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수치라는 건 아무 감정이 없다. 그래서 그런 숫자를 볼 때 마다 복잡한 감정이 된다. 구제역 사태로 돼지 286만 4천 984마리(2월 2일 발표시 까지)가 살처분되었다. 귀여운 돼지, 고민이 많던 돼지, 심약하게 태어난 돼지, 많은 새끼들을 출산하고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던 어미 돼지, 이들 때문에 가졌던 누군가의 기쁨, 고된 노동, 보람 등등이 모두 286만 4천 984라는 숫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통계에 익숙한 고위 공무원들은 이 숫자 안에 들어있는 감정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일삼는다. 286만이 보상금으로, 소나 사슴의 숫자가 또 다른 숫자로 그저 치환되기 때문이다.
이거보다 더 심난한 숫자들도 있다. 40대 사망률, 차상위 계층자의 수, 재개발로 쫓겨난 사람들의 수, 겨울에 길거리에서 얼어죽는 노숙자의 수. 이 모두 숫자로 치환되면 보다 더 효율적이 된다. 겨우겨우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자리를 잡은 철수와 못난 부모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거친 방황의 시절을 보낸 영희, 아들 딸 다 사라지고 박스를 모아 생계를 영위하는 할아버지를 쫓아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냥 3명이 재개발 지구 보상 대상이다라고 말하는 건 쉽다.
마찬가지로 앞뒤 꽉 막힌 상황에서 온갖 고민을 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그저 40대 자살률에 미미한 영향을 미쳤을 뿐이라고 말하면 가벼워진다. 숫자 속에는 감정이 들어있지만 숫자를 숫자로만 대하면 그것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많은 이들은, 그 결정으로 이득을 볼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우리 교육 특유의 상상력 부족은, 그들로 하여금 비인간적인 결정이 끊임없이 계속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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