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3

굿 바이 게리 무어


게리 무어의 솔로 앨범을 처음 들어본 게 언제였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Still Got the Blues’가 나왔던 1990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LP로 가지고 있다. 필 리뇨트가 있던 밴드 스키드 로우의 멤버였기 때문에 계보 외우던 시절이라 그 존재를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어쨋든 개인적으로는 나름 듣보잡 기타리스트였다.

스틸 갓 더 블루스에서도 지금 기억을 떠올리라면 생각나는 건 스틸~ 갓 더 블루~스 하는 타이틀 곡의 후렴구와 자켓 뒷 면에 찍혀있던 햄버거 사진 정도다. 본토 햄버거 맛을 잘 모르던 당시의 나로서는 그 큼지막하고 뭔가 잔뜩 들어있는 햄버거가 너무나 맛있게 보였다.


여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퓨전 음식 따위 보다는 제대로 만든 원형 보존형 된장 찌개가 더 가치있지 않냐하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나에게 게리 무어는 영 마뜩치가 못했다. 하필 주 장르도 그 고고한 이름, 장르의 아버지 블루스다.

거기다가 이름이 게리 무어가 뭐야. 블루스라면 역시 존 리 후커, 비비 킹, 티 본 워커 같은 멋지구리한 이름이어야 했다. 한번 양보해서 백인이면 라이 쿠더나 스티브 레이 본 정도면 그래도 이름을 되뇌이는 보람은 있다.

그리고 블루스라면 미시시피나 오스틴 근처 출신이어야지 하는 마음도 한 몫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벨페스트에서 온 백인 블루스 기타리스트라니. 2억 만리 타향에서도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가 울렁거리며 들리는 거 같은 데 왜 데모 안하고 블루스 같은 걸 하는거야 라는 어린 아이 적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스타 대접을 하기엔 너무 못 생겼다. 뭐 편협하든 말든 열광하기에는 3가지나, 그것도 크리티컬한 제약 조건들이 있다.



게리 무어는 1952년 생이다. 고향은 벨페스트인데 1968년에 더블린으로 이사를 간다. 앨버트 킹이니 더 쉐도우니 더 비틀즈니, 아니면 고향 동네 사람 존 메이얼이니 이런 저런 영향을 받던 그에게 나타난 멘토가 있었으니 바로 플릿우드 맥의 피터 그린이다. 나중에 트리뷰트도 내고, 피터 그린이 쓰던 레스폴 기타도 사들이고 그런다.

어쨋든 블루스를 하긴 하는데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가 않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꽤 히트를 친다.

68년 더블린에 와서 필 리뇨트의 스키드 로우에 합류한다. 그리고 1973년에 첫 솔로 음반을 내 놓는다. 필 리뇨트는 69년에 씬 리지를 시작하면서 나름 바쁜 와중인데도 게리 무어의 솔로 음반에 많은 도움을 줬다. 78년에 나온 파리지안 워크웨이 등 여러 곡들을 필 리뇨트랑 같이 만들었다.

여튼 그 이후도 나름 장르 따위 가리지 않고 선 굵고 출렁거리는 리듬이 필요한 곳이라면 이런 저런 밴드와 이런 저런 뮤지션들과 함께 꽤 여러가지 작업들을 했다. 참여 한 작업들만 봐도 앨버트 킹, 비비 킹, 밥 딜런, 코지 파웰, 앤드류 로이드 웨버, 진저 베이커, 폴 로저스, 오지 오스본 등 대중 없다.

어쨋든 80년 대에는 그는 록에 보다 집중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90년에 스틸 갓 더 블루스를 내 놓으면서 내가 이래뵈도 블루스 좀 한다고~ 하면서 돌아온다. 내가 게리 무어를 들은 건 이 시점이고 당시에는 사실 그가 80년 대에 뭘 했는지 잘 몰랐다.

그리고 이때 아일랜드 출신 음악인들이 국내에서도 약간 주목을 받으면서 잡지에도 다뤄지고 그랬다. 하지만 엔야, 뷰욕, 게리 무어, U2라니 각각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면, 80년대에 나름 유럽의 네임드였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고향이랑 이름이랑 못 생긴 게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니 뭐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거 같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흘러 1999년 A Different Beat 이후 게리 무어는 나에게서 완전 멀어져 갔다. 문득 옛날 음악이 생각 나 블루스나 들을 까 해도 선택지에 게리 무어가 포함되기는 어려웠고(필라델피아의 거장들이 CD장에 곤히 잠들어 있다), 그렇다고 옛날 록을 들을까 해도 게리 무어가 포함되기는 어려웠다. 이 즈음 연도라면 차라리 데프 레퍼드 초기 음반이나 UFO가 낫다. 차라리 필 리뇨트는 씬 리지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종종 듣게 된다.

게리 무어는 전반적으로 이런 포지셔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그의 기타 톤을 레퍼런스로 삼는 사람도 있을테고, 또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리스트도 있다. 하지만 그는 ‘전설’의 느낌보다는, 언제나 옆에서 그 우울한 얼굴로 선 굵은 기타 톤을 뽐내는, 하지만 있는 지 없는 지 잘 모르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 더 크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2011년이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부고가 들려왔다. 2월 6일 여자 친구와 스페인 에스토니아의 한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10년 만에 들은 소식이 사망 소식이라니- 오호 통재라 하는 아련한 생각이 없을 수가 없다. 뭐 이게 뭐냐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어쨋든 한 시절 햄버거 사진을 보며 열심히 들었던 음악이고, 기타 키즈들이 대게 그렇듯 파리지안 워크웨이를 둥둥 거리던 시절이 있었던 거다. 그 시절 듣던 음악들은 어딘가 짠 한데가 있다. 자잘하니 모아진 용돈으로 이 달에는 무슨 LP나 테입을 살까 고민한 흔적이 녹아 있고, 좋던 싫던 적어도 한 달은 죽어라 들어 대던 음악이다.

중고등학교 때 듣던 음악, 보던 영화인 들의 부고 소식은 이렇게 시대가 마감되어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점점 굳게 만든다. 어렸을 적에는 다들 멀쩡히 살아있었고, 부고가 들리는 아티스트들은 책으로나 접하던 사람들이라 몰랐는데 요즘 들어서는 누가 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가... 하는 상념에 빠진다. 이왕이면 다들 천수를 누리며 행복하게 제명까지 살면 좋겠다.

간만에 게리 무어를 듣고 있다. LP를 PC로 옮기지 못해 어디서 우연히 들리는 거 아니고는 전혀 듣지 못했는데 정말 오래간 만이다. 네이버 뮤직을 뒤져보니 거의 모든 곡들이 다 올라와 있다. 소리가 너무 깨끗한 게 약간 낯설고, 알량한 이어폰으로 듣느라 예전에 그 미드 레인지 음역대를 잘 살려 놓은 굵은 기타 톤이 쿵쿵 거리며 뱃 속을 울리는 느낌이 없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뭐 하나 변한 것 없이 감상적이고, 여전히 조금씩 오글거리게 유치하다.

싫다는 게 아니다. 그런 게 바로 게리 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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