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2

헌법 제 37조

김정일 조문과 관련된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어제 새벽에 했는데, 그러자마자 국보법 사건이 하나 또 발생했다. 박정근이 구속된 거다. 그는 트위터에서 북한에서 개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했고, 이와 더불어 여러 이야기를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국가보안법 제 7조 1항과 5항 위반 혐의이다.

이 사건의 내막을 조금만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할 것이다. 그는 명백히 놀리고 있었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더구나 사회당 당원이다. 예전에 박홍이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다고 했던가 사노맹 뒤에 주사파가 있다고 했던가 여튼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주장을 해서 정작 당사자들은 웃고 말아버렸던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혔던 건 그 프레임이 먹혀들었다는 거다.

사노맹, 조평통, 사회당, 민노당, 주사파 이들끼리의 관계가 어떤 지 사람들은 관심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 무관심은 '누군가에게' 언제나 무척 좋은 재료가 되어 준다. 그리고 사실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행복 추구권의 측면에서 그가 정말 종북을 하든 말든 그런 건 별로 상관도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그가 정말로 무장해 뭔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때 가서 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트위터 팔로우와 리트윗으로 국가 안보가 흔들릴 일은 없다.

이런 황당한 법이 세상에 있다니 하고 놀라고, 나름 시위도 쫓아다니고 했던 게 벌써 20여년 가까이가 지나갔다. 지긋지긋하다. 나보다 더 전 세대부터 좀 더 큰 실질적인 피해를 막심하게 본 분들은(이따위 법으로 죽은 이들만 대체 몇 명인가) 이 몇 십년을 버텨와 줄기차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법을 보면서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지긋지긋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더 웃긴 건 그들의 동료들이 의회로 정치로 샥샥 진출하면서도 이 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괴롭힌다.

국보법이 왜 악법인가는 저번 포스팅에서 잠깐 이야기했으니 여기서는 넘어간다.

http://macrostars.blogspot.com/2012/01/20120110-2.html

이 사건은 너무나 엉망진창이지만 몇 가지 이야기는 해놓고 싶다.

 

1. 국보법은 헌법재판소에서 몇 번 합헌 판결을 받았다. 헌법 제 3조의 영토 규정이 국보법의 기반이고, 제 37조 2항의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국보법이 만들어져있고 유지되고 있다.

이 말은 이건 어디까지나 입법의 문제라는 뜻이다. 즉 국회에 의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 제 37조 2항의 규정에 따라 법률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게 국보법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입법에 의해 없애면 된다. 국회 구성에 달려있고 즉 이건 어디까지나 선거만 잘 해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렇게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잠시라도 천착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우리 사회는 반공에 의해 구성되어 있고, 정작 당사자들이 우리는 공산당이 아니에요든가 종북주의 꺼져라고 말해 봤자 진보 계열이 통으로 도매급 취급되는 경우도 너무나 많고, 결정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만약 진보적인 국회가 구성되어 국보법을 없애려 시도한다면 국회 앞에 어버이 연합이나 바르게 살기 위원회 정도만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심리적 방어의 벽이 높다.

내 생각에 우리 나라의 일반적 정서는 중도 성향의 안정 추구가 아니라 강성 대국이다. 그걸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국가다. 여차하면 파쇼 국가로 변신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폭력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북한의 위험을 '정말로' 걱정하는 사람도 대단히 많다.

그러므로 이런 저항선에 변화가 오지 않는 한 국보법은 어지간해서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2. 그러므로 오히려 이 쪽이 더 가능성있는 문제제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건에서 가장 한심한 부분은 검사가 구속 영장 발부를 신청했다는 거고, 결정적으로 법원이 그 청구를 받아들였다는 거다. 백번 양보해 검사가 구속 영장 발부를 신청한 거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법원이 그걸 받아들였다는 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말 궁금하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저번에 명예 훼손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한 적이 있는데 검찰의 기소 독점제 때문에 비롯된다. 우리 헌법 제 12조 3항에서 이 문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즉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사실 이 규정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있다. 국가가 맘대로 사람들을 체포, 구속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검사가 신청을 하고, 법원이 받아들여야 구속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놨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검사가 제대로 일할 때에 유효해진다.

이것은 사실 임의로 구속 신청 여부를 판단하라고 만들어진 규정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권력화되면서 검사에게 대단한 힘이 발생했다. 임의적으로 판단해서 수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재벌이나 권력자 쪽은 제대로 수사가 시작도 되지 못한다. 검찰 자신 역시 문제가 생겼을 때 은근슬쩍 덮여지기 일쑤다.

더구나 검찰청은 마땅한 감시나 견제 기관도 없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3권은 모두 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사법부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튼 결정이 내려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청구가 들어온 사건만 판단하지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그 권한 행사가 제한된다.

하지만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사법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강한 권력임에도 제어할 만한 기관도 제도도 없다. 그저 검찰청의 바른 판단을 믿을 뿐이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시절에 검찰청 제어 기관을 법원에 두기위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강한 반발로 실패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감시 기구, 제어 기구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 이 것도 그리 녹녹치가 않다. 행정부 안에 만드는 건 택도 없고, 의회에다 만들어놓으면 의원들은 꼬투리 잡힐 까봐 그냥 가만히 있고, 법원도 마찬가지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검찰의 과대 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라도 경찰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서 이 둘 간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해 서로 잡아먹게 하는 방법이 사실 가장 현실적이다. 경찰에게 검찰 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

또한 기소 독점의 문제에 있어서는 헌법을 개정하는 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다수 위원회 같은 걸 차라리 따로 만들고 그 결정에 강제성을 둬서 검찰은 신청만 하도록 해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검찰 총장의 직선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건 사실 현 상황에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검찰 총장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지닌 자리에 엄한 사람이 들어앉는 날에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할 복잡한 일들이 잔뜩 발생하고, 직선제에 의해 확보된 민주적 정당성에 의해 누가 제대로 견제도 못할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무척 보수적이고, 특히 권한을 많이 가진 이들은 더욱 보수적이다. 투표로 결정하게 된다고 해서 진보적인 인사가 검찰 총장에 직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교육하고는 다르다. 언젠가는 이런 식으로 가야하겠지만 아직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또 잘못된 구속 영장 청구, 혹은 구속 영장 청구를 해야 하는데 안하는 경우에 대한 제어 규정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엄한 짓들을 너무 많이 하는데 별 대책이 없다. 위에서 계속 말했듯이 검찰의 권한 축소가 핵심이다.

 

3. 법원이 왜 이 구속 영장 청구를 받아들였는가는 전혀 모르겠다. 누군지 몰라도 자발적으로 검찰에 이용당하는 걸 마다하지 않은 이 판사에게는 사법 시험 합격 취소 소송이라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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