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5

잘못된 인식

얼마 전에 블로그들을 멍하니 돌아다니다가 살짝 웃기는 이야기를 하나 봤다. 간단히 정리하면 3.1운동은 시작하자마자 폭력 운동이 되었고, 그로 인한 일본군의 피해가 3.1운동 참가자보다 더 컸기 때문에, 진압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스토리다.

여기서 나는 두가지를 잘 못 했는데 하나는 이런 이야기를 찬찬히 읽었다는 점이고 - 트래픽을 늘렸다 - 더불어 댓글들도 찬찬히 읽덨다는 점이다. 바쁘고 한정적인 시간 동안 무엇을 읽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선택인데 쓸데 없는 시간을 너무 날려버리고 있다. 넘치는 정보들은 개인적인 제어의 수준을 순식간에 넘어선다. 어려운 일이다.

위 내용에 대해 딱히 반박하거나 할 필요는 없는거 같고, 살짝 언급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아마츄어 사학자, 혹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야 전공자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팩트의 중요성을 너무 과대 평가 한다는 점이다.

팩트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fact라는 단어와 truth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듯이 둘은 (아마도) 전혀 다른 문제 의식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왜냐하면 팩트는 그것만 가지고는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든 저러든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학은 근본적으로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사태를 그런 식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언제나 중요한 점은 사태의 줄거리고 그 팩트가 왜 발생했느냐 이다. 사진은 - 지워지지 않는 - 기록이지만 그것이 곧 역사가 아니다. 이 점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팩트 주의자들은 곧잘 사태의 전말을 오해하거나, 잘못 파악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획득하는 길은 너무 멀고, 확신할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저 그 순간의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그저 그 순간의 팩트들만을 수집할 뿐이다.

또 하나는 이렇게 만약 팩트를 넘어선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게 인문학의 임무라면 그게 가능키나 하겠냐는 회의론이 대두될 수 있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 시대를 잘 모른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개연성있게 설명하는 것은 사실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인문학은 그것을 알려고 하지만, 다 알게 되리라고 (더 이상은) 믿지 않는다. 그저 접근할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인간은 더 이상 그토록 무모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인터액션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 정교함을 획득하기 위해 그리고 논리의 체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인문학은 존재하고, 그 정교함이 다른 학문의 메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결과 이런 모든 것들은 가설 위에 존재하게 된다. 존재론이 여전히 동작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므로 학문은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단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으니까 변명들이 나올 뿐이다. 이렇게 짜증나는 생각들을 포섭해야 하니 아무도 인문학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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