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4

잡스러운 생각들

아직 정리가 잘 안되있는 상태라 일단 갈겨놓고 본다. 실물 경제의 움직임은 패턴이 다양해서 역시 좀 넓은 뷰를 가지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한은이 목요일에 금리를 내렸다. 무려 1%.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여러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선 벌써 옛날 일처럼 들리는 뉴스다.


몇 번 말했듯이 개인적으로는 금리 인하에 반대한다. 지금 시점에서 금리 인하는, 말하자면 폭탄을 다음 순번에게 넘기는 정도의 기능 밖에 못한다. 물론 이건 정치 전략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투표로 당선된 어떤 집단도 자신들의 집권기에 하필이면 체질 개선을 위한 불황을 치루고자 마음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개발 독재 같은걸 옹호하자는건 아니다. 혁명이나 전복을 시도하는게 아니라면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건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문제라는 특별한 부분이 걸려있다. 계속되는 금리 인하는 부동산 시장을 그나마 연착륙(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어쨋든 거품을 빼내는) 시킬 가능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괜찮은 나라가 되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언젠가 한번 쯤은 큰 결심을 하고 체질 개선을 위한 불황과 혼란의 시기를 버텨내야 한다. 물론 이건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쳐다볼 문제는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사는 곳이고 정책은 사람이 잘 살자고 추진하는 것인데, 지금의 상황은 이 판단이 어느덧 기업의 매출과 나라의 GDP 숫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문제는 지금 우리가 불황과 혼란의 시기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불황과 혼란을 별 의미없이 겪고 있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도 별로 의미가 없다. 저번 선거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아직 그렇게 개선해 나갈 생각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체질 개선과 관련해 요새 관심이 가는 나라는 덴마크다. 유로 통화권이 아닌 덴마크는 지금은 금리를 내렸지만 작년 쯤 전세계적으로 달러권-영국-유로권, 그리고 그에 대한 의존도가 큰 나라들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을때 혼자 금리를 올렸다. 불황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비관적인 기사를 꽤 많이 봤다. 특히 프리드만의 예상과는 다르게 (프리드만은 불황이 찾아오면 유로화가 분해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오히려 유로화 권들이 똘똘 뭉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한 나라만 제 갈길을 찾아가버리면 공중 분해될 거라는 예측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쨋든 이 나라들이 금리를 내려가며 자국 시장의 움츠려든 유동성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 덴마크는 투자를 위축시키고 실업률을 증가시킬게 분명한 금리 인상을 택했었다. 이에 따른 경제 위축을 보며 덴마크가 유로화에 가입안해서 지금 저고생을 하는거다라는 류의 기사를 가디언에서 읽었는데 글쎄, 누가 결국 옳은 선택을 한건지는 몇년은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덴마크는 더욱 튼튼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금리 인상, 최소한 금리 유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에 기인한다. 물론 덴마크에 비해 우리의 금융 기술과 제조업 기반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고려할 문제다.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적정 금리나 적정 환율이 얼마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아웃풋, 즉 Y를 끌어내고 있는 구조 자체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보이는 수치를 개선시키기 위한 외화 투입에 의한 환율 정책이나 연기금 투입에 의한 주식 시장 개입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것들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의 미봉책으로 사용되거나, 경제 주체들을 향한 시그널링으로만 의미가 있다. 요즘 매일 발생하고 있는 경제적 사건들 속에서 미봉책을 남발하면 정작 필요할 때 효과를 반감시킨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 시그널링 따위는 시장에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별 의미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더구나 지금의 정부의 시점을 용인하고 인정한 것은 다수의 유권자들이다. 내가 찬성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단 별개의 문제다. 합리적 기대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깔아놓는다면 1% 금리 인하는 일단 효과적이다. 저 정도 수준일 거라는 기대가 없었고 돌발적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물가만 올려놓을 것이고, 더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그저 모두 죽는다.


재밌는 점은 래디컬한 금리 인하가 있던 날 환율이 내렸다는 점이다. 금리 인하로 기대 환율이 높아졌음에도 당장의 환율이 내린 문제에 대해서 여러가지 가정이 있을 수 있다. 더 재미있는 점은 10월에 한은이 금리를 인하했을 때도 환율이 내렸다는 점이다. 미국 자동차 구제 금융 부결에 따른 달러 가치 하락은 금리 인하 다음날이므로 여기에서의 가정에선 제외한다. 그냥 대충 해보자.


1) 외환 시장이 현재 너무 작아서 기대가 있던 말던 자그마한 외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그 날 달러를 내놓는 사람은 많았는데 딱히 필요한 사람은 없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런 상황에 왜 하필 그 날 달러를 내놓은 사람들이 많았을까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지만 어쨋든 별 의미는 없어보인다.


2) 현재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에 책정되어 있어서 (이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시간 순서를 나눠보면) 일단 환율이 내릴 것이고 그 다음에 금리 인하가 개입되어 결정될 환율이 먼저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최소한 지금의 적정 환율이 어제 마감 수치보다는 낮을 거라는 가정 정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은이 열심히 움직이는 걸 보고 시장이 안정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환율이 내렸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시장이 한은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과 현재 환율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가정이 함께 필요하다. 이건 (아직은 좀 논의가 필요한) 커런시 버블과 연관된다.


3) 10월달에 한은이 금리를 0.25%인하했을때 기획 재정부에서, 금리 인하는 주식시장에 호재라는 점에서 환율을 하락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언급을 했었다. 러프하게 말해서 주식이 오르면 외국인이 돌아오고 그러면 환율이 낮아진다. 이는 매우 급격하게 움직이는 달러들이 여전히 한국에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건 설득력이 있는 견해이긴한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이런 정도의 변동에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라면, 멍청한 투자자가 아닌 이상 당연히 환손실 문제를 걱정한다. 즉 주가가 올라도 환율이 떨어지면 이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달러를 들고 있는 투자자들은 당연히 헤징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환율 변동에 대한 Expectation이 명확하다고 예상했으므로) 달러 선물 거래를 생각할 수 있다. 어쨋든 지금 상황에서 환율과 주식 시황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건 의미 심장하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를 볼 때 환율과 주식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즉 환율이 우리 시장 상황(정리가 되고 있냐, 안되고 있냐)의 일종의 바로미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요일 금리 인하를 한 시점에서 한은에서 (아마도) 잘못 판단한 점은 미국이 자동차 구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점이다. 이것 때문에 금리 인하의 효과가 상당히 둔화되어 버렸다. 미국 증시가 폭락했고 덕분에 우리나라 증시도 함께 내려앉아버렸다. 이왕 한건데 이 부분은 좀 아쉽다. 그런데 여기서도 환율이 다시 상승했다. 미국이 자동차 3사를 살리지 않으면 달러화 가치가 약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건데 환율이 올랐다는건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한중일 스와핑 규모가 300억불로 확대되었고 미 금리가 조만간 상당히 인하될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도 그렇다.


결국 이걸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외환 시장이 미국 증시와 국내 증시의 영향, 그것도 매우 단기적인 영향을 굉장히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현재 환율이 달러 공급의 증권/채권 시장에 유입되는 돈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건 앞으로 미국이 금리 인하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때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바라보면 좀 더 확실해 질 것이다. (가정이 맞다면 한국 주가는 오를 것이고 더불어 환율은 내리게 된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예외적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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