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1

표현,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하도 여기저기서 오랫동안 들어와서 케케묵고 낡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문구다. 이제 와서 '표현의 자유'를 달라! 라니, 이 무슨 일제 하 1920년대에나 군사정부 하 1970년대에나 들렸을 법한 구호인지. '아이고, 입 조심해,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여하튼 알려져 있다시피 2012년 11월에 소위 박정근 사건에 대해 유죄의 하급심 판결이 났다. 항소를 하겠다고 했으니 아직 진행 중이다.

공안 검사라는 직책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을 떠나 일단 현존하고 있으니 그들도 밥 벌이는 해야 할 테고, 그러니 이런 사건을 기소하는 것 까지는 크게 봐서 이해할 수 있다. 10년, 아니 5년 만 지나도 속으로 그때 진짜 쪽팔린 짓 했다 하게 될 지 몰라도 여하튼 공안 검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다. 기소한 검사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아니, 이게 왠 떡 이러면서)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상은 잘 모르겠다. 우리의 3부에는 자기들의 결정과 판결이 나라를 바로 잡고 있고, 세상을 옳게 끌어 가고 있다는 사명감에 들끓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니 모를 일이다.

여하튼 이번 판결은 맥락을 무시한 채, 단지 리트윗을 한 것 만으로도 죄가 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이 논리대로 따지자면 뉴스 중간에 북한 뉴스를 삽입한 것도, 신문 중간에 북한 소식을 인용한 것도 죄가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시위 도중에 "김정일을 받들자~"라고 구호를 외쳤다.

라는 신문 기사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중간 따옴표는 맥락을 읽지 못하는 자들에게 위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죄의 가능성도 있다.

즉, 이 판결은 시민의 사고 수준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북한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찬양하고 있든, 놀리고 있든 시민들은 그냥 써져 있는 것만 보고 맥락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니 직접 명시해 떠 먹여 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거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단체로 개무시를 할 수 있다니.

이전에도 몇 차례 이 블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저 떠드는 것만 가지고는 전혀 위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 걸로 위해가 된다면 그 나라는 그게 더 큰 문제다. 농담이든 아니든 이상하게 들리는 소리를 떠들었다고 나라에 '위해'까지 된다면 대체 그 나라는 얼마나 간당간당한 토대 위에 놓여있는 것인지, 그런 존속이 의미가 있기는 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누군가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 그러면 논박하든지, 무시하든지, 같이 놀리든지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대화에 국가가 왜 끼어드는 건지. 또한 그렇게 불안불안하게 사람들이 보는 거, 말하는 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참견하고 감옥에 가두면 벌의 경중에 차이만 있을 뿐이지 북한하고 다를 게 대체 뭔가. 다만 똑같이 간섭은 해도 형은 더 낮으니까(노동 교화형 10년이나 강제 수용소에 보내진 않으니) 우리가 정신적으로 더 우월한 건가?

자본주의 파괴를 외치는 투쟁 선언문이라도 하나 썼다면 말을 안해, 이건 뭐 웃기지도 않다. 그런게 유머집도, 사설이나 신문 만평도 아니고 법원의 판결이라니, 더구나 그런 판결이 나온 나라가 바로 여기 우리나라라니 웃기다는 말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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