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4

리멤버 다시

약간 다른 이야기를 먼저. 사실 이건 예전 알이에프 시절 곡 소개를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지금도 딱히 변한 게 없으니 해보자면 : 신곡을 들고 나온 아이돌들이 곡 소개할 때 하는 말들을 보면 힙합이 가미된 신나는, EDM이 들어간 흥겨운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정말 쓸 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되는게 이건 혹시나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작 후기에나 실릴 이야기다.

그냥 이 노래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한테 가장 궁금할 점인데 짜여져서 외워 말하는 곡 소개에도 그런 이야기는 그다지 비중이 크질 않다. 이런 건 싱어송라이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결과물의 내용이 궁금하지 만들면서 자기가 무슨 고민을 했는지는 궁금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지 않나. 메이킹의 레퍼런스를 별 이유도 없이 왜 드러내는 지 모르겠다.

여튼 리스너에게 필요한 정보는 내용이 뭐냐다. 그리고 신나는, 흥겨운은 공급자가 말할 게 아니라 소비자가 말할 거다. 약간 비슷하게 공연장에서 일어나! 박수쳐! 같은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니들이 잘해서 일어나게 해... 니들이 잘해서 박수치게 해... 재미도 없는 시원찮은 거 하면서 억지로 일어나라고 하지마...

물론 음악 잡지 시장이 붕괴되어 있고, 특히 가요의 제작 후기 같은 건 실릴 곳도 거의 없고, 읽을 사람도 거의 없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아이돌로지 http://idology.kr/ 의 분투를 기대하는 부분이다, 이외에 큐오넷 같은 곳 등에 종종 나온다) 저런 식으로 대신 말하게 되는군 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여튼 이런 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좀 가지고 있다.

뭐 여튼 그런 고로 가사 이야기, 뮤직 비디오의 내용 이야기가 나오면 유심히 듣는 편인데 며칠 전에 에이핑크의 리멤버 가사(http://macrostars.blogspot.kr/2015/07/blog-post_16.html 참고)에 대한 해석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별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게 명백한데 뭐 팬의 입장에서 이런 김에 한 번 더 들어보세요 :-) 이런 것도 약간 있고 등등등.

더큐멘터리에 가사 이야기가 나오던데 내 생각과 좀 다르다...는 이야기였는데 라디오였나에 나와서 또 이 부분 이야기를 했다. 나은, 초롱 vs 은지, 보미로 의견이 약간 다른데 즉 신세 한탄이 과거의 일이냐 현재의 일이냐다.

약간 덧붙이자면 은지의 경우 예전부터 가사라는 건 듣는 사람이 자의로 해석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Secret 가사에서도 약간 비슷하게 멤버별로 다른 의견 제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모호함을 전달하는 가사도 있기는 하지만 에핑의 위 두 곡의 경우라면 특히나 곡과 합쳐진 내러티브가 중심이다. 이야기 꾼(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이야기 꾼이다)이 내용은 알아서 들어... 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다. 여튼 내용을 가지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는 자유겠지만 이건 그 전의 문제다.


가사를 쭉 한번 보자면 https://youtu.be/bXlrqQKbjSM

(하영) Do you remeber? 우릴 비추던 태양, 넓고 푸른 바다 마치 어제처럼
(보미) 시간이 멈춰버린 기억 그 속에

(초롱) 하얀 모래 위를 함께 걷던 날 기억하나요
(하영) 잠깐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던 Yeah (하나 둘 셋)
(나은) 어느새 이렇게 점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사라져가고 (하나 둘 셋)
(남주) 뒤돌아 볼 수도 앞을 내다 볼 수도 없이 지친 너와 나 이제

(은지) 함께 떠나요 시원한 바람 속에 오늘은 다 잊고 그때 우리처럼 
(보미) Do you remeber? 우릴 비추던 태양 넓고 푸른 바다 마치 어제처럼
(은지) 시간이 멈춰진 듯이 언제나 바랬듯이 Remember Remember Remember 

(초롱) 붉은 태양이 지는 그 여름밤을 기억하나요
(하영) 어둠이 하늘을 덮어올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 걸 Yeah (하나 둘 셋)
(나은) 하늘을 모른 채 땅만 바라보는 게 점점 늘어만 가고 (하나 둘 셋)
(남주)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시간 속에 지친 너와 나 다시

(은지) 함께 떠나요 시원한 바람 속에 오늘은 다 잊고 그때 우리처럼 
(보미) Do you remeber? 우릴 비추던 태양 넓고 푸른 바다 마치 어제처럼
(은지) 시간이 멈춰진 듯이 언제나 바랬듯이 Remember Remember Remember

(나은) 뭘 아직도 망설여요
(초롱) 다 잊고 나와 함께 가요
(남주) 저 푸른 바다에 다 던져버려요 
(은지) 우리 더 늦기 전에
(하영) 기억하나요 맘속에 그때가 어제처럼 느껴지는 순간

(보미) Do you remember? 우릴 비추던 태양 넓고 푸른 바다 마치 어제처럼
(은지) 시간이 멈춰진 듯이 언제나 바랬듯이 Remember Remember Remember


가사만 가지고는 완전한 결론을 내기가 어렵긴 한데 다른 부분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 은지 이야기는 위 시간 차이가 꽤 짧다. 좋았는데 - 지금 안 좋아서 우울하고 - 그러니 함께 떠나서 다시 잘해보자... 가 된다. 나은 이야기는 시간 차이가 좀 길다. 좋았는데 헤어졌고 - 그래서 지금 우울하고 너도 우울할테고 - 그러니 리멤버하며 다시 함께 떠나보자... 가 된다. 전자의 경우엔 헤어짐이 없는 권태기 상태라 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더 예전의 기억을 리멤버 하는 거고 그러므로 땅만 바라보고 하늘도 못 보는 슬픔도 전자에 비해 훨씬 더 크고 무겁다.

이 노래를 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위에 말했듯 이 곡의 내러티브는 음악과 함께 완성되는데, 곡 자체가 꽤나 아득하기 때문이다. 이 곡 감상 리뷰를 찾아 보면 분위기가 늦여름 8월 말 분위기가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는데 그 이유는 곡의 아득한 분위기 덕분이다.

약간 첨부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음방에서 후렴구 전에 나오는 남주와 은지 부분에서 둘의 표정이 과도하게 신나 있는 거 같다... 물론 뭐 전체적으로 보자면 즐겁게 부르는 게 매력 포인트고 그렇게 즐거울 수록 곡의 우울해 지는 게(왜냐면 전에 말했듯 이건 못 떠날 여행이므로 - 하지만 은지 해석이라면 이 여행은 떠날 수도 있을 거 같다) 특징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리고 이 이야기를 길게 해보는 이유 중 하나는 남주 목소리는 저 부분의 아득함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 앞 부분 파트와 후렴구 파트를 줘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러면 은지-보미-은지로 이어지는 약간 이상한 후렴구의 앞 부분이나 뒷 부분을 남주에게 줘서 정리를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나은 목소리는 저 부분에 딱이다.

분위기 셋(나은, 초롱, 하영) - 후렴구 둘(은지, 보미) - 올라운드 플레이어 하나(남주)를 어떤 식으로 배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곡의 특징을 선명하게 만들어 내는 그룹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곡이 이상하다기 보다는 배치에 발전할 요소가 있다. 뭐 지금도 물론 좋은데 다음 번에 더 좋은 곡을 내놓길 기대하며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또 길게 해 봄...


PS 1) 이 곡에 대한 신사동 호랭이의 인터뷰가 실렸다. 3일 전에 나왔는데 몰랐네... 기사는 여기(링크). 이 분의 이야기에 기준해서 보자면 이 노래는 사랑 노래가 아니다. 리멤버의 대상은 더 어린 시절이고, 저 곡의 '너'는 연인이 아니고, 그냥 어릴 적 친구일 수도 있다. 신세 한탄은 그냥 힘든 현실에 대한 한탄이다. 그러니 리멤버해서 갈 곳은 그때처럼 맘 놓고 쉬자가 된다. 그렇게 본다면 이 곡은 힐링송이라는 점에서 NoNoNo에 매우 가까워 지고 남주가 웃는 이유는 여전히 납득이 안 되지만 은지가 웃는 이유는 납득이 된다.

신사동 호랭이는 "친구들과 여행을 함께 가게 되면 보통 차에서 음악을 크게 틀거나 이어폰을 나눠 끼며 당시 유행곡을 듣잖아요. 유행곡의 벌스 부분이 흐르다 후렴구가 되면 저도 모르게 자동으로 따라 부르면서 놀게 되요"라고 대답했다. 즉 은지 후렴구가 시작되고 전조되면서 보미 파트가 나오는데 거기서 빵 치고 올라오는 효과를 노렸다는 거다.

이 부분은 작가가 자신의 농담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미 꽤나 글렀다고 생각한다. 여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오해를 사는 건 빵~ 전이 너무 쎄고, 빵~ 후가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다. 듣기에 저 부분은 신호 말대로 후렴구가 나오면서 빵~ 터진다기 보다는, 후렴구가 시작되기 전에 라디오 주파수를 휙 돌렸고 마침 딴 곡의 후렴구가 나오더라... 에 가까운 거 같다. 많은 오해들이 잘못된 효과의 사용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PS 2) 저 설명을 염두에 두고 리멤버의 가사를 보면 확실히 이건 애인과의 곡이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다. 정말 노노노에 가까운 단순 떠나자 힐링곡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양념이다.

그렇지만 분명 이 곡은 매우 안타까운 느낌의 뭔가가 담겨 있고 그 인상이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 에핑의 노래는 나은과 초롱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잡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특히 간만의 우울한 이야기였던 LUV에서 그런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 리멤버의 경우 역시 나은과 초롱이 분위기를 잡고 둘이 신세 한탄 부분을 맡고 있는데, 마침 이 두 명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 가사를 예전에 헤어진 연인과의 아련한 추억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덕분이 아닐까... 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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