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2

바람이 많이 불었고, 생각보다 더웠다

아침부터 머리가 너무 아팠다. 하지만 대관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두통약을 하나 먹었고, 혹시 카페인 부족 현상 중에 하나인가 싶어 맥심 인스턴트 커피를 몇 잔 마셨고, 어제 일요일에 너무 뒹굴거리기만 해서 몸이 찌뿌둥해 그런 건가 싶어 가볍게 산책을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어쨋든 그렇게 하루를 지내다가 문득 이건 좀 걷든지하며 몸을 좀 혹사시켜야 괜찮아지겠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가만히 있어서 그런거 같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에서 오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멜론이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하고, 스테이크가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한다. 운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쨋든 걷기라도 해야 한다. 급하게 필요로 하니까 시그널링을 보내는 거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리 덥더니 해가 지고나니 쌀쌀하다.

Photo 4월 11, 23 40 11

오래간 만에 이 루트로 걸어본다. 겨울에는 어지간히 따뜻한 방한복이 있지 않는 한 엄두가 안나는 코스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모자가 날라갈 거 같아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밤섬 옆 어둠 속에 작은 배가 한 척 있는 거 같았는데, 잘 안보였다. 뭐가 있는 건가 하고 가만히 보고 있는데 한강 한 가운데로 번쩍거리는 경광등을 단 모터 보트가 지나갔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면 저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고질라가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내게 별 뾰족한 수가 있을리 없다.

열심히 걷다보니 생각보다 몸이 후끈해졌다. 아침과 밤의 쌀쌀함이 무서워 계절감없이 따뜻하게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거보다 더웠다. 바람 때문에 얼굴의 체온이 확확 떨어져가는 걸 느끼면서도 땀이 흘렀다.

서강대교는 변한게 없다. 바로 옆 마포대교가 널찍하고 쾌적한데 비해, 서강대교는 좁고 을씨년스럽다. 평균 5km/h대로 열심히 걸으면서 어제 챙겨놓은 음악을 들었다. 요즘 아이팟에는 아이튠스에서 20회 이상 들은 곡 200곡, 한 번도 듣지 않은 곡 50곡을 골라내(스마트 리스트라는 좋은 게 있다) 랜덤으로 듣고 있다.

생각을 덜어내며 열심히 걷는 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핑크 플로이드, 벨 앤 세바스찬 같은 것들을 흘려듣다가 2ne1과 f(x)에서 멈춰섰다. 결국 급하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고 둘 만 반복해 들었다. 2ne1은 꽤 되는 데 f(x)는 Nu ABO 한 곡 밖에 없다(피노키오를 기다리고 있다, 안 좋으면 가만 안둘거다).

한강을 5km/h의 속도로 열심히 건너는 일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음악은 없다. 경쾌하고, 드럼과 베이스는 알맞게 진중하고, 반복적이고, 질리지 않는다. 훌륭하다.

 

나름 열심히 4km를 걸었는데 그다지 나아진 건 없었다. 하지만 문득, 계속 속이 답답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어제 밤부터 체해 있던 것이다. 시시 때때로 체하는 주제에 항상 이렇게 늦게 깨닫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가스활명수라도 사놓을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침부터 안좋았으니 범인은 어제 먹은 음식이다. 어제 먹은 음식은 둘 - 평범한 점심 밥, 내가 만든 저녁 밥.

Photo 4월 11, 23 40 26

(핀트가 안맞아서 작게 올린다)

 

트위터에도 올렸는 데 어제 밤에 난데 없이 꽁치김치찜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급하게 만들어먹었다. 비록 통조림이지만 광화문에 꽁치김치찜 파는 식당에는 꽁치가 달랑 두 조각밖에 안들어있는데 나는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통조림에는 꽁치가 여섯 조각 들어있었다) 신나게 만들어 급하게 먹어댔다.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결국 급하게 먹은 게 죄다. 슬프다.

그건 그렇고 토요일에 쟈니 덤플링 반달 군만두를 먹었는데 그게 너무 너무 또 먹고 싶다. 아휴. 체해서도 이런 걸 생각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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