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7

냄새

1. 안개가 가득 껴서 가시질 않는다. 공기의 무게가 한결 더 무겁고 이들이 소리를 억눌러 세상은 조금 더 조용하다. 고담 시티 분위기를 연휴 내내 내더니 낮에 잠깐 해가 났다. 배트맨은 잠시 쉬러 가도 되겠군. 그리고 냄새가 난다. 뭔들 아니겠냐만 냄새에 민감하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 담배 냄새도 싫고, 아무거나 아무때나 집어먹어서 생긴 구취도 싫고, 살에서 나는 냄새도 싫다. 하지만 요새 유독 많이 난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요새 이유가 없는 맥심 모카 골드 인스턴트 커피와 담배가 유독 늘어났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간절히 커피를 마시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담배를 펴댄다. 예전에는 적어도 이유는 있었다. 생각을 한다던가, 휴식을 취한다던가, 쓸게 있다던가. 하지만 잉여로움 속의 커피와 담배는 그저 냄새만 만든다.

 

2. 손에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튼다. 하지만 크림을 바르면 - 거의 모든 종류의 핸드 크림에 공통된 반응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현대인의 병이라는 알러지가 생긴 건가 의심스럽다 - 이상한 물집 비슷한게 생기고 손이 갈라진다.

선택지는 간결하다. 트는 게 낫나, 갈라지는 게 낫나. 전자는 조금 더 아프고, 후자는 조금 더 보기 싫다. 딜레마다.

 

3.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옆자리 사람이 일어났다. 앞에 서있던 여자가 앉으려고 하던 찰나에 키는 꽤 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교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샥 나타나더니 냉큼 앉았다. 사연이 있겠지.

그는 다리를 계속 떨었고, 몸 전체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고, 휴대폰을 계속 두드려댔다. 그리고 냄새가 났다. 서울역 부랑자들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나는 냄새. 추위가 서려있는 냄새.

처음엔 설마 나한테 나는 건가 했는데 - 요즘엔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 분명 옆 쪽이었다. 곁눈질로 샥 봤는데 감색 바지는 약간 흙이 묻어있지만 전반적으로 말끔하다. 하얀색 운동화도 신었다. 패딩 잠바도 입었다. 하지만 대체 왜 부랑자 냄새가 나는 걸까.

가출하고 이틀 쯤 된건가 생각해 봤지만 - 마침 중학생 가출 사건을 다룬 해변의 카프카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 그러기에 옷이 너무 말끔하다. 그럼 역시 나에게서 나는 거였나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동묘역에서 벌떡 일어나 내렸다.

그리고는 냄새는 말끔히 사라졌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세탁을 하든지, 가출이라면 들어가든지 했으면 좋겠다. 거처가 불안정한 자에게 서울의 겨울은, 아무리 봐도 그렇게 녹녹한 장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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