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건 피곤한 제도다. 모든 종류의 인권 보호 역시 피곤한 제도다. 그럼에도 이걸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을 케냐 사파리의 동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별 생각없이 행동없이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다 그냥 케냐의 사파리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알다시피 사자만 살아남고 다 죽진 않는다. 톰슨 가젤도 잡초들도 제 역할이 있고 제 살자리가 있다. 그 안에서 균형을 이룬다. 그렇다면 그게 사는 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피곤함에 익숙해 져야 하는 거다.
아주 예전에 이 이야기를 자주 썼던 거 같은데 요새는 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다기 보다는 저런 것도 못 알아듣는 인간들은 버리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좀 잘못된 생각이다.
무엇보다 버리고 간다는 말은 위험하다. 요새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기 때문인지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파시즘이 무서운 이유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그대로 써먹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위험한 이유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그대로 써먹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게 위험하다. 이렇듯 위험한 이념들은 그냥 가만히 두면 흘러가는 곳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강력한 파워를 가지는 거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인류는 오래도록 그렇게 열심히 싸워오고 있는 거다.
하지만 물론 이건 일종의 레토릭이다. 버린다기 보다는... 배제하고 경멸하고 도태시키자는 쪽에 좀 더 가깝다. 그렇지만 이건 또한 예컨대 제도화된 공산주의와 비슷한 위험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검열을 하고, 자기 비판을 한다. 이걸 혼자서 하면 몰라도 제도가 되면 형식에 힘이 생기고 교조주의가 되어가며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러므로 유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유토리는 경험이 쌓이며 제도를 만들어 낼 때 형성된다. 하지만 누누히 말했듯 우리의 형식 민주주의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씌워진 거다. 그런 제도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까지 그렇다. 초등학교는 왜 6년인가. 자동차는 왜 도로의 오른쪽으로 달리나. 거기에 무슨 연유가 있고 이유가 있나.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심심해서 예전에 찾아본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전에 4년이었다가 1907년에 6년이 되었다. 1909년에 조선에 일본 교육령이 적용되면서 여기도 6년이 되었다. 왜 그럼 일본은 6년이냐 하면 미국의 6-3-3 제도를 따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6-3-3이냐 하면 별 이유없고 12진법 따라 12년 정도가 좋지 않을까? 한 다음에 그걸 반으로 나누고 어려운 6년 쪽은 또 반으로 나눈 거다. 그래서 6-3-3이다. 웃기는 거 같은 데 그렇다.
하지만 이건 성취도나 성장 과정 같은 걸 고려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요새는 미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곳은 잘 없고 나름의 교육 체계들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세 성인, 18세 성인 같은 것 임의의 선이 각 나라마다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교육 제도가 만들어 질 거다.
여튼 교육 제도 같은 것도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나아간다. 민주주의라는 건 훨씬 더 복잡하고 인권 감수성의 문제는 더더욱 복잡하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왜 그렇게 피곤한 걸 해야 하냐고 물으면 답이야 뭐 간단하다. 그게 더 낫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버릇이 되면 덜 피곤할 거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행동해도 피곤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마 첫번째 도달점이 아닐까.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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