에 깜빡 잠들었으니 계속 자는 것도 괜찮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내일이 와도 별 수가 생길 건 아니므로 세수를 하러 일어났다.

내일부터 (아마도 당분간) 외출이 불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가 꽤 부산했다. 처리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새 하릴없이 트위터에서 #강정을 훑어보다가 괜히 지쳐버렸다. 잠시 꿈도 꿨다. 파리가 내 귀 속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았다. 그래 다 파먹어라 생각하며 속 편하게 담배를 폈지만 뇌를 파먹든 말든 귀가 답답한 게 짜증이 났다. 그러다 깨어났다. 햇빛이 눈을 때린다. 자꾸 얼굴이 탄다.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다. 이것도 벌써 3번째인가. 경쟁률이 너무 높다. 49m^2, 이 알량한 넓이에 걸려있는 그들의 기대, 그들의 노후, 그들의 안정. 매번 시즌이 찾아와 공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한 달 30만원 가량을 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때 당첨되어 기뻐하였을 임대 주택에서 퇴거 당하고 있는 지 숫자를 어림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찰라의 안정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찰라의 안정 속에서도 기뻐하며 죽을 수 있는 법이다.

아는 형에게 돌려줄 께 있어서 만났다. 요즘엔 그나마 친한 사람을 만나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내용의 바운더리 조금도 입에 꺼내지 않는다. 입이 무거워졌다. 수다쟁이 주제에 입이 무거워지니 이렇게 자꾸 컴퓨터 모니터에다 대고 떠든다.

그리고 청계로 향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예전에 그러했고, 계속 그러했듯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손에서 나는 담배 냄새에 짜증이 나서 화장실을 찾다가 포기하고 알맞게 떨어져 오들오들 떨며 생각을 했다.

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이상 가진 것도 없고, 이제 더 벌 생각도 없는 꼼짝없는 페일루어가 주머니 속에 마지막 남은 천 원을 고작 거기에 가는 지하철 표 값에 써 버린 이유가 대체 뭔가. 강정, 구럼비, 제주도, 육지 경찰, 컨팅전시, 아이러니, 솔리데리티. 얼어죽을 솔리데리티. 비웃음에 결국 면역이 되어버린 이 순간까지 누가 내겐 손이라도 내밀어줬었나.

문정현 신부는 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75년 인혁당 사건 때 장애를 얻었다. 유신 비판, 노동 운동, 통일 운동, SOFA 개정, 대추리, 용산에 있었고 지금 강정에 있다. 결국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소소한 기쁨들이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 뿐이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강정에 있다. 매번 진다. 운동에 투신해 나오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 지기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결국 부끄러운 마음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멀리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 원을 쓴 것으로, 밤을 샌 것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조금은 위로해본다. 이것은 노숙자가 겨우 모은 5만원을 러시아 사전을 쓰는 데 써버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현학을 채우고, 마음의 욕심을 채운다. 4.3 때 우리는 그래도 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찢어져 할퀴고 있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서향의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내 방에서 눈을 껌뻑거리며 어제 써 버린 천원을 조금쯤 후회하겠지. 이상한 시간에 잠들었다가, 이상한 시간에 깨어났더니 몸이 좋지를 않다.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은 잠과 밥에 이길 수 없다, 술에도 이길 수 없다 였는데 그걸 잘 못지키고 있다.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사과와 콘프레이크라도 먹어야겠다.

20120307

강정 간다

ㅇㅈㅁ씨가 장정일 강정간다 시를 올려놨길래 아, 그 강정이 이 강정이었나하고 잠시 방정을 떨었다. 그 강정이 어디면 뭐하고, 아니면 또 뭐 할건가. 어차피 강정은 강정이다. 얄팍한 호기심은 또 이렇게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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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간만에 생각 나 책장을 뒤적거려 강정 간다를 읽어 본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대구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던 김에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대구가 맞다. 강정 유원지라는 곳이다. 하지만 강정 유원지의 모래밭도 사대강 공사로 다 사라졌단다.

다들 강정 가고 싶어하는데, '중앙'은 강정마다 찾아 없애려고 안달이 나 있나 보다.

20120306

기억

일요일 밤에 술을 마셨다. 하이랜더의 자랑 글렌모렌지 싱글 몰트도, 맥주도 괜찮았고, 음식들도 아주 괜찮았지만(그 굴은 상수동 자취방에 머물러있으면 안된다) 딱 반 잔 마신 와인이 문제를 일으켰다. 역시 난 과일 술과는 맞지 않는다. 그 이후 48시간 가량을 멍하니 보냈고 이제 좀 깨어났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멍하니 있다가 TV를 몇 편 봤다.


케이팝스타는 재밌는 발란스를 안고 가고 있다. 3사의 미묘한 협력과 신경전, 참가자들의 협력과 신경전. 이것들이 만들어 낸 내러티브가 이 방송을 끌고 간다. 이제 열 명이 간추려졌고 생방송으로 신이 바뀌었다. 여기서부터는 참가자들이 만들어 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찾아보니까 심사위원 60, 실시간 투표가 30, 사전 투표가 10의 비중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하이가 압도적이다. 한국의 아델 쯤을 찾고 있을 기획사의 입맛에도 딱 맞다. 하지만 이게 정말 흥미진진해 지려면 박지민이나 백아연, 이미쉘이 이하이에 얼마나 근접하느냐, 아니면 혹시나 드라마틱하게 잡아 내는 데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잔인하지만 어차피 그런 게임이다.

박진영은, 요즘 이 사람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는데, 웃기고 재미있기는 한데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무협지에 보면 최고의 수는 무수(無手) 이런 말이 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면 상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이 분은 자기 수를 그저 철저히 밀고 나간다. 거기에 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걸 즐긴다. 그러니 지루하다.


놀러와에 정두홍이 나왔다. 예전에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두홍을 본 적 있다. 정말 끔찍한 사람이고, 엑스트라의 적이었다. 엑스트라는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거의 모두 작품이 질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작품의 질에 관심을 가질 만큼 설명해 주지도 않고, 그런 대접을 해 주지도 않는다. 대체가 손쉬운 소모품일 뿐이고, 딱 그 만큼 대접받는다. 그러므로 그저 빨리 이 촬영이 끝나고, 돈을 받고 귀가하길 원한다.

주인공의 권투 장면이 있었다. 해가 진 다음에 촬영에 들어갔다. 권투 장면만 찍으면 촬영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실내였지만 굉장히 추웠고, 새벽부터 나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들 지쳐있었다. 그때 정두홍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끔찍할 정도로 철저했다.

폭동이 일어날 기세였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야 뭐 어차피 할 일도 별로 없는 처지라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 분은 감독도, 연기자도 모두 배제시키고 혼자서 탑을 쌓는다. 자기가 원하는 완성도가 나오지 않으면 결코 타협할 타입이 아니었고, 감독의 오케이 싸인 따위가 그에게 시그널링하는 것도 없었다.

그는 폭동 위기를 조율하는 타입이 아니라 모른 척 끌고 나아가버리는 타입이다. 삼국지의 장수였다면 일기토에는 무척 능하겠지만 10만 대군을 끌고 전쟁을 치르러 가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어쨋든 우여곡절 끝에 촬영은 새벽녘에야 끝이 났다.

나는 7만원을 받았고 세금으로 7천원을 떼어 갔다.

짜장면

짜장면을 좋아한다. 딱히 직접 담근 춘장으로 만든 게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안 좋은 밀가루 특유의 신맛이 그나마 덜 나고, 상당히 잘 쉬는 양념이 잘 관리되기만 한다면 좋다. 딱히 짜장면에 얽힌 짠한 추억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조세희의 소설 시간 여행에서 할머니가 (빈궁한 자들은) 음식과 관련된 추억은 가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이 너무 슬퍼서 음식과 관련된 추억은 모두 소거시켰다. 물론 잊혀진/잊혀지지 않을 기억들은 있다.

하지만 짜장면은 혼자 먹기에는 슬픈 음식이다. 근 10여년 째 거의 밥을 혼자서 먹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건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런 경우에 짜장면이라는 건 양이 너무 애매하다. 짜장면만 먹으면 틀림없이 얼마 안 지나 배가 고파진다.

그렇다고 곱배기는 나로서는 한 번에 먹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큰 맘 먹고 중국집에 들어서도 고민하다가 밥 종류를 시켜 먹게 된다. 그럴 때 마다 아휴, 이게 아닌데 생각하지만 그래도 별 다른 수가 없다. 괜한 방종은 후회만 만든다.

두 명 만 넘어가도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메뉴를 함께 시킬 수가 있고, 정 안되면 공기밥이라도 시켜 나눠 먹으면 된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짜장면은 슬프다.

20120303

토요일

오늘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傀儡謡 陽炎は黄泉に待たむと. 2004년 이노센스에 나온 음악이다. 청소한다고 아이튠스로 음악 틀어놓고 있다가 멍하니 계속 들었다. 유투브에서 찾아보면 영상과 맞춰져 있는 것도 있고, 그냥 OST만 있는 것도 있는데 이건 소리만 나오는 버전.

화면과 같이 보면 음악은 잘 안들린다. 오늘은 음악 듣는 날이니까. 켄지 - 공각기동대 조합에서는 역시 이 곡도 뺄 수 없다.

메이킹 오브 사이보그.

봄, 그리고 산책

트위터에서 날씨가 꽤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 집을 나섰다. 근처에 대학이 있다는 건 꽤 좋은 일이다. 예전에는 최류탄 냄새가 진동을 해 대학가가 인기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엔 그런 것도 없는데다가 학교 나름이긴 하지만 마음만 잡으면 문화 행사도 가끔 접할 수 있고, 공원도 되고 등등. 한예종 옆에는 레미안이 있고, 서강대 옆에는 엘지 자이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런 것도 이런 이유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쨋든 날씨가 좋으니 괜찮았다. 주말이나 방학 때 돌곶이 역 주변의 시끄럽고 지저분한 동네를 걷다가 레미안을 옆에 끼고 한예종에 접어드는 길은 매번 실로 경이롭다. 괴테가 오스트리아에서 이태리에 접어드는 길목을 묘사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순간적으로 길이 급격히 깨끗해지고, 정적이 찾아오며, 새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극장인가 앞 벤치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그 고요함을 건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의릉은 입장료 1,000원을 내야 하니까 관두고 한예종 뒷산을 오른다. 아마도 성북 정보 도서관 언덕 쪽에서 연결되는 거 같다. 처음 올라가 봤는데 노고산보다는 작은데 위에 무슨 한전 시설이 있는지 사방이 막혀있다. 거기에 철조망 쳐진 시멘트 담 같은 안기부 시절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있다. 아래 담장 너머는 산책하는 레미안 주민들 방향, 또는 의릉에 나무 심어져 있는 방향이다. 양쪽 다 한없이 평화롭다.

개인 정보를 팔아 넘기고 기프티콘 하나 얻은 게 있어 돌곶이역 일곱 열하나에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 먹고 귀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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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찍었는데 생각나는데로 이펙팅을 했더니 일관성이 전혀 없다.

사족

이제 영화는 끝, 이래놓고 사실 하나를 더 봤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라는 실로 평화로운 영화다. 트위터에서 이 영화 음악이 레이 하라카미이고 쿠루리가 부른 노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음악 때문에 본 영화다. 쿠루리는 사실 잘 모르는데 96년에 결성된 교토 출신의 락밴드라고 한다.

레이 하라카미는 좀 안다. 이 사람 특이한 게 SC-88 Pro와 Ez Vision으로 음악을 만든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SC-88 Pro 두 대에 가끔 건반 모델인 SK-88 Pro도 썼다고 한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나도 SC-88 Pro가 있(었)다. 내가 최초로 구입한 악기로 중고로 구입했었다.

그런데 분명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10년 쯤 된 거 같다. 내 방에 있는 건 뭐든 가져다 버리는 부모님이 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5년 간 모았던 보그지도, 핫 뮤직도, 심지어 전공 책들도 그렇게 사라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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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88 Pro. 사진이라도 보고 있으니 뭔가 짠 하군. 낙원 상가에서 고민하다가 사들고 와서 케이크워크에 연결해서 썼었다. 당연하지만 하라카미같은 소리는 나는 못낸다. 원래 그런거다. 하라카미는 이 기계에서 완전 뽕을 뽑았었다. 하지만 누구나 붙잡고 있는다고 그렇게 되진 않는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좀 더 뽑아낼 수 있었을텐데 역시 안타깝다.

사실 나 같은 경우는 무리를 해서라도 처음 살 때 이거 대신 808을 샀어야 했다. 그랬으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못내 아쉽다. 벌어 놓은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베이스 기타에 앰프도 같이 사느라 저거 밖에 못 샀었다.

 

이 영화 말고 TV를 뒤적거리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피인가 하는 방송에서 사형수들과의 인터뷰도 봤다. 텍사스 주의 감옥에서 집행 일자를 기다리는 사형수들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형수들도, 사형수의 가족들도, 그리고 그 범죄의 피해자들도, 피해자의 가족들도, 그리고 형이 집행되는 그 동네도, 그걸 촬영하는 사람도, 법률에 의해 형 집행을 매번 참관한다는 AP기자도, 교도관들도 다들 제 정신이 아닌 거 같았다. 어차피 제 정신으로는 못 살 세상이기도 하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건 빈둥대는 거다. 할 게 없으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 빈둥 빈둥. 그리고 잠. 대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깨질 않는다. 안 움직이니까 잘 안 먹게 되고, 잘 안 먹으니까 또 계속 졸리고 잘 안 움직이게 된다. 다른 건 괜찮은데 거울 보니까 얼굴색이 안 좋은 거 같아 아쉽다.

에스프레소 잔뜩을 며칠 간 너무나 마시고 싶었는데 계속 종이컵에 인스턴트 맥심 3스푼만 마셔왔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마시러 갔다 왔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든다. 막 혀가 따갑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길 바랬는데 그렇진 않았다.

이렇게 감각과 관련된 것들은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다. 군대 훈련소 있을 때 맛동산이 너무 먹고 싶어서 잠 잘 때마다 상상을 했더니 막 이미지가 커져버렸다. 결국 면회 때 먹었는데 역시 맛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상 정도는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재미있던 것들을 샥샥 치우고 있기 때문에 이제 버라이어티 방송도 그만 볼 생각인데, 그랬더니 밤에 누워서 자기 전에 누워서 비쥬얼드하는 동안(이건 아직 안 끊고 있다) 뭔가 꽤 심심하다. 너무 시끄러워서 무음으로 해 놓고 한다.

그래서 컴퓨터 안에 뭐가 좀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예전에 오아시스 공연 보러가기 전에 예습할려고 받아놓은 맨체스터 공연이 있었다. 1시간 넘는 공연 비디오라는 건 혼자 보기엔 정말로 지루하기 때문에 졸려서 거의 안 보는데(그렇다고 지우기도 좀 그렇다) 틀어놓고 들었더니 그거 또 나름 괜찮았다. 반갑다고나 할까.

이거 말고 스톤로지스의 블랙풀 공연, U2의 더블린 공연, AC/DC의 도닝턴 공연, 뉴 오더의 511, 공연은 아니지만 토킹 헤즈의 스탑 메이킹 센스랑 다프트펑크의 인터스텔라도 있다. 내친 김에 어제 3개나 봐 버렸다.

아주 철저한 건 아니지만 공연 비디오를 봐야하거나 함 볼까 싶을 땐 이왕이면 고향 공연을 선호한다. 성공해서 돌아와 자기네 동네에서 공연하는 모습에는 좀 짠한 데가 있다. 오아시스가 공연 시작할 때 시큰둥하게 헤이, 맨체스터... 하는 부분은 좀 좋다. 뭐 사실 별 생각없을 수도 있는 거고.

 

군대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다른 건 정말 못했는데 행군 하나는 괜찮았다. 10m만 뛰어도 죽을 거 같은 체력인데 뭐 그냥 걷기만 하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 걸으면서 (할 게 없으니까) 정말 별의 별 생각을 다했는데 그러다보니 인생 전반을 반추했었다. 가능하면 이왕 한 번 사는 거 좋은 기억만 들고 간다라고 마음 먹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군 시절의 정신적 내상은 그러면서 가장 많이 입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다른 건 별로 힘든 일이 없든지, 아니면 아예 힘들어서 생각 자체를 못하든 지 둘 중 하나였다. 행군을 두 번 했었는데 두 번 다 그랬다. 생각해보니 요즘 빈둥거리며 하고 있는 거랑 거의 비슷한 거 같다. 의미도 없는 짓을 공들여가며 꼼꼼히 계속하면 역시 산화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버리고, 꽉 쥐고 가야지.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