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9

인면수심

저녁에 배가 고파서 우동먹으러 갔다가 KBS 9시 뉴스를 하길래 봤다. 뉴스 클립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

어제 밤에 서울대 입구 역에서 노숙자 한 명이 추위 속에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그리고 지하철 역 관계자, 경찰의 간단한 인터뷰가 있었고 CCTV로 무관심 속에 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시민들의 무관심이 이런 사건의 원인 뭐 이런 식으로 끝났다.

매년 꽤 많은 노숙자들이 겨울에 사망한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에 신문에서 하루 평균 2명이었나 하는 기사를 본 적 있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사안에 KBS가 관심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뉴스로 보낸 걸 보면, 지하철 역에서 발생한 일이고 결국 시민들의 무관심이 문제라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언젠가부터 정치나 신문, 방송같은 우리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이런 식으로 시민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짓을 하고 있다. 엊그저께 포스팅한 전기 누진세 문제에 대한 링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산업 발전을 위해 상업용 전기의 낭비는 방치하면서 그 적자 비용을 시민들에게서 메꾸려고 한다. 잘못은 별로 춥지도 않은데 전기 난로를 펑펑 틀어대고 적정 온도 18도보다 훨씬 높게 방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시민들 탓이다.

간단한 난방으로도 18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고 잠깐 꺼놔도 걱정없는 경우는 잘 지어진 집들이고 이런 문제에서 어느 정도는 떠나있다. 정작 전기 난로나 전기 장판 외에 별 다른 수단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사람들은 보일러를 누가 공짜로 설치해주고 맘대로 틀어달라고해도 집이 부실해 18도 만들기 어려운 곳들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 만들어진 가정용 누진세의 세율이 올라가는 지점에 있는데 엉뚱한 곳에다 잘못을 뒤집어 씌운다.

노숙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만약 방송이 정말 노숙자 문제가 걱정되었고, 아무리 이 사회가 팍팍해도 거리에서 힘없이 사망하는 사람은 없어야 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면 보여줄 건 자기 인생 사느라 힘든(누가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지하철 타는 시민들이 아니라 서울시나 중앙 정부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관련된 위원회에 있는 정치인들이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쪽은 쳐다볼 생각도 의지도 없으니 엄하게 사회의 중하위층에서 하루 하루 열심히 살기 위해 애쓰는 현장의 경찰, 지하철 직원, 지하철 이용자들 탓을 한다. 사실 가장 안전한 사회망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은 정작 그따위 소리를 해댄 기자임이 분명할거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모두를 보살피는 행복한 우리 사회 따위의 될 법하지도 않고, 될 리도 없는 이상향 따위를 기대하지 않는다. 친하게 지낼 사람은 친하게 지내고, 관심없는 사람은 관심없게 지내고, 사이 안좋은 사람은 사이 안좋게 지내는 와중에도, 사고도 아닌데 길바닥에서 춥다고 사람이 사망하는 이런 문제가 안 생기도록 정교하게 조성된 사회가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인면수심따위 동원하는 수사로 시민 탓이나 하고 있으면 눈에 안보이는데 가 있는 사람은, 사회의 관심을 못받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평범한 상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이 일어난다)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차단된다. 그런 사람을 찾아내고 보호하라고, 또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재산과 삶도 보호받기 위해 사람들은 세금을 낸다.

 

 

결국 뉴스와 방송은 대하기 어려운 상대방, 혹은 자기 조직을 유지시켜줄 힘을 가지고 있는 요인들과의 대립은 피한 채 어차피 반항하지도 못하고 투덜거리지도 못할 무인칭 다수의 시민이라는 집단을 향해 너희들 잘못이니 알아서 고치라고 훈계 따위나 하고 있다. 기자도 한심하고, 그걸 중요하다고 뉴스 초반에 붙인 KBS의 데스크도 한심하고, 이따위가 되도록 엉망으로 투표하며 방치한 시민들도 한심하고, 나도 한심하고.

어쨋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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