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처음 개입한 신문/혹은 잡지의 이름은 '해방일지'였다. 생긴 건 일간 타블로이드이지만 발행은 월간으로 했다. 지금 봐서는 고리타분한 이름이다. 사실 그때도 고리타분한 이름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 이름을 끄집어 냈고, 반대가 많았지만, 살렸다.
고리타분하다고 그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다. 그때는 나 자신이 지금보다 약간 더 이데올로기 적이었다. 더불어 조금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고리타분함을 전면에 세우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신문 제목의 왼쪽에는 사인펜으로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라고 써놨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말이다. 모른다고 해서 별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어쨋든 80%는 가내 수공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매우 세심하게 프로듀싱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함의는 아무도 몰랐다.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미학에서의 논의와 비슷하다. 우선 내가 숨긴 코드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토끼를 그렸는데 보는 사람마다 당나귀라고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건 실력의 문제다. 수긍할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또 하나 디테일은 많은 부분 컨텍스트에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컨텍스트 경계에 있는 자가 컨텍스트 내부를 시뮬라크르하며 만들어진 텍스트와 디테일은 이해되기가 무척 어렵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유하는 자가 '아주 조금'있었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암호를 뿌리는 입장에서, 해독지를 들고 찾아온 자는 반갑기 마련이다. 지금은 안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그때는 그랬다. 어쨋든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렇게 2년 정도를 했고 편집장 자리를 넘겨줬다. 여기에는 복잡한 분파 문제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생략한다. 어쨋든 자리가 넘어가자마자 '그 쪽'에서는 신문 이름을 바꿨다. '문화 어쩌구'인가 하는 허접한 이름이었다.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시선을 외면하며 2회 정도 참여했지만 결국 나는 빠졌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난 문제이기 때문에 상관할 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침몰할 게 빤한 자신이 만든 배를 보는 기분은 착찹하기 마련이다.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소중한 종이를 낭비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는 내 자신이, 지금보다 더 까칠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외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조금 어폐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글에 감정이 매우 깊게 실린다. 대체 왜 표면에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않는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갈 생각도 없고, 들어가는 일 자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면한 a가 중요하고, a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개인적 경험들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걸 공유하고 상대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려고 하고, 거기서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고, 더불어 모두와 함께 나누려고 한다. 이런 게 정말 짜증이 났다.
그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 쓴 글을 볼 때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왜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는가. a가 중요한데 왜 A, 심지어 B, C를 끄집어 내는건가. 너의 감정은 어디있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감정에 겨워 앞뒤 모른 채 다만 아무 소리도 안하고 있는 것 뿐이다. 여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 영문을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오늘 사온 잡지에는 매우 신경을 거슬리는 말투들이 있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게 매우 불편하다. 롯데리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읽다가 참으로 오래간 만에 이런 종류의 분노를 느꼈다. 기시감이 있었고, 그게 뭐였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기억이 위의 일들이다. 이번 건은 내부 사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그런 결이 느껴졌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여전히 나는 성숙하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성숙하면 좀 더 본격적으로 반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든다. 하지만 모두들 잘 됐으면 좋겠다. 이게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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