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8

권한과 책임은 한묶음이다

권한에는 책임이 부여된다. 그렇기 때문에 권한이 있는 거다. 이는 또한 책임이 있는 자에게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임만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이 또한 말짱 헛일이다. 하지만 재밌는 점(=절망적인 점)은 이 사회에서 권한 > 책임은 상부에 권한 < 책임은 하부에 몰려가는 특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심지어 기업 이런 것도 아니고 나라 급에 해당하고 세금을 마음대로 쓴 레벨의, 어떠한 책임도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나몰라라하면 그만이고 실제로 그래왔다. 대통령은 방조 혹은 적극적 동조의 책임이 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뭐 이런 일이 있냐 싶긴 하지만 여튼 둘 중 하나다. 선거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라는 대의 민주주의 사회가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엉뚱한 곳에 권한을 부렸고 책임 역시 서로 넘기기를 하며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이런 일도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 책임이 있다면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거다. 그렇지 않고 책임만 줘 놓고 다 해결해 놓으라고 하는 일이 판을 친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탔는데 어떤 술취한 아저씨가 "가O역"에 가는 법을 운전하시는 기사분께 물었다. 뭐 알면 다행이지만 그 곳에 가지 않는 버스를 운전하는 분이 몰라도 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어떤 다른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며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버스의 종점은 중랑 차고지인데 그 가까이에 신내역이 있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면 간다는 거다. 위에서 말했듯 이건 알면 좋은 거지만 이 버스를 운전하는 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그럴 땐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고 종점에서 다른 안내를 받을 수도 있을 거다. 문제는 모른다고 기사님께 화를 내는 제 3자의 존재... 뭐 이 일은 다행히 금새 마무리가 되었지만.

버스를 운전하는 건 운전자 한 명 혹은 가족이나 친구 몇 명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 수십 명을 목적지에 데리고 가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에 옆에서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사고가 나면 수십 명이 다칠 위험이 있으니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이 주어져야 그 책임을 다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사적 구제는 금지되어 있으니 결국 안전 장치의 확보와 쓸데없는 시비에 대한 강력한 규제 정도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런 경우에 대해서 가능한 많은, 엄청나게 많은 과태료를 매기는 규제안이 만들어 진다면 당연히 찬성이다. 한 1천 만원 씩 물리면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책임에 대해 월급이라는 대가(=권한)을 받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월급은 여러 항목이 결합된 중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당장 수십 명을 목적지에 데리고 가는 책임을 완수하는 데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건 승객을 옮기는 책임이 아니라 버스를 운전하는 책임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거다.

사실 길 물어보는 것, 버스 노선 물어보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늘 건널목에 서 있는 버스 문을 두드려 길을 물어보는 사람을 목격했다). 알면 좋지만 모르면 그만인 정보는 자신이 알아내야 하고 그런 걸 위해 교통 경찰 등등이 존재한다. 안되면 120에 물어봐도 되고 그 외에도 대안은 많다.

사소한 일이라도 책임이 있다면 권한이 함께 부여되어야 한다. 물론 대신 난폭 운전, 보복 운전에 대해서도 합당한 규제가 필요하다. 여튼 아무 민원에나 벌벌 떠는 건 잘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대로 된 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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