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2

기억

1.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거 같고 그래서 현재 심한 두통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연관에 대해선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소화 불량으로 두통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편두통 때문에 소화가 안된다고 느끼는 게 맞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두 경우 즉각적인 대책이 좀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즉 소화 불량 -> 두통이라면 소화를 시켜서 두통을 없애야 하고 / 두통 -> 소화 불량이라면 두통을 가라앉혀서 소화 불량을 없애야 한다. 여튼 둘 다 했는데 좀 전에 나가서 좀 걸었고(매우 추웠다), 편의점에서 가스 명수를 마셨고, 집에 들어와서 애드빌을 먹었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밖에서 들어오는데 불이 다 꺼진 건물 위 내 방 창문의 빨간 히트텍 글자가 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튼 여전히 두통도 소화 불량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2. 오늘 트위터를 잠깐 보니까 4월 16일의 기억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날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대체적으로 처음 뉴스에 리트윗을 하고, 다행이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썼고 그 이후 ?, ??, ???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거 말고도 다른 기억들도 있다. 개인적인 기억들도 있고 그외에도 삼풍 때, 성수대교 때 등등의 기억이 있다. 이 두 사건이 지나갈 때의 상황은 매우 세세하게, 만약 필요하다면 꽤 자세히 기술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 기억이 그 날 내가 겪은 일이라는 확신은 좀 어렵다.

예전에 무슨 다큐멘터리 실험을 보고 커다란 충격에 의한 각인과 그에 이어진 기억은 확신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눈과 기억은 일단 믿으면 안된다. 이건 직접 경험론자의 이야기를 내가 별로 신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911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고, 인류의 아픔이었고, 미국이 변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내게는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며 각인되는(그러니까 위에 적은 비극에 비하자면) 일은 아니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의 전쟁 개시날과 마찬가지로 그 날은 기억에 없다.

내 기억력의 특징...은 기억의 시간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거다. 즉 근래의 일과 예전의 일의 선명도에 별로 차이가 없고 하나의 사건 아래에 있던 일은 복원이 가능하지만 어느 사건이 먼저인지를 잘 모른다. 애초에 일단 기억에 들어가면 그런 건 별로 중시하지 않는 거 같다. 하지만 예컨대 개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이것 때문에 오해를 꽤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남아있는 큰 그리고 소소한 기억들은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거야 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사라졌다고 믿은 것들이 종종 예고없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것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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