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31

언제나 뭔가 배운다

1. 예능으로 배우는 인생 :

이경규 마리텔 낚시편을 봤다. 저번에 개편도 봤는데... 오랜 예능팬으로서 나름 충격적인 방송이었다. 저런 식으로 뛰어 넘어버리는 구나... 싶었던. 지금까지 여기 나왔던 다른 예능인들이 왜 실패했는지 그냥 한 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그 분들 대부분은 아마 이경규와 똑같은 걸 똑같이 했어도 실패했을 거다. 솔직히 클래스가 다르고 자기 예능의 장점이 무엇인지 단점이 무엇인지, 뭘 해야 하는지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

대충 보자면 : 개편과 낚시편은 똑같이 세 블록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해야 할 것(개 분양, 물고기 잡기) - 하고 싶은 것(개와 놀기, 낚시 하기) - 채팅방과의 소통 이렇게 나눈 다음에 셋을 계속 회전 시킨다. 그리고 이 블록들과 사이의 텀을 적절한 수다로 꽉 채운다. 수다는 크게 흥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고 약간 업된 예능형 템포로 쭉 나아간다. 3시간을 비슷한 텐션으로 유지한다.

그냥 개랑 놀다가 드러눕고, 낚시하다가 드러눕는 걸로 보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시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주욱 밀고 나가는 텐션이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끝나는 지점도 기가 막힌데 개편에서는 방송의 표면적 목적, 개 분양이 누구에게 가는가를 본방에 넘겨서 방송으로 확인하게 만든다. 낚시편은 이런 부분이 좀 더 드러나는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입수 공약을 시행하는데 막판에 타이밍을 재더니 3시간 딱 되는 지점에 뛰어든다. 하일라이트인 입수의 모습은 라이브 방에서는 볼 수 없었고 역시 본방으로 확인하게 만든다.

채팅창, 방송 시청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자신의 방송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다. 사실 마리텔에서 대부분의 예능인들이 실패한 이유는 초보의 신선함이 이 방송을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테랑 예능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방송에 들어갈 때 어떤 식으로 전략을 짜는가 라는 걸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줬다.


2. 걸그룹으로 배우는 인생 :

걸그룹 리얼 예능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방송중이다. 한동안 유행하다가 맥이 끊겼고, 그러다가 쇼타임 에이핑크, 씨스타로 슬슬 살아나더니 다시 걸그룹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방송이 살아났다. 사실 요새 시청률이면 팬덤이 큰 그룹만 잡아도 평타는 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걸 가지고 무슨 예능의 획을 긋는다든가, 시청률 10%를 달성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아무도 안 할테고 요지는 마케팅, 바이럴과 연결시키는 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튼 이상한 나라의 러블리즈와 트와이스의 우아한 사생활이 있는데 어제 트위터에 잠깐 끄적거렸지만 이 둘 중 그나마 전자는 좀 보겠는데 후자는 좀 어렵다. 둘 다 열심히 하는 티가 너무 나는 문제가 있는데(이 한 몸 다 바치겠습니다!) 이런 티가 너무 나면 화면이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류 예능이 재미있으려면 그런 티를 안내는 기술이 좋은 것 또는 될대로 되라 또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 등등이 있다. 신인의 경우 처음은 어렵고 뒤 둘 중 하나인데 가운데는 훈련 받은 아이돌의 경우 나오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런 쪽이 작두를 타면 아주 굉장한 게 나오긴 한다.

트와이스는 티가 나는 쪽이고 러블리즈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쪽이다. 그래서 그나마 후자 쪽이 볼 수는 있는 거 같다. 러블은 어떻게 저런 사람들만 다 모아 놨는지 신기한데 이런 팀은 결국 꾸준한 팬덤 구축으로 가야 한다. 실수가 없고 콘셉트를 잘 유지한다면 2, 3년 후 쯤엔 팬덤과 함께 아주 튼튼해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길고 멀리 봐야 하는 타입이다.

재밌는 건 지수를 취급하는 방식인데 러블리즈는 표면에 드러내고 멤버들 사이, 팬덤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데 사용한다. 이런 경우 뭐 하는 지는 알겠는데 보기는 좀 부담스럽다. 그래도 열혈 팬덤의 기초가 되는 일이므로 이 정도는 괜찮다.

아주 다른 방식으로 레이디스 코드가 있다. 사실 예능감은 이쪽이 훨씬 더 있는데 나갈 자리가 없는... 여튼 레코는 비극적 사건에 대해 멤버도 팬들도 일단은 모른 척 한다. 물론 그 사실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이미 공유되어 있다. 예컨대 V앱에서 각자 숙소방 소개를 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스윽 지나가지만 다섯 명이 보이는 식이다.

이런 경우는 기존 팬덤을 튼튼히 하기엔 좋은데 새로운 팬이 들어갈 때 허들이 꽤 높다는 문제점이 있다. 기존에 공유되고 있는 기억과 감정이 너무 특수하기 때문이다. 이걸 어떤 식으로 극복해 낼 지, 그 모습을 볼 수는 있을지 궁금하다. 결국은 좀 더 밝게 가는 데에 무슨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은 회사의 전략도 있지만 이런 데서는 각자의 성향과 스킬이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거기까지 훈련되어 있다면 그도 그 나름대로 굉장한 거다. 아이돌 그룹은 결국은 팬을 모으는 능력,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능력에 달려 있는 거다. 노래 실력이나 댄스 실력, 예능 실력은 그걸 위한 재료일 뿐이다.

20160330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뭔가를 쓰자고 했을 때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뭘 쓸지 계획을 잡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아무 생각 없이 쓰면서 뭘 찾으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 블로그의 경우 태반이 아무 생각 없이 뭔 소리라도 하자 싶어서 끄적거리는 종류고 예외적으로 이 이야기를 쓰면 재밌으려나? 정도에서 시작하는 종류가 있다. 지금 이 글의 경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하면 재밌으려나?라는 생각이 나서 글쓰기를 눌렀다.

원고를 쓰는 경우에는 계획을 잡고 쓰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그런 게 잡혀 있지 않은 경우 좀 곤란한데 쓰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싶어서 끄적거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들은 뭔가를 탐구하는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몇 개를 선택하고 몇 개를 파고 들어가 본다. 여기서 뭐가 나올지는 모른다. 뭔가 나오면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별 게 없으면 상황이 0으로 리셋된다. 이런 경우 시간에 쫓기고 있으면 꽤 곤란해 진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이 (내 생각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 나오기도 한다. 혼자 써 놓고 혼자 재미있는데 하는 정도지만 여하튼 그렇다. 하지만 실패의 확률이 꽤 높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이런 경우 무의식적인 선택(이것들을 파고 들어가 보자에서 이것을 고른 이유)을 믿어야 하는데 자신에게도 잘 안 믿기는 경우 쓰고 있으면서도 이거 이렇게 가면 뭐가 나오긴 하나 의심을 하고 그러다가 보면 이야기가 점점 더 골로 간다.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게 좀 곤란하다.


1부터 5

1. 최근 너무 피곤하다. 날씨 탓인지, 계절 탓인지, 추위 탓인지, 사람 탓인지, 내 탓인지 잘 모르겠다.

2. 오마이걸 이번 앨범은 무척 좋다. 하지만 5중 3은 괜찮지만 2가 별로라는 점에서 아직 정상궤도에 들었다고 보긴 어렵다. 개인적으로 어떤 그룹이 물이 올랐다고 느낄 때는 역시 수록곡이 전부 다 좋을 때다. 뭘 해도 다 잘 되는 시기. 괜찮은 기획사의 팀이 붙어 있는 어떤 그룹을 추적하고 있다보면 그런 시기가 반드시 온다. 문제는 모든 그룹이 다 오는 게 아니라는 건데 역시 그건 회사, 기획의 문제다. 혼자서 뿜어낼 수 있는 포스의 크기라는 게 한계가 명확한 시대다. 그런 점에서 설리나 아이유는 대단함... 남자는 이런 부류가 없다는 점도 재밌는 부분이다.

3. 떡볶이 뷔페라는 게 있길래 먹었다. 남자 두명이서 약간 오버한다시피 마구 쳐먹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인지 완급 조절에 실패했고 1시간 째에 결국 떡볶이한테 졌다. 분하다. 여튼 당분간 떡볶이 생각이 안날 거 같다.

4. 단기적으로는 바쁠 게 없는데(당장 오늘 자버린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한두달 간격으로 보면 할 일이 좀 있다. 일곱, 여덟? 일이 한 삼십 개 쯤 계속 밀려있으면 좋겠다. 여튼 어떻게 쓸까 뭐든 계속 고민하는데 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여튼 구석의 빈 지면이라 생각되는 곳을 꽉꽉 채워내는 건 나름 재밌는 일이다.

5. 돈이 없다. 1~4가 다 문제가 되는 건 사실 이게 제일 크기도 하다.

20160327

오래간 만에

1. 요즘 스텔라의 신데렐라라는 곡을 자주 듣는다. 좀 아까운 그룹이다.

2. 오마이걸의 Sugar Baby라는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실 나 침대 위 널 바라 볼 때면
항상 나 수줍은 소녀처럼 아이처럼 부끄러워 웃음지어 boy 너는 따뜻해
나를 봐 네게 한 걸음씩 다가가 한 걸음 뗄 때마다
심장 뛰어 미치겠어 내 맘은 두근두근 boy 
너는 완벽해 좀 더 속삭여 줄게 oh 이리와 안겨줘 나의 친구
oh 곰돌이 sugar yeah baby baby
넌 나의 teddy bear 항상 웃고 있는 넌 teddy bear 제발 안아줘
언젠간 네가 날 안아줘 baby baby
넌 나의 teddy bear 나를 웃게 하는 넌 teddy bear
쿵쿵 뛰는 내 맘 you're sugar baby oh you're sugar baby

2절도 비슷한 내용이니 생략.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몇 가지 생각이 나는데 1) 이 정도면 민망하지도 않을 정도로 포지셔닝의 수준이 높다 2) 실제로 테디 베어가 깨어나 나를 안는다면 무섭겠지... 3) 여자친구 시간을 달려서에서 갑자기 움직이는 곰이 슈가라면 더 재밌을 거 같다

3. 요즘 팅커 테일러를 다시 읽었는데 구 공산권에서 탈출한 이후 오직 삶의 안정 만을 향해 달려가지만 자의도 아니고 타의에 의해 결국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얼마나 실패했는지 소설에서도 반 페이지 분량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4. 다이제, 구 다이제스티브는 훌륭한 식량이다. 하지만 설탕을 빼고 버터나 치즈를 발라 먹을 수 있게 나온다면 더 좋겠다.

5. 사실 거의 모든 이의 목표는 결국 심신의 안정이 아닐까. 존재하는 건지도 확신할 수 없는 그것.

20160318

매시브 어택, 커트 코베인

제목이 좀 이상한데...

어쨌든 RSS 뉴스를 주르륵 내리고 있는데 매시브 어택이 1월에 새 EP를 냈고(4곡이 들어있다),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에 케이트 모스가 나오고, 수록곡 중에 트리키가 피처링한 곡이 있고... 하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이긴 하지만 블루 라인이나 프로텍션 같은 음반이 생각나서 요새도 듣기는 한다. 프로텍션이 94년에 나왔으니까...

커트 코베인은 제목에 왜 썼냐면... 꽤 장르에서 벗어나지 않고 음악을 듣다가 노선이 변경된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스멜 라이크 틴 스피릿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여튼 나 자신은 꽤 충격을 받았고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 이후 음악을 듣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당시 그 음악에 대해 너무 많이 곰곰이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곡 자체가 그런 면모를 이미 지니고 있는 건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 몇 년 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들은 적이 없다. 듣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안했다.

2010년 이후 찾아 들어본 얼터너티브 쪽 음악은 차라리 펄잼과 사운드가든이었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났었는데 CD를 뒤져보니 있었다. 몇 년 전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대거 가져다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도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스멜 라이크... 이후 고개를 돌리다가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을 만났고, 매시브 어택의 블루 라인을 만났다... 그 이후엔 한동안 뭔가 수집하듯 음악을 들어댔기 때문에 리스트를 나열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고.

이 비슷한 시기 영향을 미친 또 하나 음반은 93년에 나온 재즈마타즈였다. 구루... 갱스타의 바로 그 분... 갱스타는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니 하드 투 언 CD가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디제이 프리미어가 다듀랑 콜라보를 하기도 했으니 세상 참...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뭐 그렇다고. 근데 트리키는 그때도 별로였는데 지금 들어봤더니 여전히 별로다. 20여년이 넘게 꾸준히 별로인 분...

20160315

당구 이야기

주말에 마리텔 생방을 봤는데 김구라 쪽에서 당구편을 했다. 뭐 예능에서 당구를 소비하는 방식이 보통 그러하듯 방송은 사실 거지 같았는데... 여튼 게스트로 이미래 선수가 나왔는데 그 올바른 폼에 큰 감동을 받아 밤에 잠들기 전에 유튜브에서 검색해 경기 영상 같은 걸 몇 편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이수근 복귀작 죽방전설이라는 당구 예능 방송이 있었는데 이미래 선수가 여기 레귤러 MC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 차유람 선수였는데 결혼하면서 바뀐 거 같다. 뭐 여튼 이 방송도 거지 같긴 매 한 가지인데...

그것까지 합쳐서 몇 편 보다 보니까 구경꾼의 입장에서 장단점이 보이는데 이미래 선수가 폼과 집중력은 예술이고 기본 자세를 거의 암기하고 있다시피 하는데 아무래도 멘탈이 아직은 좀 약한 듯 싶다. 굉장히 이기고 싶어하고 그것 때문에 흔들린다. 이제 스무살이니까 뭐 앞으로 기대된다. 어쨌든 보고 있으면 오래간 만에 당구가 치고 싶어질 정도로 그림 같은 자세다.

그건 그렇고 죽방은 당구 도박을 뜻하는 속어인데 도박으로 문제가 되서 방송을 쉬던 분이 저런 제목의 예능으로 복귀 한다는 건 꽤 웃긴다. 저런 이름이 어떻게 통과됐을까.

20160314

또 알파고에 대한 생각

일요일에 이세돌 경기를 틀어놨는데 이번엔 이겼다. 무엇보다 3번 지고나서 이기다니 그 멘탈이란.. 프로 바둑 기사라는 건 역시 대단하다.

바둑도 인공 지능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알파고가 종종 이상한 짓을 했는데 공통적으로 크게 이기고 있을 때 그리고 이번에 드러난 지고 있을 때다. 아무래도 최적을 찾는 건 괜찮은데 나쁜 결과를 피하는 쪽으로는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즉 둬야 될 곳을 검토하는 건 괜찮은데 두면 안되는 걸 검토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덩어리가 커지면, 그러니까 일요일처럼 전투가 사방에서 나오고 그게 연결이 되어 있으면 역시 복잡해지니까 연산 한계가 드러나는 듯. 

후자야 시스템 커팩서티의 문제니까 성능이 좋아지면 해결되는데 전자의 문제점은 구글이 찾으려던 약점이 저기 어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전자의 문제점, 즉 가중치 조절은 반드시 콘트롤이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알파고가 의학에 쓰일 때 - 완치가 목표가 아니라 생존이 목표일 때도 있다, 또는 군사적으로 쓰일 때 - 악질 테러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등등 여러 변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에 따라 적정 가중치를 판단하는 문제까지 혼자 해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AI겠지.

PS) 이 부분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을 찾았는데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을 사용하는 AI가 가지고 있는 약점인 수평선 효과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뭘 해도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미봉책을 꺼낸다. 여기(링크) 참고.



알파고 쪽 트윗을 보면 79수 때 실수를 팔십 몇 수에 알아챘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승률이 그때까지 70%대 였다가 50%대 아래로 떨어졌다고 하는데 묘착이었다는 이세돌 78수 이후다. 그건 바둑에서 어느 게 집인가 판단하는 프로세스의 아주 미세한 디테일이 누락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70수 대에는 어딘가를 집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는데 80수 대에 집이라고 인식하면서 확률이 떨어졌을테니까.

그리고 이세돌 인터뷰에 보면 알파고가 흑돌일 때 어려워 하는 거 같다고 한다. 이 말은 알파고가 흑 잡고 첫 수를 뒀을 때 승률 면에서 7집 반 덤이 극복이 안된다는 뜻 같다. 시작부터 승률이 낮으니 지고 있을 때와 같은 이유로 해맨다. 오랫동안 바둑인들이 궁금해하던 적정량 덤 수가 여기에서 밝혀질 듯.

여튼 4번째 대결 만에 이렇게 프로그램의 깊숙한 곳까지 닿는구나. 이세돌 쪽도 보면 이 혼돈의 와중에 호기심에 넘쳐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보고 있는데 구글이 꽤 좋은 상대를 고른 거 같다. 5번째는 이세돌이 일부러 흑선을 골랐다고 한다. 역시 양쪽 다 굉장하다. 당면하고 있는 제한된 상황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걸 최대한으로 뽑아낸다.

20160313

우주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 4가 끝났고 우주 다큐멘터리로 돌아왔다. 플래닛 시리즈도 끝났기 때문에 좀 더 광활한 내용을 보고 싶었으나 ATOM이라는 비비씨 4의 3부작 다큐멘터리가 있길래 그걸 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원자를 두고 벌어진 물리학계의 여러 사건들을 이야기 하는 다큐다. 1회를 봤는데 원자가 없다 -> 원자가 있다로 바뀌고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대립, 가이거와 슈뢰딩거(원자와 여자 밖에 관심이 없었다고), 퀀텀 점프와 양자 역학... 사실 굉장히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거 같긴 한데 어떻게 진행되었다만 알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그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긴 꽤나 어렵다. 누구에게는 기초적인 내용일 지 몰라도 애초에 방송의 주제가 그런 거라 문외한의 눈에는 어쩔 수가 없다.

이걸 보니 생각나는 게 예전에 방송이라고는 EBS만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그게 가장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비비씨에서 제작한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과의 대담 방송을 본 적 있다. 아주 옛날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튼 너무나 어려운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고 저 정도 레벨이면 대체 저런 방송은 누가 보라고 만들어 진 걸까...를 생각해 보면서 나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방송은 쉬운 이야기를 다루고 어려운 건 책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럴 수도 있는 거구나라고 바뀌는 계기가 되었던 일이다. 방송이라는 건 여러 타겟을 가질 수도 있다. 지금처럼 소위 중2도 이해할 수 있는 방송이라는 모토는 방송국의 본질이 아니라 역량일 뿐이다. 그냥 그래야만 하는 거... 따위는 그저 세상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게 하는 데 또 한 줌을 보태기만 한다. 물론 TV가 매번 세상을 바꿀 만한 심오하고 개혁적인 이야기를 쏟아낸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요지는 방송이라는 주체의 콘트롤 능력이다.

여튼 아톰은 잘 모르던 이야기의 진행 과정을 알게 되고, 적어도 그들이 탐구하던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좋은 다큐멘터리다.

여기서 알게 된 것 중 하나 : 아인슈타인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을 때 코펜하겐 출신의 보어의 반 아이슌타인 적인 원자 이론이 대립을 했다. 전자가 고전주의적, 후자가 개혁적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여튼 이 대립의 와중에 보어의 발언은 아인슈타인만큼 권위와 파장력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고향인 덴마크에서는 인기가 좋았는데 각종 후원금들이 들어와 보어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맥주 회사 칼스버그에서 지어준 닐 보어 연구소. 지금도 많은 물리학자들이 거기서 공부를 한다고. 역시 맥주가 최고다.

20160311

이상한 일

1. 어제의 이상한 일 : 모 편의점 본사에서 이 블로그 어딘가 적혀 있는 글에 잘못 적은 편의점 명을 바꿔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대체 그 글을 어떻게 발견했을까에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방식을 전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검색하는 방식으로는 어떻게도 그게 나오지 않는다. 어디에 구멍이 있는 걸까.

2. 오늘의 이상한 일 : 전화기에서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놨는데 러블리즈의 어제처럼 굿나잇이 나왔다. 곡이 나오는 중 지하철에서 내려 나오면서 음악을 끄고 이어폰을 뺐는데 미샤 매장에서 어제처럼 굿나잇이 나오고 있었다. 2014년 11월에 곡이 발표되었고 차트에서 사라진 지도 한참 된 이 곡을 이런 식으로 이어 들을 수 있는 확률이 대체 몇일까.


20160310

알파고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을 이틀 연속으로 봤다. 다 보진 못했고 초반과 후반 정도...

역시 매우 흥미로운데 그래도 이렇게 왕창 깨질 지는 몰랐다. 하긴 생각해 보면 알파고가 사람한테 지는 레벨이라면 형편없이 졌을 테고 이기는 레벨이라면 이미 질 리가 없을 테고... "인간과 비슷한 수준" 이런 건 어느 순간 찰나에 존재했던 걸 테니.

여하튼 해설자들도 기보를 설명하지 못하는 판이고 설명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뭐가 뭔지 모른다. 이거야 뭐 레벨 차이가 현격하게 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혹시나 인간이 운 좋게 초반에 승기를 잡는다든가 혹은 비슷한 실력의 AI와 대결을 하다가 상대가 승기를 잡는다든가 하면 알파고가 불계패 선언을 해도 왜 하는 지 인간은 전혀 이해 못할 가능성이 높다. 승기를 잡았다는 거 자체가 계산이 안 되니까. 뭐 어떻게 흘러가도 이 판은 진다... 의 계산 조차도 인간하고 차원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이미 계산기가 아니다. 기존 DB 학습과 반복 훈련에 의해 실력을 높였다고 하는데 그 분야 전문 교육을 받은 인간이 이해 못하는 수를 두고 있다. 비록 바둑판 위라지만 그게 크리에이티브 한 게 아니면 대체 뭐겠나. 지금 인간처럼 둬서 이기고 있는 게 아니라 인간하고 전혀 다루게 두면서 이기고 있는 거라고... 인간의 크리에이티브도 보통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넓게 판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법이다.

사실 어제 첫 번째 대국을 볼 땐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역시 지는 건가) 두 번째 대국을 보니 이건 안되는 거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예전에 여기에 끄적거렸던 외계에서 우주선이 온 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기계일 거다(링크)...라는 가정에 보다 더 확신이 든다.


PS1) 알파고 알고리듬에 대해 몇 가지를 찾아 읽어봤는데 사실 이해는 무리고 이걸(링크)보면 DB 축적에 따라 실력이 늘어난 게 아니다. 애초에 기보를 입력한 건 룰을 이해시키기 위함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 발전했다. 즉 인간의 방식을 발전시킨 게 역시 아니다.

PS2)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무인 자동차가 대중화되면 병목 현상이나 교통 체증을 제거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접근하게 될 거다. 그것도 뭐 아마 인간이 이해 못하겠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러므로 이런 것들 역시 예컨대 아니 대체 왜 저렇게 하지? -> 사고는 줄어들고 서울 부산까지 가는 평균 시간은 짧아짐... 이 나오게 될 거다.

PS3) AI에 대한 낙관론부터 비관론까지 여러가지를 볼 수 있는데 비관론 중 하나가 인간을 공격할 거라는 거다. 내 생각에는 기계가 인간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필요없고 비효율적이니 방치할 거라고 생각한다. 뭐 돌아다니면 효율을 낮추기나 할테니 그때는 제거하겠지.

PS4) 외계 우주선 이야기를 잠깐 더 하자면 그 안의 기계는 물론 어떤 유기체가 만들어서 보낸 게 아니다. 그 따위 것들은 쓸모없으니 이미 세상의 질서에서 배제되었을테고 기계들이 지 발로 왔을 거라는 이야기다. 화성에 큐리오시티라고 하등하지만 친구가 몇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안 좋은 거 들은 이야기

좋은 거 보기도 바쁜 세상에 굳이 안 좋은 거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건 취향이 아니긴 한데... 여튼 아주 잠시 그런 이야기.

피에스타가 컴백을 했다. 예지는 언프리티 이후 나름 음원 강자가 되었고 차오루는 각종 예능에서 전방위로 활약 중이다. 리더 재이는 듣자하니 아침 불륜 드라마에 진출한 모양이다. 섹시 다이나마이트? 뭐 그런 것도 한다는 데...

여튼 이렇게 멤버들이 여러 분야에서 본 궤도에 오르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전 음반인 짠해가 들어있는 블랙 라벨을 내놓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여러 군데에서 기대도 많이 받고 있다. 게다가 소속사가 로엔 아닌가. 데뷔 이후 처음이라는 컴백 쇼케이스에, 주아돌 1시간 방송에, 각종 예능을 한바퀴 돌고 있고, 넘치는 보도자료에... 2012년 데뷔 걸그룹(EXID와 AOA가 있다) 중 또 하나 걸그룹이 무명의 타이틀을 벗어 던질 기회가 온 거다.


하지만 블랙 라벨 이후 1년 만에 나온 이번 미니 앨범 어 델리킷 센스(A Delicate Sense) 이야기를 해 보자면 :

우선 음악 이야기를 하자면 예전 음반은 타이틀이 곡 하나로 그냥 1위를 찍을 만큼의 임팩트가 있진 않았을 지라도 괜찮은 수준이었고 더불어 수록곡들도 평균적으로 비슷하게 수준이 맞춰져 있어 음반을 주르륵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음반은 타이틀과 수록곡 차이가 너무 심하다. 하나같이 늘어지고 기묘한 목소리를 내면 섹시하겠지 따위의 손쉬운 함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들을 게 없다.

타이틀은 뭐 나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뽕끼가 너무 심해졌다. 역시 쉬운 돌파구다. 물론 예전 타이틀 곡들에 뽕끼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건 그냥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지..."의 냄새가 너무 난다. 안 풀리는 가수와 그룹들이 돌파구 찾겠다고 매번 문을 두들겨 대던 바로 그거다.

뭐 이런거야 취향 차이고 귀에 잘 들어오고 가사가 입에 잘 붙는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뮤직비디오(링크)는 좀 너무하다. 암만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되겠지"의 기운이 넘쳐 흐른다. 뮤직비디오에서 조차 잘 안 맞고 흐느적거리는 군무는 대체 왜 넣었을까.

물론 예지도 차오루도 재이도 바쁘니까 연습 시간을 내기 힘들 수도 있다. 회사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거 같긴 한데 안무를 완성해 놓고 뮤비를 찍는 경우도 있고 포인트 안무만 만들어 놓고 뮤비 찍고 나머지를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정보에 의하면 전자에 카라, 후자에 포미닛이 있다. 어제 주아돌 찍은 거 보니까 안무 연습이 막 시작된 다음 찾아 왔던데 뭐 그런거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군무의 완성도가 낮은 상황이라면 적어도 뮤직비디오에서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하는 게 방법이다. 뭘 어떻게 봐도 피에스타 보다 훨씬 바빴을 상황에서 나온 EXID의 핫핑크 뮤비를 보면 포인트 부분만 전체 군무샷을 보여주고(사실 군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동작에 가깝다) 나머지는 다 그냥 각개 플레이로 채운다(링크). 그렇게 만들어 놓고 시간 좀 날 때 음방용 3분짜리 연습하면 되고 브라질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그렇듯 활동하다 보면 점점 합이 맞아 간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까 그 정도야 이해하지. 그러다가 안무 영상 올리면 제대로 잘 풀리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보게 되는 거고.

그런데 이걸 굳이 무리하게 집어넣다 보니 뮤비를 보고 있으면 그냥 흐느적거리고만 있다.. 뮤비에 당연히 군무신이 있어야지.. 해서 집어 넣었다 말고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튼 결론적으로 멋지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고, 오랜 관습과 습관의 결과물 같고, 심지어 이런 아이돌 걸그룹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효용 - 저 아이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마저도 얻을 수 없다. 이런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컴백 음반이라니 이 정도 레벨은 꽤나 오래간 만에 보는 거 같다. 레인보우가 블랙 스완 들고 왔을 때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거긴 무슨 실험이라도 있었지, 그게 훨씬 낫다.

20160308

레코, 나뮤, 신기술, 삼겹살

1. 저번 주에 계속 레코 음악을 듣다가 주말에는 일 하면서 레코 영상들을 계속 틀어놨다. 유튜브 공식 계정에 올라와 있는 짧은 리얼리티들, 브이앱 뭐 이런 것들. 요새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꽤 재밌는 짧은 영상들을 올리고 있는데(어느 정도 모이면 합쳐서 유튜브에 올린다) 그것도 재미있다.

뭐 그러다가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월요일에는 이어폰으로 종일 나인뮤지스를 들었다. 그것도 정주행. 아이폰 앱에서 순서대로 반복 플레이를 해놓고 아무 생각없이 계속 돌렸다. 돌스, 글루, 프리마돈나, 와일드 등등등... 듣다가 귀가 아프면 Magnetola 앱으로 듣고(저음과 고음을 깎아버릴 수 있다) 그러다 지겨우면 다시 뮤직 앱으로 듣고... 확실히 나뮤는 초반과 요새가 취향이다. 정규 음반 프리마돈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끝까지 듣기가 어렵다...


2. 홈플러스에서 스틱이 붙어 있는 종이컵이 있길래 샀다. 얼마 전 구입했던 트리플레소 인스턴트 커피가 너무 맛있었는데 사물함에서 떨어트려 깨졌다. 반 정도 밖에 못 마셨는데.. ㅜㅜ 그러고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도 후배놈이 집에서 커피 안 마신다며 선물 세트 들어온 카누 커피를 50개 줬다. 고마우이 ㅜㅜ

여튼 그런 김에 종이컵도 떨어져서 신기술 종이컵을 구입해 봤는데(보통 종이컵은 1100원이고 그건 1150원으로 50원 차이 밖에 안 난다) 신기술 종이컵은 알고 봤더니 너무 얇다... 비슷한 가격에 뭔가 더 붙어있으면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런 거... 허접해...

그런데 예전 커피는 확실하게 저어 줘야 녹았는데 요새 맥심 같은 건 찬물에 섞어도 잘 녹는다. 아이스커피를 많이들 마시니까 계량한 건가 아니면, 인스턴트 커피 만드는 기술에 변화가 있었던 걸까... 사실 스틱 없는 거 써도 뜨거운 물 넣고 몇 번 돌려주면 다 녹는다. 어렸을 적에 커피 믹스 그런 식으로 녹이면 다 마시고 나면 종이컵 바닥에 프림이랑 커피랑 막 붙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서 잘 녹는 거 보면 신기하다.


3. 잠자기 전에 한 편씩 봐야지 하고 모아둔 것들이 너무 쌓여서 조절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우주 다큐멘터리는 잠시 킵 해두고 고독한 미식가 시즌 4를 보고 있다. 둘 다 보고 자려고 하니까 2시간 씩 잡아먹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져서... 미식가 시리즈는 초반과 비교해 보면 말장난이 많아지고 메뉴를 훑어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씩 우선 맛을 보고, 그 다음에 와구와구 먹는다...라는 정해진 형식은 꾸준하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데 예전에는 의식을 잘 안해서 대충이었다가 미식가를 본 이후부터는 나름 형식가 규격에 맞춰 순서를 준수하고 있다. 물론 속으로라도 말장난을 하지는 않고 음미하면서 떠들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은 매우 짧다.


4. 아침에 일어나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대략 25cm가량 길이의 캠핑용 삼겹살이 진공 포장되어 있는걸 이모님이 주셨는데 한 포장 안에 15개 쯤 들어있다. 미개봉 상태로 얼려있을 땐 괜찮은 데 일단 개봉하고 나면 빠르게 먹어 없애야 한다. 보통 한끼당 한 개 반에서 두 개 정도가 적정량이라 일주일간 내리 먹어야 이걸 다 먹어치울 수 있다. 지금 3일 째...

좋은 점은 아주 맛있다는 거. 예전에도 주셔서 몇 번 구워먹었는데 그렇게 먹는 게 너무 맛있는 고기라 제육 볶음이니 김치찌개니 그런 변주따위 전혀 하고 싶지 않다. 상추도 없고 마늘도 없고 그냥 참기름이나 소금만 찍어 먹는다. 나쁜 점은 굽고 먹고 치우고 하는 데 대략 1시간이 걸린다는 거. 게다가 다 치우고 나면 지쳐서 쉬어야 된다. 그렇게 시간을 처묵처묵하기 때문에 요즘처럼 마음이 급할 때 좋지 않다.

역시 삼겹살은 몸만 가서 샥 먹고 그 수많은 설거지 거리들을 다 내팽개치고 나올 수 있는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맛있긴 해...

20160304

어리버리, 독서, 파스타

1. 오늘은 꽤나 어리버리했는데 그 중 백미는 역시 사물함 열쇠를 집에 두고 간 거. 허탈한 마음에 하릴없이 도서관 벤치에 앉아 있다가 공용 컴퓨터 메뚜기를 했다...

열쇠를 최근 두 번 두고 갔는데 이유는 열쇠에 고리를 달았기 때문이다. 열쇠에 고리를 달기 전에는 동전 지갑 안에다 넣고 다녔는데 그때는 이런 걸 잊고 가는 일은 없었다. 하도 볼품없어서 고리를 달았더니 -> 주머니에 넣는다 -> 집에서 바지를 갈아 입는다 -> 두고 감...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뭐 열쇠 고리야 잘못이 없겠지만... 여튼 떼놔야 겠음.

2. 어쨌든 그렇게 있다보니 서가를 뒤적거리며 집히는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을 훨씬 쉽게, 가볍게, 직선으로, 조금 더 멀리 가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점에서는 열쇠를 두고 간 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언제나 밝은 면을 봅시당.

3. 점심을 집에서 마늘 + 올리브유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갔는데 저녁 급식 메뉴가 토마토 소스 파스타였다. 요즘 확실히 이태리 사람보다 파스타를 더 많이 먹는 듯... 500g짜리 사도 일주일을 못 먹는다... 하긴 주식이니 당연하지만. 여튼 소비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바릴라고 데체코고 다 꺼지고 제일 싼 거 사고 있다. 그 이름은 씨제이. 올리브유는 계속 데체코. 이건 텀이 좀 더 길어서 그런지 그냥 별 생각이 없다. 이마트 올리브유 큰 거 팔던데...

4. 여튼 다시는 저런 기본템을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20160302

공용어, 기술, 사회화

1.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식당은 몇 년 전부터 그랬으니 말할 것도 없고 오늘 집 화장실 타일 유지 보수 문제로 일하시는 분들이 왔다 갔는데 조수로 데리고 다니는 분이 중동? 터키? 뭐 여튼 그쪽 계열이었다. 예전에 바닥 공사하러 다니는 분이 비슷한 곳에서 온 노동자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다수는 공장, 여성의 경우 식당, 남성의 경우 이런 식으로 기술을 배우는 거 같다. 타일을 까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능숙하게 보조 일을 해내시던데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혹은 여기에서 개업을 하게 되겠지. 그걸 보면서 나도 기술을 배울까 + 일단 집으로 들어오는 작업이니 36사이즈의 시장표 청바지(왜 태그에 사이즈가 적혀 있을까), 나이키 운동화(저건 사이즈가 몇 이길래 저렇게 클까?)와 시장표 회색 양말 같은 뜻하지 않게 많은 정보가 잔뜩 들어온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궁금해 지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공용 한국어 혹은 코크니 같은 특유 사투리의 탄생. 출생지 언어에 따라 다른 면이 있긴 한데 대규모 군집을 형성하고 있는 대림동이나 건대 입구, 응암동 등지에서 조선족 어와 다른(다른 지역 출신들도 섞여 있을테고 여기에서만 쓰는 단어들이 있을 테니) 특유의 한국어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랍어 권도 이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사실 공장과는 다르게 타일 유지 보수 같은 직종은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렸을 적 언어권에서 나이가 들고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러므로 나 역시 알아듣기 위해 머리를 굴리지만 그 쪽도 알아듣게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게 된다. 서비스 업이 외국인으로 대체되고(예컨대 저런 유지 보수업 외에 택시, 인터넷 설치 등등) 이 현상이 계속되면 뭔가가 서서히 바뀌어 갈 가능성이 높을 거 같다.


익숙해졌다고 해도 막상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외국인 분이 등장하면 티를 안 낸다고는 하지만 속으로 어랏? 그렇군...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어랏...이 사라지도록 나름 애를 쓰는 데 이게 몇 년 지나지 않은 현상이라 아직은 쉽지 않다. 얼마 전 찾아갔던 건대 입구의 가게에서는 말이 전혀, 완전히 아무 것도 안 통했었는데 그래도 괜찮은 지역이라 그런 거겠지...


2. 타일 까는 작업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일이 커져서 좀 놀랐는데(어디 안 가시죠 하더니 다 때려 부수고 2시간 쯤 걸릴 줄이야...) 화장실에 숨어 있는 배전의 구조를 알아낸 소득이 있다. 매우 의외의 곳이 알고 보니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이었고 그게 열리면 안에 공간에 파이프나 전선이 숨어 있다. 특히 화장실 천정은 꽤나 넓어서 사람이 들어가 자도 되겠드만.

예전에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직원들은 직원들만의 통로가 있다. 거기로 다니면 손님들하고는 절대 마주치지 않고 1층부터 옥상까지, 건물의 구석까지 돌아다닐 수 있다. 그쪽의 관점에서 호텔을 구성하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 종이의 앞뒤, 동전의 양면 뭐 그런 건데 그런 세상을 전혀 모르다가 처음 마주쳤을 때 꽤나 신선한 느낌이 들었었다.

당연하지만 집도 마찬가지다. 집에 들어왔다 나가는 물이나 전기, 가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길들이 있다. 당연한 것들도 직접 마주치면 감각이 환기가 된다. 이제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저 속의 빈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겠지.


3. 강아지의 비사회화는 꽤 심각한 현상인데 공사를 하는 두 시간 여 남짓 꽉 붙잡고 있었더니 이 모양이 되었다.

SJP(@macrostar)님이 게시한 사진님,

젠장할 놈 같으니라고...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