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5

알리, 영혼이 있는 마을을 듣다

우선 음반 이야기.

순간 임팩트가 대단한 가수가 있고, 음반으로 곱씹으면서 들어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가수가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일단 알리는 임팩트가 강하다. 불후...에서는 대단했다. 목소리, 동작, 표정 등 그런 종류의 경연에서는 어지간하면 경쟁자가 따라잡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효린은 약간 다르다. 그는 댄스 중심의 걸그룹의 멤버고, 불후...는 과외 활동이다. 거기서 갭이 만들어지고 발란스가 만들어진다. 갭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현아나 아이유가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음악을 떠나 인간 자체가), 그 이유는 갭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하고 성실하고 연예인같은 소시나 원걸하고는 다르다.

그게 의도한 것이든, 훈련한 것이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든 그런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거라면 정말 연예인이 될 것이고 훈련이면 언제가 깨질 지도 모른 다는, 그래서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존재하는 정도다. 어쨋든 21세기 초반의 완성형 아이돌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임팩트가 강하다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과, 더구나 노래를 잘 한다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래는 좋은 음악을 위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어쨋든. 음반은 풀로 듣기에는 약간 지루하고 질린다. 임팩트 강한 목소리가 계속 머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랜덤으로 듣다가 다른 곡 속에서 한 두 곡 흘러나오는 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어차피 정규 음반을 내 놓기는 했어도 싱글로 활동할 테니 알리 자신에게는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타이틀인 '촌스럽게 굴지마(feat. 용준형)'도 나쁘지 않고, 음반 나오기 전에 싱글로 나왔던 '뭐 이런 게 다 있어'도 괜찮다. 이 곡과 비슷한 연장선 상에 있는 '365일'도 요즘처럼 추운 날에 잘 어울린다. 깝깝하고 속 터지는 가사의 노래를 불러도 이소라의 그것처럼 심연으로 치닫지 않기 때문에 깔끔한 맛이 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를 부를 때의 알리는 참 좋다.



그리고 나영이. 처음에 신문에서 기사를 읽고 오바하는 거 같은 데라고 생각은 했다. 역시 바로 논란이 되었다. 딱히 네가티브 이슈 메이킹도 아닐거라고 생각하고(그게 효과가 있기나 할까와 불후..로 좋은 이미지를 쌓기 시작한 입장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당이 아마츄어도 아니고), 뭐 시작은 좋은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무지가 잘못을 소각하지 못한다.

약간 더 넓은 이야기를 해보자.

약자를 위한 착한 일이라는 건 그저 의도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상 급식,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아프리카와 인도의 어린 여자아이들, 축구공을 만드는 중국의 어린이들에 대해 그냥 뭐든 도와주면 되겠지하는 안일하고 자기 만족적인 구호 활동들이 대부분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한 건 그 때문이다. 이런 건 매우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고,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가능한 모두 고려해야 하고, 그러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정해 가야 한다. 

똑똑한 NGO들이나 지식인들이 많드는 복지 정책이 정작 가난한 이들에게는 별 혜택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들도 이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 임대 주택 8만호 건설 계획 같은 걸 다른 방식으로 바꾸게 하는 진보 진영의 압력이 무척 거세다. 그걸 굉장히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어쨋든 상상으로는, 그리고 책상 앞에서는 결코 다른 사람이 처지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건 분명하다.



논란의 알리의 그 노래가 어제(12월 14일)부터 제작되는 씨디에서 빠졌고, 오늘 부(12월 15일)로 음원 사이트에서 삭제되었다. 수록곡이 11->10으로 바뀌었는데, 그럼 보너스 한 곡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_-

PS 이 문제는 약간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가 바뀌었다. 상상력은 현실을 결코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일단 써놓은 건 이렇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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