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31

보편적인 노래

이제 와서 통속적인 가사와 분위기의 노래를 듣고 우울해지는 내 자신을 보면 한심하기도 한데 어쨋든 이런 습성은 끝이 나지 않는다. 요즘에 거의 매일 같이 브로콜리의 보편송을 듣는다. 딱히 엄청 좋아서라기 보다 아이팟 미니 4G에 들어가 있는 곡들을 고르다 고르다 보면 옷장에 옷들이 가득차 있어도 입을 건 없듯이, 들을 게 없기 때문이다. 충전을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는 것도 용한데 매일 매일 안에 들어있는 곡을 교체하는건 말도 안되게 귀찮고.

그러든 저러든 보편송은 남자가 보컬 메인인데 부르다가 여자가 확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다(둘 다 이름은 모르겠다). 그 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은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 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이 부분이 튀어 나올때마다 왠지 눈물이 핑돈다.

방점을 찍고 가다

정치와 경제같은 거시적 문제들에 대해서만.

1992년 이후 그런 부분에 꽤나 관심이 많은 내가 요새는 그다지 의욕이 안난다. 얼마전 용산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는데 관련해서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담은 블로그 포스팅 몇개 끄적거린게 전부다. 작년만 같았어도 추모 현장같은데서 어물쩍 거리기라도 했을텐데 잘 안된다.

살면서 지금까지 꽤나 많은 투표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게 그토록 잘못된 거라고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왜 그럴까 하는 점은 고민해 보고는 한다. 잘 모르겠다. 무슨 거대한 변수가 따로 존재하는지 몰라도 나와 (계급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뽑은 사람 안 뽑아서 좋은 일 생기는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다들 계속 그런다. 우리나라 사회의 중대한 비밀 몇 개를 내가 놓치고 있는건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생각이 난 김에 심시티나 해보면서 도시를 경영하는 사람 입장이 한 번 되볼까 했다. 그러면 뭔가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전에 캐피털리즘 게임을 해본 적 있는데 그때 알아낸 건 자본주의는 오직 독점이 승리한다는 사실이었다. 영 이상한 시점으로만 바라보는거 같지만 여튼 그 게임에서 독점은 위대하다. 심시티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그런데 컴퓨터 사양이 안된단다. 업그레이드 하려고 봤더니 CPU 핀 수 마저 달라져서(내껀 478, 요새 나오는건 775) 메인보드, 램 등 거의 몽땅 바꿔야 된다. 인텔의 수작에 나같은 사람은 꼼짝도 못한다.

지금껏 소위 잘못된 투표를 해오면서 그다지 실망한 적은 없다. 그저 허위 의식이라든가 소외라든가 하는 이론적인 문제들을 나름대로는 검증하는 기회였다고 말하면 그나마 조금은 긍정적이다. 이렇게 의욕이 없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던 거 같다. 굉장히 많은 시위들이 있었고, 시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그나마 형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적어도 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졌다.

아무 것도 믿지 않고, 넓은 시야를 지니되 옳다고 믿는 걸 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때는 너무 믿었나보다. 믿은 만큼 실망도 컸다. 잘 이해가 안가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세상은 그런 현실을 꼭 붙잡고 뚜벅뚜벅 쉬지 않고 걷고 있는 자들의 편이다. 이익이 달린 일에는 누군가 움직여 주지만, 믿음 따위로는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레프티스트들은 언제나 소수고 혁명가들은 대세가 결정되는 순간 다수로 바뀐다. 이익이 걸리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와 로자 룩셈베르크는 그래서 실패했다. 사람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피해를 감수해 가며 소비에트 연방을 만든 사람들도 그래서 실패했다. 한반도 북쪽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제거되고 마는게 역사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나가는데 어쨋든 그 이후 뭐가 어떻게 되가는건지 잘 이해가 안가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같은 거시적 부분 말고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여러 부분에 실패해 버린 작년 한해의 기억들도 끼어있다.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내가 뭘 그리 잘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뭔가 벌 비슷한 걸 받고 있는건 분명하게 보인다.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별로 없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골치 아픈 일만 더 쌓이니까 아예 안보고 만다. 당장은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래서 방황을 하고 있다. 울면서도 희망을 꿈꿔야 사람 사는거라고 믿으며 살았다고 나름은 자부했는데, 이젠 그것마저 잘 안 되는 걸 보면 좀 한심하긴 하다. 이런 인생이 다 있냐 싶기도 하고. 그러나 저러나 어쨋든 난 해보고 싶은 것도 아직 많고 못 본 것도 많으니, 죽거나 어디 산 속에 쳐박혀 은거하거나 하지는 않을거다. 그렇다고 다음 선거까지는 멍하니 있을 수가 없는게, 아직 너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요새 기분으로는 그때 가서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 쓸데 없는 믿음 따위는 안가지는게 낫다.

그러니 무슨 계기라도 붙잡아 다시금 스티뮬레이팅 하고 싶은 욕망에 쌓여있는게 현재 상태다. 조금 무리해 여행도 가고 했는데 아직은 그냥 그렇다. 무엇보다도 "의욕이 없네"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게 문제다. 정신적 자극을 줄만한 어떤 것을 주변 몇 명에 요청해 봤는데 그들 역시 삶에 치어 있어 나까지 돌 볼 겨를이 없다. 좀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래도 서로 잠시나마 걱정이라도 해주는게 어디냐 싶다. 왠지 힘들다. 계기를 꼭 찾아야 하는 나 자신의 유약함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아무나 던져주는 지푸라기라도 일단은 붙잡고 싶다.

20090129

우중충

요새는 우중충하다. 세상 만사 잡스러운 일들이 모두다 몰려들어 내 발목을 꼭 붙잡고 안놔주는 느낌이다. 이게 다 지나가면 이제 안붙잡을려나. 기대하는 것은 그것 뿐. 이글루스에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덕분에 잡스러운 이야기들은 여기에 끄적거리게 된다. 그나마 요새는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별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만.

오늘 찍은 사진이나 한 장.

Getting bang for the buck

[두번째도 경제 관련 글이고 역시 케인지 학파의 논의다. 케인지언 캠프發로 3가지 아티클을 읽었는데 그 중 두번째. 첫번째 번역했던 케인즈에 비해 확실히 요즘 말이라는 느낌이 나고 내용도 스피디하다. 돌려 말하는 것도, 고풍스럽게 - 괜히 복잡하게라는 뜻이다 - 꾸미지도 않는다. 알아듣기는 하겠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뭔가 이상한게 있어 그냥 원문으로 남겼다. 혹시 그 부분에 대한 번역 아이디어가 있다면 남겨주시면 고맙겠다]

가디언, 2008년 12월 5일.
by 조세프 스티글리츠



우리는 현재 모두 케인지언이다. 미국의 우파조차도 해방된 열정을 가지고 케인지언 캠프에 합류했다. 한때는 진정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자신을 케인지언 전통과 어떤 연결선 상에 있다고 언제나 주장했던 우리같은 사람들은 근 30여년간을 황무지에 버려졌고, 거의 잊혀졌었지만 지금은 승리의 순간이다. 어떤 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데올로기와 이익에 대한 이성과 증거의 승리를 뜻한다.

경제 이론은 오랫동안 왜 족쇄가 풀린 시장의 자동 조절되지 않는지, 왜 규제가 필요한지, 왜 경제안에 정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히 금융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시장 근본주의"의 일종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팀의 멤버다. 잘못 인도된 정책들이 개발 도상국에 거대한 비용 부담을 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정책의 비용이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에도 주어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계몽의 순간은 찾아왔다.

케인즈는 시장이 자동 조절되지 않는다는 주장 뿐만 아니라 심각한 하강 국면에서 통화 정책은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재정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재정 정책이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계 부채와 높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금 감면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1990년대에 일본에서 그랬다). 작년 2월달의 세금 감면액들은 다는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 저축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부시 행정부 기간이 남겨놓은 거대한 부채 덕분에 모든 달러의 사용에 미국은 가장 거대하고도 실현 가능한 자극을 유발해야 한다. 기술 분야와 인프라, 특히 신선한 종류에 대한에 대한 저투자와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단기 지출과 장기 전망의 일치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세금과 지출 프로그램 양자 모두의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가난한 자들의 세금을 감면하고 실업 보조금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는 것은 경제에 자극을 줄 것이고 적자를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시키게 된다. 이라크 전쟁에의 지출을 깎고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단기와 장기 산출을 동시에 늘려줄 것이고 적자를 줄여 줄 것이다.

케인즈는 경제 활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통화 당국의 화폐 공급이 효과가 없는 상태인 유동성 함정에 대해 걱정했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의 의장 벤 버냉키는 대공황 때 화폐 공급을 축소시키고 은행을 도산시켜 경제 불황을 심화시켰던 Fed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역사와 이론을 신중하게 읽고 있다 : 금융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단지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신용의 흐름은 무척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공황 시기에 은행이 실패한 이유는 신용할 수 있는 것들을 결정하는게 무엇인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들은 신용의 흐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 제도는 1930년대 이후 극적으로 변했다. 많은 미국의 거대 은행들은 "빌려주는" 사업에서 "움직이는 사업"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자산을 사들이는데 초점을 두었고 그것들에 대한 위험 측정과 신용할 수 있는 것인지 걸러내는 일이 불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다시 포장해 팔았다. 수조 달러가 이러한 기능 장애 기관들을 유지시키는데 사용되었다. 단기적 시야의 행동을 부추키고 과도한 위험을 떠안게 만드는 그들의 삐뚤어진 인센티브 구조를 포함해 거의 아무 것도 알려진게 없다. 개인적 보상이 사회적 이익으로 부터 크게 멀어지게 되면서 개인적 이익 추구가 이런 사회 파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건 놀랄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 회사 주주의 이익조차 제대로 보상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돈을 빌려주고, 신용을 산정하는 사실 은행이 해야 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연방 정부는 수조 달러의 부채와 위험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금융 제도를 구해내기 위해서 재정 정책 못지 않게 "본전을 찾을 만한 가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8년간 두배가 되버린 재정 적자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치솟게 된다.

9월에 정부가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구제 조치가 시작되자 지난 몇 년간 그들이 계속 해온 금융 시장의 위험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또 다른 예들의 분명한 점들이 증가했다. 버냉키와 폴슨의 구제 조치라는 개념은 세금 납부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본업인 대출의 증가에 불도 거의 못 붙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규제 완화가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금융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의 자유화에 잘 적응해 나갔다. 미국이 위험한 금융 상품들을 팔 수 있게 해주었고,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커다른 비용을 부과하는데도 거의 모든 다른 나라가 이 회사들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일조하도록 만들었다.

Today, the risk is that the new Keynesian doctrines will be used and abused to serve some of the same interests. 10년 전에 규제 완화를 주장했던 자들은 교훈을 얻었을까? 아니면 그저 적어도 몇 조 달러의 구제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눈속임의 혁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 바뀐 게 있을까, 아니면 그저 전략이 바뀐 것일까?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정황으로 보건데 케인지언 정책의 추구가 시장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 나는 것으로 보이는건 아닐까?

십여년 전 아시아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 금융 구조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별로 한 건 없다. 우리가 좀 더 안정적이고 번영하고 공정한 국제 경제를 만들 생각이 있다면 지금의 위기에 대해 적당히 대답하면 안되고, 장기적 혁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20090128

Spend, Spend, Spend

[처음은 경제 고전, 좀 어려워서 해석 못한 부분도 많다. 대괄호 안은 나의 코멘트, 영향력의 측면에서 그때도 그렇고 또 요즘같은 시기에 한번 되돌아볼 만한 중요한 글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의역과 오역이 난무하므로 공식적으로 활용 불가, 원문 링크는 귀찮아서 생략. 약간 궁금한 점은 케인즈가 자국인 영국의 경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미국에 대한 염려와 충고라는 선의의 편지를 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뉴욕 타임즈, 1933년 12월 31일자.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by 존 M. 케인즈

대통령에게

당신은 현존하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의 합당한 실험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현재 우리 상황의 나쁜 부분들을 고치고자 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실패한다면 싸워서 해결해 나가야할 독단론과 혁명들만을 남겨 놓은채 합리적인 변화는 크게 적대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성공한다면 새롭고 대담한 방식들이 전세계에서 시도될 것이고 당신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을 새로운 경제 시대가 시작되는 첫번째 순간으로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있고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가 저의 견해를 당신 앞에 보이고자 하는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 안에 있는 당신의 지지자들은 현재 신경이 곤두서있고 때때로 낙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위급함의 순서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건지 의심스러워 하고 있으며, 목표에 혼동이 있는건 아닌지, 또 당신이 들은 충고들 중에 멍청하고 이상한 것들이 섞여있는건 아닌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지켜주는데 있어 우리가 당황스러워 하는게 있다면 이건 부분적으로 런던의 현재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대단히 왜곡된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범한 런던 시민들은 believes that you are engaged on a hare-brained expedition in face of competent advice, that the best hope lies in your ridding yourself of your present advisers to return to the old ways, and that otherwise the United States is heading for some ghastly breakdown. That is what they say they smell. 이건 머리보다 코가 더 훌륭한 기관이라고 믿는 자들에 의한 wise head-waging의 재현입니다. 런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리가 보게 될 것을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 말을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슬럼프로부터 벗어나고 비즈니스의 통로를 다시 만들어내는 회복과 지금껏 미뤄왔던 사회적 재건이라는 두가지 문제에 얽혀있습니다. 첫번째로 속도와 빠른 결과는 필수적입니다. 두번째 역시 위급한 일입니다. 하지만 서두름은 치명적이 될 수 있고, 장기적인 목적의 지혜는 신속한 성과보다 더욱 필수적인 것입니다. 단기적 회복의 성공은 미국 행정부의 위상을 높일 것이고 그것이 장기적 재건을 달성시킬 추진력이 되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혜롭고 필요한 재건이라고 해도 어떤 측면에서는 회복을 방해하고 복잡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들의 자리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기 전에, 이것이 기업들의 확신을 감소시킬 것이고 행동하고자 하는 동기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개인주의와 이제는 크게 남아있지는 않은 오래된 엽관주의를 지닌 미국 행정부가 처리하기에 넘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미국 행정부가 목표와 사고에 있어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다가 뒤죽박죽이 되버릴 것입니다.

제 두번째 견해는 재건의 테크닉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건의 목표는 국가 생산을 높이고 사람들을 일하게 만드는데 있습니다. 현대 세계의 경제 시스템에서 생산은 우선적으로 판매를 위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생산의 양은 생산물의 최초 가격보다는 시장에서 나타나게 될 구매력의 양에 의해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말해 하나 또는 나머지 세 요소의 작용이 아니라면 생산의 증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개인들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득으로부터 돈을 쓸 생각이 유발되어야 합니다. 또 기업들은 경제 전망에 대한 확신이 증가하거나 이자율이 낮아질 경우에야 현재 고용되어 있는 직원들을 가지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생산을 증가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국가의 고정 자본이나 노동력이 증가할 경우에만 발생합니다. 그리고 공공 당국은 빌리든 돈을 찍어내든 그것을 소비해야만 새로운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안좋은 시기에 첫번째 요소인 개인이 만족할 만한 규모로 일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The second factor will come in as the second wave of attack on the slump after the tide has been turned by the expenditure of public authority. [PA의 소비가 있어야 두번째 요소인 기업이 공격적인 두번째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뭐 그런 이야기인 듯]그러므로 오직 세번째 요소인 공공 당국만이 초기의 강력한 충격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두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첫번째는 물가를 올려 재건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물가가 올라가는건 산출이 늘어나고 고용이 증가할 신호이기 때문에 때때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더 많은 구매력이 만들어진다면 물가가 오르는 것을 보고 산출이 늘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가 올라지 않으면 산출이 증가할 수 없기 때문에, 통화 회전율을 증가시키기 위한 부족한 양의 통화 공급에 의해 재건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산출의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물가를 올리는 부분에 대해서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채무자들은 도움을 받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가 재건은 더디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원가를 올린다든가 산출을 제한함으로써 물가를 올리는 일은 국가의 구매력이 증가해 그 결과로 물가가 오르는 것에 비해 무척 안좋은 생각입니다.

이번 가을에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퇴보는 미국 행정부가 첫 6달 동안 새로운 대부 지출을 괄목할 만한게 증가시키는데 실패한 결과로서 예상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6개월 간의 포지션은 완전히 당신이 가까운 미래에 거대한 지출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별 지출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놀라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짧은 시간동안 쓸만한 대부 지출을 늘리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여기에는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잘못한다면 비효용과 타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미국 내에서 광대한 공공 업무를 급히 시행하는걸 어렵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천천히 해서 발생하는 위험은 급하게 해서 만들어 내는 위험보다 훨씬 큽니다.

또 다른 잘못된 생각은 통화 수량 이론이라는 조악한 경제 이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저는 이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산출을 올리고 수입을 늘리는데 있어 화폐량이 고정되어 있다면 조만간 경제 퇴보로 고통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로부터 산출과 수입이 화폐의 수를 늘림으로써 증가시킬 수 있다고 추론합니다. 하지만 이건 살찌기 위해 커다란 벨트를 메는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화폐 수량은 조절할 수 있는 요소인 재정 지출에 비해 제한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늘리자는 것은 가장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한 금 값과 다른 가격간에 수학적 상관 관계가 있다는 믿음 역시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무역에 의해 생겨나는 외환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에 의해 이런 것들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달러화에 대한 고평가는 국내의 물가 상승 정책의 자유와 외국과의 무역 균형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가치 하락을 시키려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역에서의 달러화 가치하락은 성공적인 물가 상승 전략의 자연적인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의적으로 이 가치의 정당성을 방해하려 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살 위에 벨트를 차려하는 시도의 또다른 예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제가 유동성을 조절하거나 안정적인 무역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선호하는 제 견해를 약화시키려는 건 아닙니다. 유동성과 한 나라의 무역 정책은 산출을 늘리고 고용률을 적당한 수준으로 만들어 내는 목표에 완전히 이바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달러화의 회전은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유동성 관리라기 보다는 몹시 취한 금본위제처럼 보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비판이 저의 연민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훨씬 명백하다는 점을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정부의 일에 대한 일반적인 전망과 태도라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연민에 가득찬 지도자로 보입니다. 당신은 법칙의 심오한 변화의 필요성을 바라보고 편협이나 파괴, 독재없이 이를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당신이 개개의 테크닉의 디테일한 점들을 편협하지 않게 몸소 가야할 길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느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의하면 영국에서 당신의 위치는 비평이나 다른 것들에 의해 건들여지지 않는 존재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믿음은 더 넓은 심사 숙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까운 미래에 좀 더 확실한 개념들을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국내적인 정책의 부분에 있어서 저는 위에서 말한 이유에 의해, 맨 앞에다 정부 후원하의 커다란 재정 지출을 제안하겠습니다. 어떤 부분에 재정 지출을 할 것인가는 제 견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로 빠르게 완성될 수 있는 것들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철로의 정비와 재건설같은 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목표는 볼을 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약 6개월 안에 좋고 강력한 시도가 주어진다면 미국은 번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싸고 풍부한 신용의 지속과 장기 이자율을 내리는 것을 들겠습니다. 영국에서 흐름이 바뀐 건 전쟁 대출을 전환시킨 후에 장기 이자율이 내려간게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영국 은행의 공개 시장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FRB가 현재 가지고 있는 단기 채권들을 장기 채권을 구입해 바꾸기만 하면 되는데 저는 왜 당신이 모든 채권 시장에 대한 반향으로 장기 미국 국채의 이자율을 2.5%나 그 이하로 내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책은 몇 달 내에 효과를 보이기 시작할 것인데 이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정책들의 확장이나 적용과 더불어 저는 큰 확신을 가지고 성공적인 산출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물질적 번영 뿐만 아니라 지혜와 정부의 힘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회복시키려는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With great respect,
Your obedient servant

JM Keynes


20090121

권리 그리고 과격

무허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재산권을 인정받았나

1980년대 초반 목동에는 안양천 변을 따라 긴 뚝방촌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가구주 2500세대, 세입자 5200세대로 합쳐서 300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960년대 후반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가 개발되면서 그곳 일대의 판자촌이 강제 철거되자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안양천 주변으로 주민들을 옮기며 이들에게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영화 방식으로 서민 주택을 싼 값에 대량으로 공급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도시 미화 사업을 시작했는데 1983년에 서울시는 강서구 목동과 신정동 지역에 신시가지 140만평을 조성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서민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취소하고 20~60여평 대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안양천 변 주민들에게는 이주비 50만원과 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아파트 분양가격은 최소 평형인 20평짜리가 2100만원. 1983년에 2100만원이 있었다면 사실 그들이 안양천 옆 뚝방촌에 살 이유가 없다. 알다시피 무허가 주거지에도 세금이 나온다. 근 20여년간 취득세, 재산세 , 건물분 토지사용료를 내며 지내온 주민들은 이제 꼼짝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목동 주민들의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된다. 주민들은 조직 체계를 만들고 공권력에 맞서 철야 경비조와 지역 대기조를 운영하였다. 500여명 단위로 신민당과 KBS, 영등포 로터리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고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정당 후보 낙선 운동을 전개했다. 경인 고속도로를 4번이나 차단했고 서울 시청을 향한 진격 투쟁을 15회 전개했다. 구속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위원회를 만들어 대학 등 집회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 목동 주민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는지를 알렸다. 또 주민 총회를 통해 자녀들의 등교 거부 투쟁도 벌였다. 이런 시위가 100회 이상 3년이 계속 되었다.

마침내 가옥주들은 무허가 주택의 재산권을 인정 받을 수 있었고 세입자들은 10평 아파트 입주권과 가장 저렴한 비용의 융자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성공에 자극 받아 사당동 지구, 송파 가락 지구, 오금동 지구 등에서도 연대에 의한 철거 반대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역 내에서의 조직화/의식화라는 단계를 거치고 지역간 연대 조직 결성의 형태로 나아갔다. 이렇게 확대 재생산 되가는데는 사실 87년 6월 항쟁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조금만 역사를 뒤적거려보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주 40 시간 근무라든가, 어린 아이들 과노동 금지같은 지금 보면 적어도 성문법 상으로는 당연히 보장되어 있는 권리들을 획득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고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 찾을 수 있다. 권리는 가만히 있는 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베풀어 지는게 아니다. 자신들이 찾아내고, 그것을 요구하고, 끝내 관철시키는데 성공했을때 권리로써 존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격 시위의 무용성을 지적하고, 노조나 철거민 등의 시위를 보며 그저 돈 좀 더 얻을라고 저리 소란스럽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오랜 시절동안 중산층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를 보장했고 결국 계급간 분화에 성공했었다. 중산층들은 빈민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그것은 내일이 아니며/오히려 방해가 된다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자유주의 개혁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고 덕분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나의 권리를 보장받는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상류층과 하류층만 존재하던 시절에 비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제도권 국가에서 시도된 중산층 포섭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이러한 허위 의식에 기반한 계급간 갈등 유발 정책은 정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순수하게 대결 국면에서의 전략적 측면에서 본다면 감탄이 나온다.

시민들의 총합으로써 나라가 만들어진 것 임에도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어떤' 시민들의 의견을 경시한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마도 국가의 내가 결국은 옳다라는 선민 의식이거나, 선도하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출일 것이다.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결국은 선생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도시 미화도 아파트 건설도 나쁠 것 없다. 

그리고 만약 지가 상승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거쳐 새로운 재산이 창출된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보호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들도 저들도 시민이고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같은 정도로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낭비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

20090120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자 해도

이 막장 나라는 사람을 내비두지 않는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090120145814122&p=yonhap

예전에 쓴 이야기 중 중간에 나오는 철거민 연합 시위의 주체가 전철연이었다. 나는 명동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80년대 목동, 사당동에서의 철거민 투쟁을 거치고 87년 6월 항쟁을 경험하면서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서울 철거민 협의회가 87년에 만들어지고 94년에 전철연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짧은 문장에는 너무 많은 역사가 담겨있고 그 안에 드리워져있는 갈등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만 명시해 둔다.

60, 70년대의 잠실과 강남 개발, 88년 올림픽 때문에 철거민들이 대량 양산된 나라라(예전에 읽은 슬럼이라는 책에도 한국의 철거민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가 무척 길다.
http://macrostars.blogspot.com/2008/06/blog-post_05.html

개인적인 견해로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 정책에 왜 그곳 거주민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동의를 해야하는지, 왜 나라의 토지보상법(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을텐데 생각이 안난다)은 주민 50%의 동의만 있다면 강압적 철거가 가능하게 명시되어 있는지, 왜 또 그런 허섭한 법들이 군사 독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널부러져있는데 사람들이 용인하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돈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잔인하다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말하면 길어지니까 이쯤에서 관두자.

예전에 다른 블로그에 썼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http://macrostar.egloos.com/4552037
6번 내용. 그게 인상적인 사람들이 역시나 많았었나보다. 이번 일도 용산구에서 생긴 일이다. 공직은 벼슬이 아니다. 니들이 대우를 하든 말든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 시민이다. 저딴 말이나 써놓으니까 민주 공권력 대접을 못받지.

20090119

추운 겨울을 지내는 힘

1단계

2단계

방이 점점 몽골인 텐트, 혹은 이글루처럼 되간다. 마음 같아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처럼 순록 가죽같은 걸로 덮어놓고 싶지만 그런거 없다. 환기용 구멍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커텐 부분) 방이 점점 어두워 지고 있다는게 문제. 이게 밤인지, 이게 낮인지, 난 누군지, 또 여긴 어딘지. 

온도는 조금 올랐는데 (현재 무려 20도라는 기적의 온도) 강추위가 지나간 다음에 담요를 친 거라 설날에 추위가 또 온다는데 어떨까 여전히 걱정. 좀 구질구질하면 어때. 일단은 사람이 살고 봐야지!

20090118

번역은 아직


번역이 너무 길고 어려운 걸로 시작하는 바람에 캐고생중. 현재 진행중 ㅠㅠ 
그건 그렇고 무한도전 방영중에 나온거라는데 왠지 절묘하구나. 사진은 퍼왔음. 그나저나 다음은 더 한 사람이라던데 ㅠㅠ 
그런데 블로거는 gif가 왜 안움직이는거야 ㅠㅠ
왜 맨날 울어 ㅠㅠ

20090115

단절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배가 고프다. 탄수화물은 싫은데, 탄수화물은 싫은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김밥 헤븐에 들어가 떡라면을 시킨다. 탄수화물과 조미료가 만들어내는 이 포만감이 무척이나 싫지만, 뱃 속이 텅 빈 듯한 허함은 더더욱 싫다. 역으로 걸어가다가 한 정거장만 걷기로 한다. 그다지 춥지는 않다. 작년에 공사가 끝난 둥글둥글하게 생긴 두 개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에서 나오는 불빛이 눈에 거슬린다. 가까이 지나가다 보니 비어있는 거대한 일층 사무실에 억지로 불을 켜놨다. 그러고 보니 위에 주르륵 들어온 등불들도 같은 색이다. 괜시리 저리 켜놓는건가... 난들 알게 뭐냐.

지하철 역 의자에 앉는다. 아이팟이 갑자기 꺼진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여하튼 배터리 교체하고 처음이다. 이 불길한 암시가 맘에 걸린다. 아이팟 미니가 난데 없이 꺼졌을 경우 조금 기다렸다 다시켜면 배터리 마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어제 자면서 충전해 놨으니 벌써 다 떨어졌을리는 없다.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른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쳐스, 케미컬 브라더스, 에픽 하이, 브로컬리 너마저, 그루브 아르마다, 백현진의 음악이 차례대로 나온다. 지루한 것들, 지겨운 것들.

지하철이 5대 쯤 지나간다. 일어나기 싫다. 뭔가 허하고, 뭔가 우중충하다. 안에다 억지로 껴입은 오리털 잠바 팔 끝에 기름 때가 묻어있다. 언제쯤 세탁을 했더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외투도 구석구석 더럽다. 지겹구나. 왜 다 이모양이지.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있다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저씨, 아줌마, 교복, 직장인, 화내는 사람, 웃는 사람, 술취한 사람. 날씨가 좀 더 따뜻했으면 어디든 돌아다닐텐데 하고 생각한다. 문래동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아휴, 지금껏 몇 년을 돌아다녔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쁜 일만 계속 쌓이잖아. 됐다. 하릴없이 칼로리를 낭비하는 일 좀 그만하자. 낮에 찍은 하늘 사진을 본다. 휴대폰으로 잠깐 게임을 한다. 손이 떨린다. 그만 두자. 그만 두자.

투덜투덜도 지겹다

이름은 발전소인데 전기는 안 만들고(덴키 그루브 요새도 활동하나) 맨 남 탓만 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요새 영어 공부한다고 이런 저런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 그거 번역이나 좀 올려보면서 평화와 안정을 좀 얻어볼까 생각 중이다.

20090109

미네르바가 잡혀갔단다

미네르바 이야기는 한 번도 쓴 적 없는데 나도 껴본다. 미네르바가 잡혀갔다. 인터넷 보도의 첫 머리는 전문대 출신 30대 무직 남성이다. 눈에 확 띄는 단어는 '전문대'와 '무직'이다. 전문대 졸업이라는 학력과 지금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가 했던 말을 평가하려고 하고 있다. 대체 글의 진위라든가 내용의 함의와 저 둘간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과연 어제 잡힌 사람이 미네르바가 맞는거냐 라는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맞다 하더라도 야, 전공도 아닌데 저만큼 공부했다니 열심히 했구나 대단하네, 고생했다가 맞는 대답 아닌가. 또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게 있다면 이건 이러이러하니 잘못 생각한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토론해 가는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자세지 전문대에 무직이라니까 '전 국민 우롱한 금융 사기극'이라니 그건 또 뭐하는 헛소리냐. C 일보는 다들 대학 나와서 신문이 그리도 잘난 이야기들만 가득 차 있는건가?

어떻게 되었든 정말 문제는 미네르바 같은 소리를 하면 잡혀간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목격한걸 목격했다고 말했다고 (설령 잘못 봤을수도 있겠지만) 잡혀간 또랑님에 이어 두번째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 나라가 정말 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다 쪽에 많이 기울어 있는게 정답인 듯 하다.

비상경제시국이라고 지하 벙커까지 들어가서 쇼하는 양반도 있는데 정말 게엄령 쯤 선포한 걸로 착각하고 있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현 재경부 장관이 IMF때 우리나라 펀더멘틀도 튼튼하고 외환도 잔뜩 있다고 뻥 친건 기억이나 하고 계시는지들 몰라.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든 경제 전망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한다. 누군가 옳은 전망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그가 틀리기 시작하는 순간 떠나간다. 루비니의 말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지금은 모두들 귀를 쫑긋 새우고 있다. 그의 조언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위기의 끝을 전망하는데 실패한다면 그는 단지 21세기 초반 찾아온 세계적 경제 불황 대처에 기여한 학자 중 한명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게 전망가들의 생애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네르바도 가만히 두면 잊혀진다. 뭐하러 들쑤고 다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20090108

우파가 폭주하는 경우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8276
박노자 교수의 이스라엘에 대한 글. 가만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좌우(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표현하든지) 이념간 어떤 균형이 있었는데 한쪽 편이 나라 설립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물이 벌이는 일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런 식의 균형이 무너져버린 사회는 여러 곳이 있는데 예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이 그랬다. 정치적 토론, 경제적 이념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로 나라가 만들어졌고 결국 사라졌다. 미국같은 경우는 대안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게 만들어져서 상당히 자주 믿을 수 없을 짓들을 저지른다. 세계의 안전이니 뭐니 외치지만 당연히 다 뻘소리다. 

사실 멀리 뒤지고 다닐 것도 없이 바로 여기에 좋은 예가 있다. 눈치 챘겠지만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이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균형을 이루어야 할 사상이 각각 따로 나라를 만들었다. 그 결과물은 상당히 골때린다. 한동안 우파 폭주 상황이 있었는데 10년간 약한 우파들이 살짝씩 폭주를 했다. 그에 만족하지 못한 시민들은 다시 폭주하는 우파를 선택했다. 

그 결과물들이 오늘도 뉴스에 나와 밀어붙인 법들이 통과하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꼴보기 싫든 말든 시민 다수가 선택했으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찌가 다수에 의해 선택되어 저지른 일을 보고 방어적 민주주의 이념이 등장한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절차 민주주의는 왜 하고 있는 걸까. 해야할 당연한 것들을 안 하면서 경제가 시급하다느니 하며 뻘소리만 해대니 웃지도 못할 노릇이다. 

팔레스타인의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남쪽과 북쪽의 답답하기 그지없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귀신은 뭐하나 몰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북쪽도 뻘짓하고 있긴 매 한가지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견제가 없으면 바보가 된다.

20090107

walk alone, listen from the ambience

제목을 바꿨다. 소문자로 표시되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하지만 지금 블로거 자체 글쓰기 모드 위로 보이는 화면에는 특유의 터무니 없이 귀여운 폰트로 선명히 새겨져있다.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누구 보라고 쓰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냐. 이건 삶의 테제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숲 속을 생각했다. 깊은 숲 속을 바스락거리며 걷다 가만히 멈춰 귀를 기울이는 모습. 예전에 소요산에서 그런 적이 있다. 산 입구부터 시작해 정상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동안 단 한명도 보질 못했다. 뭔가 등산 간 나 빼놓고 세상이 멸망해 버린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길을 걷다가 멈추면 귀에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침묵이 파고든다. 가끔 하늘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었다. 설마하니, 내가 죽는걸 기다리고 있는 거냐.

하지만 여기서는 저 문장이 그렇게 심각하거나, 한계적이거나, 혹은 토속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앰비언스에는 약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사실은 그것보다 음악 장르 앰비언트의 느낌을 살리고 싶다. 어쨋든 약간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들렸으면 좋겠는데 네이티브가 아니라서 뉘앙스까지는 잘 모르겠다. 한글로 쓸 수도 있는데... '혼자 걷다,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라서 좀 이상하다. 앰비언스가 죽어버린다. 그냥 로로스의 음반을 듣다가 저 문장이 문득 생각났을 뿐이다. 

8년. 그렇다 8년이다. 그쯤을 방황을 했다. 원하는 거였든, 원하지 않는 거였든, 운명이 었든, 혹은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었든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이다. 그동안 얻은게 뭐가 있나 뒤돌아봐도 별로 잡히는게 없다. 마땅한 커리어도 없고 득도를 한 것도 아니다. 물론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한다. 버려지듯 내팽개쳐진 8년 동안, 그들이 날 버리든 말든 상관없이 꼭 붙잡고 절대 놓지 않을 작정인 사람들이 몇 명있다.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왠지 불쌍하군.

잃은건 꽤 된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피지컬리하게만 바라봐도 치아가 한개 반이 썪어 문드러져 떨어져나갔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아픈 위가 생겼고, 손바닥에 안없어지는 손톱만한 굳은살 비슷한게 하나 생겼다. 코에 점이 하나 더 생겼고, 여드름은 어렸을 적보다 더 많이 난다. 얼굴은 더더욱 칙칙해졌고, 보기 싫은 군살이 여기저기 붙었다. 군대 3년의 정신적 충격을 매듭짓는데 이리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라고 변명한다. 누구는 멀쩡히 살아가지만 다시 사회에 복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8년이 걸렸을 뿐이다라고, 이 정도면 잘 한거 아니냐라고 별 쓸데도 없는 변명도 해본다. 어쨋든 변명 거리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어쨋든 다시 돌아보건대 지난 8년간 나는 그토록 증오하던 인습의 벽에 더 굳건하게 휩싸여 있다. 깃털처럼 가벼워져 훨훨 날겠다는 애시당초의 꿈은 온데 간데도 없다. 삶은 더 팍팍해 지기만 하고 생각은 구석구석까지 정치적이 되어간다. 빙빙 돌아다니다 길을 잊어먹었나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난 반환점을 턴했다. 지금 온 만큼 앞으로 더 갈 수 있을지 이제는 확신이 없다. 남들은 정리를 해야할 시간에 나는 다시 출발을 해야 한다. 하긴. 아무렴 어떠냐. 언제나 출발하면서 죽을 때까지 살면 안될건 또 뭐 있으랴 싶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숲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나무가 살짝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간다. 발자국 소리 따위는 없다. 그렇다. 여기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