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리적이라는 말의 효용성을 의심하고, 사실 이런게 학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더구나 현실 경제에 영향을 미친 다는 점에서(가장 정치적 영향력을 많이 미치는 학자군이 주류 경제학자들이 아닐까?) 우려를 넘어서는 불유쾌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세간의 단어를 떠나서.
가끔 자신의 두뇌 활동을 합리적 - 비합리적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선택을 내릴 때 합리적으로 볼 때는 이렇지만, 비합리적으로 볼 때(점증주의적 관점, 즉 세상살이의 동글동글함을 위해서는)는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의 프레임을 말한다.
이런 트레이닝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두뇌의 뛰어난 점은 곰곰이 생각을 해 나가면서 합리성 + 비합리성을 섞어서 사고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을 분리해 사용하는 트레이닝은 은연 중에 그 능력을 마비시킨다.
즉 결론적으로 뭘 대해도 이런 식으로 분리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흔히 이성과 감성을 대비시켜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도 이런 트레이닝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둘의 체제는 물론 다르고, 논리라든가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는 양상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곳에 특화시키지 않음에서 위대함이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지 말라고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부분을 보고 전체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거다. "저 식당 맛없어"라고 할 때 그 식당의 모든 메뉴를 전부 먹어봐야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잖은가. 현실에서는 일부가 모든 것이다"
우연히 본 글이다. 리트윗 된 글을 읽었기 때문에 원래 게시자의 이름은 생략한다. 이 문장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저 식당 맛없어"는 그냥 봐도 알겠지만 일반화가 아니다. "저" 식당으로 명제가 한정되어 있고, "맛없어"라는 가치판단 어구가 들어가 있다. 뒷 부분에 주목해서 말을 넓히자면 이는 일반화된 명제가 아니다.
이건 그냥 한 식당에 대한 판단일 뿐이고, "식당의 모든 메뉴를 전부 먹어봐야..."가 이 판단의 근거이다. 귀납 논리를 전개해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식당 전반에 대한 일반화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맨 마지막은 약간 다르다. "현실에서는 일부가 모든 것이다"는 문장은 선언에 가까운 일반화 명제다. 이 증거로 사용되는 건 앞 문장 전체다. 즉, "맛없는 메뉴 -> 저 식당 맛없어"를 통해서 "현실에서는 일부가 모든 것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경우 맨 마지막 문장이 가지는 명제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근거 명제들은 일반화를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한정적이고, 단편적이다. 결국 이 논증 전체를 봤을 때 아주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3. 이건 그냥 덧붙여서.
요즘 들어, 맘 터놓고 쉽게 뭔가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게 꽤나 힘든 일이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 다들 바쁘기도 하고, 한계 상황이라 그런가 뭐든 버겁다. 세경이는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했을까.
사실 1번의 이야기도 그렇다면 나를 둘로 나눠서 대화를 시도해 보는건 어떨까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참, 이런 이야기나 쓰고 앉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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