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버스에서 뉴스가 나오는데 야당이 오늘 정해지는 국정 교과서 집필진 명단을 공개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근현대사 집필을 누가 하느냐를 공개하라는 말을 붙였다. 얼마 전 문재인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국정 교과서의 편향성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대통령은 왜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가지고 뭐라고 하냐면서 나오면 보고 이야기 하라 뭐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었다. 뭐 국정 교과서 문제를 놓고 다른 여러가지 활동도 하고 있겠지만 암만 봐도 집필진 명단 공개 같은 건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볼 수 있다. 만약에, 뭐 확률이 낮긴 할 지라도, 막상 나온 교과서가 야당의 성향에도 맞으면 어떻할 건가, 막상 공개된 집필진 명단에 야당이 생각할 때 괜찮은 분이 들어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건가. 애초에 문제는 집필진 명단 같은 데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국정" 교과서 자체에 있다. 친일파가 좋게 서술 될 까봐, 군사 독재 시절이 좋게 서술 될 까봐 걱정이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과서를 국정으로, 특히 역사를 무슨 바이블 같은 걸로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있다. 이건 종교도 아니고 교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역사라는 건 사관에 입각해 지난 일들을 서술하는 과정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그 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지는 학자 혹은 학파의 의견에 달려있다. 논증의 대상이 되는 건 어떤 사실이 서술되어 있을 경우 어떤 사관이 그걸 제대로(논리적으로 적합하게) 서술해 냈느냐, 더 크게는 그 사관이 옳은가 같은 것들이다. 위서, 잘못되고 오류가 있는 학문적 견해 이런 것들이 잘못된 역사 서술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모호한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지 몰라도 이 수천 년이나 지속되어 온 방식은 논증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고 구조를 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 내고, 상대방의 오류와 모순점을 찾아내는 동안 보다 더 논리적으로 완벽성을 기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인간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폭 자체를 키워내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인류의 역사는 발전했다. 즉 중요한 건 왜 교과서가 여러가지가 있을까를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근데 그걸 획일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고 자체가 애초에 틀려 먹었다. 그건 어느 나라건 안 되는 거고, 애초에 쓸모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안 하고 있는 거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사고가 확대되는 걸 권장해야 할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막고 있다.
그런데 집필진을 자꾸 문제의 최선상에 올린다. 맨 위에 제기한 의문은 그러므로 계속 유효하다. 만에 하나 야당 "성향"에 얼추 맞는 분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으면 그땐 어쩔 건가. 혹시나 김무성 대표가 말한 뭔가 균형이 잡힌 역사책이 나오면 어떻할 건가. 만약에 미래에 그러면 여당 야당이 함께 인선한 집필진으로 국정 교과서를 만들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뭐 이 정도면 훌륭한 교과서가 아닐까 하고 만족할 건가? 문제는 국정 "교과서"에 있는 게 아니라 "국정" 교과서에 있다. 그걸 오해하면 이 문제는 엉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2.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끝났다. 이제 하루 이틀 몰입하는 프로젝트 같은 건 딱히 없어진... 텀이 긴 일들만 남았다. 여튼 그러므로 당분간 두문불출하며...는 아니고 블로그나 종종 하면서 할 일을 할 생각이다.
3. 어제는 대부분 시간 동안 혼자 앉아 있느라 화장실도 잘 못 간 슬픈 사연이 있는데 오후에는 꽤 떠들썩 했다. 그러다가 이런 사진도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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