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4

웅이 이야기

오늘은 웅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매우 피곤하다. 그래도 잠을 자기는 좀 그렇고 해서 이런 이야기나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름은 웅이, 요크셔테리어, 올해 태어났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남자 아이다. 네이밍에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관여했다면 '웅이'같은 이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왠지 마초적인 느낌이다. 지금 만약 이 강아지가 내 눈앞에 떨어져 이름을 지어야 한다면.... 모르겠다. 하나마나한 생각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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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웅이다. 요크셔테리어라는 건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이 강아지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촐랭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지금껏 6마리 정도의 강아지들이 우리집을 거쳐갔다. 되돌아보면 꽤 많다. 한 번에 둘이 산 적은 거의 없다.

그 중 촐랭이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이 역시 지어져서 온 이름이다. 여튼 그 아이는 무척 식탐이 심했다.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먹을라고 하면 옆에서 난리를 쳐댔고 할 수 없이 라면 먹는 동안 방에 가둬두면 문짝을 긁어대며 서럽게 울었다.

아침에 밥상을 차려두고 밥이라도 먹을라 치면 저 멀리서 기회를 노리다가 후다닥 뛰어들어와 식탁을 덥쳤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걸 물고 사라졌다. 달래도, 욕을 해도,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먹을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목표가 생기면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결국 촐랭이는 포기하고 마침 시골에 강아지 한마리 있었으면 하는 집이 있어 거기로 보냈다. 처음에는 방에서 같이 살다 같은 이유로 쫓겨났고,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커가며 식욕은 호기심으로 치환되었다. 아무대나 쑤시고 다녔다.

촐랭이는 마당에서 살면서 닭장 철망 사이로 닭들이 부리를 조금만 꺼내면 그걸 물고 늘어지는 짓을 해 댔다. 그는 결국 방치되었고 마을을 무대로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촐랭이는 큰 미움을 받지는 않았다. 집이라는 좁은 카테고리가 그를 소화해 낼 수 없었을 뿐이다. 눈치가 전혀, 지독할 정도로 없었지만 강아지라면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점도 있는 법이다. 커다란 골치거리였지만 그래도 밥먹을 때 나누는 대화의 웃음 거리 - 굉장한 놈이었지 정도의 - 는 되어 줬다.

 

 

지금껏 함께한 귀엽고 착한 강아지들 사이에서 촐랭이는 단연 튀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놈이 나타났으니... 바로 웅이다.

이 아이의 특징은 첫째 긍정적이다. 무한 긍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걸 몸소 보여준다. 노홍철의 무한 긍정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를 부르든, 그를 혼내든, 그에게 밥을 주든, 그가 물고 간 화장실 슬리퍼나 빗자루를 뺏든 이 모든 건 단지 그에게는 '놀자'로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혼을 내도 양껏 기뻐하며 달려든다.

웅이는 화장실을 명확하게 가린다. 정규적인 대소변은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아 간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 비중의 '비정규적' 대소변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보면 소변을 본다. 다른 강아지를 봐도 소변을 본다.

더 큰 문제는 어릴 적 부모나 형제 강아지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물과 물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나를 본다 - 오줌을 지린다 - 야, 화장실 가야지라고 화내며 말한다 - 이는 '놀자'로 치환된다 - 그 위를 뒹굴며 함께 즐겁자고 한다'가 반복된다.

같이 놀자가 압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는 목욕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만큼 쓰레기 더미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서 잘 수도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고집이 세다. 강아지가 고집이 세다라는 게 어떤 느낌인 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 명확히 알게 되었다. 고집이 세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꺾이지 않는 전투적인 마인드로 하고자 하는 것 - 놀자 아니면 먹자 - 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면서 잘 삐진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고집이 꺾였을 때, 놀자고 달려드는 데 모두가 외면하는 순간 삐진다. 그러면 자기 집을 찾아가고 불러도 오지 않는다.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다. 문제는 5분 쯤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놀자'로 치환되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달려온다. 이 놈이 머리가 좋은 건지 바보인 건지 갈피를 못잡게 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뭐 이런 놈이다. 다 괜찮으니 제발 지 오줌 위에서 뒹구는 짓만 안 했으면 좋겠다. 냄새 나 죽겠다. 대책이 없다.

댓글 2개:

  1. 딱 두세살짜리 아이네요. ^^ 즐거움을 많이 선사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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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ldman님 / 정말 딱 그 정도 말썽쟁이 인거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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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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