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아 좀 더 두껍게 입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나섰다. 하지만 그 값을 나름은 치룬 것이다. 늦은 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방에 들어와 앉고 잠시만 누워있자 생각했던 것이 2시간이나 지나버렸다. 구석까지 차가워지니 다시 데우는 데 오래 걸린다. 10시 반에 깜빡 잠들었으니 계속 자는 것도 괜찮겠네, 라고 생각했지만 내일이 와도 별 수가 생길 건 아니므로 세수를 하러 일어났다.
내일부터 (아마도 당분간) 외출이 불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가 꽤 부산했다. 처리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새 하릴없이 트위터에서 #강정을 훑어보다가 괜히 지쳐버렸다. 잠시 꿈도 꿨다. 파리가 내 귀 속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았다. 그래 다 파먹어라 생각하며 속 편하게 담배를 폈지만 뇌를 파먹든 말든 귀가 답답한 게 짜증이 났다. 그러다 깨어났다. 햇빛이 눈을 때린다. 자꾸 얼굴이 탄다.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다. 이것도 벌써 3번째인가. 경쟁률이 너무 높다. 49m^2, 이 알량한 넓이에 걸려있는 그들의 기대, 그들의 노후, 그들의 안정. 매번 시즌이 찾아와 공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한 달 30만원 가량을 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때 당첨되어 기뻐하였을 임대 주택에서 퇴거 당하고 있는 지 숫자를 어림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찰라의 안정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찰라의 안정 속에서도 기뻐하며 죽을 수 있는 법이다.
아는 형에게 돌려줄 께 있어서 만났다. 요즘엔 그나마 친한 사람을 만나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내용의 바운더리 조금도 입에 꺼내지 않는다. 입이 무거워졌다. 수다쟁이 주제에 입이 무거워지니 이렇게 자꾸 컴퓨터 모니터에다 대고 떠든다.
그리고 청계로 향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예전에 그러했고, 계속 그러했듯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담배를 피우고, 손에서 나는 담배 냄새에 짜증이 나서 화장실을 찾다가 포기하고 알맞게 떨어져 오들오들 떨며 생각을 했다.
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이상 가진 것도 없고, 이제 더 벌 생각도 없는 꼼짝없는 페일루어가 주머니 속에 마지막 남은 천 원을 고작 거기에 가는 지하철 표 값에 써 버린 이유가 대체 뭔가. 강정, 구럼비, 제주도, 육지 경찰, 컨팅전시, 아이러니, 솔리데리티. 얼어죽을 솔리데리티. 비웃음에 결국 면역이 되어버린 이 순간까지 누가 내겐 손이라도 내밀어줬었나.
문정현 신부는 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75년 인혁당 사건 때 장애를 얻었다. 유신 비판, 노동 운동, 통일 운동, SOFA 개정, 대추리, 용산에 있었고 지금 강정에 있다. 결국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소소한 기쁨들이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 뿐이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강정에 있다. 매번 진다. 운동에 투신해 나오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 지기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결국 부끄러운 마음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멀리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 원을 쓴 것으로, 밤을 샌 것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조금은 위로해본다. 이것은 노숙자가 겨우 모은 5만원을 러시아 사전을 쓰는 데 써버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현학을 채우고, 마음의 욕심을 채운다. 4.3 때 우리는 그래도 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찢어져 할퀴고 있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서향의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내 방에서 눈을 껌뻑거리며 어제 써 버린 천원을 조금쯤 후회하겠지. 이상한 시간에 잠들었다가, 이상한 시간에 깨어났더니 몸이 좋지를 않다.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은 잠과 밥에 이길 수 없다, 술에도 이길 수 없다 였는데 그걸 잘 못지키고 있다.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사과와 콘프레이크라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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