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몸에서 냄새가 난다. 날씨에 지레 겁을 먹고 너무 두꺼운 옷을 입을 때가 있다. 바쁜 걸음으로 조막만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따뜻하게 데워진 지하철 의자에 앉았을 때 기분 나쁜 냄새가 목덜미 사이로 올라온다. 부랑자의 냄새다. 뭔가 지긋지긋해진다. 이어폰을 꼽은 채 시시한 노래들을 듣지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이 냄새가 옆 사람에게는 안 났으면 좋겠다. 부랑자 놀음은 누구에게는 유희지만 누구에게는 닥쳐오는 현실이고, 누구에게는 삶 그 자체다. 이런 말이 무섭다.
요즘 음악을 듣는 패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네이버 뮤직에서 TOP 50이나 신곡 50을 듣는다. 어디까지나 hear의 레벨이다. 그러다가 뭔가 listen하게 되면 기억에 남겨 놓는다.
또 하나는 아이튠스에서 랜덤 플레이다. 이상하게, 곡들이 참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들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내가 모은 곡들이니 취향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아이유부터 소닉 유스까지, 올맨 브라더스에서 에릭 돌피까지, 몽골800에서 라흐마니노프까지 나름 커버하는 범위가 넓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비슷한 느낌의 정체가 같은 플레이어에 같은 EQ 세팅, 같은 이어폰 때문인건가 생각하고 있다.
어쨋든 이렇게 듣다가 뭔가 마음에 들거나 하면 앨범을 돌린다. 지금은 Nightmares on Wax의 Carboot Soul 음반을 듣고 있다. Belle and Sebastian의 You don't send me, Pavement의 Stop Breathing, 하마사키 아유미의 walking proud에 이어 Nightmares on Wax의 fren the middle이 나왔고 그래서 Carboot Soul을 듣기 시작했다.
침잠된 목소리로 시원찮은 곡을 연주한다. 시시하지만, 지금 상황에 꽤 잘 어울린다. 나는 지금 손에서 나는 냄새에 괴로워하고 있고, 비누로 몇 번을 씻고 왔고, 방은 코 감기의 흔적들 - 휴지들 - 이 널려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위생천을 두 병 마셨고, 그래서인지 배가 고프다. 그래픽 카드의 이상으로 컴퓨터는 수시로 꺼진다. 지금 끄적거리는 이 글도 난데없이 꺼지면 사라질 것이다. 묘한 긴장감이다.
손에서 냄새가 난다. 70정도는 담배 냄새고 30정도는 강아지 냄새다. 가끔은 살 냄새가 난다. 가끔은 남의 냄새가 난다.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이 냄새가 싫다, 라고 생각한다. 무취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무슨 냄새인가가 난다.
내 방에는 시계가 없다. 째깍거리는 소리 속에서는 절대 잠을 못들기 때문이다. 무소음 벽 시계를 사 볼까 했는데 관뒀다. 마리메코를 수입하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인조 잔디가 깔려있는 벽 시계는 참 예뻤다. 잔디를 좋아한다. 학교 다닐 때는 수시로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고, 얼굴의 반쪽만 새까맣게 탔다. 그래도 바삭거리는 소리와, 냄새와, 스며들어있는 수분의 기분 좋은 조합이 좋다.
밤이다. 아니 새벽이다. 이 1년 간 시간에 잠 들어있던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다 들어갈 것이다. 4시가 되면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난한 자들은, 그냥 굶어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그 때부터 움직여야 한다.
다음 주에는 사람들을 좀 만나고 싶다. 오랫 동안 못 봤던 사람들을 만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경우도 있을테고, 괜히 만났나 싶을 때도 있을테고, 어떤 기대감 같은 거에 부풀 경우도 있을테다. 만나고 싶지만 못 만나는 경우도 있을테고, 만나고 싶지 않지만 만나는 경우도 있을테다. 몇 명 글자로만 아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데,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다.
어쨋든 그런 게 인생이니까. 하지만 31일까지 이제 며칠 남지가 않았다. 마음은 꽤 조급한데, 몸은 위태로울 정도로 느긋하다.
플레이는 랜덤으로 다시 바뀌었다. 알리의 365일을 듣는다. 이 다음 노래는 Pink Floyd의 Us and Them이고(코러스가 너무 진득해서 별로다), 아이유의 좋은 날 Inst 버전이다. 그 다음은 the Beatles의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다. 이 곡은 A Hard Day's Night에 실려있다.
이렇게 새벽이 또 지나가고 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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