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30

복도

다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긴 막대기에 바퀴 다섯개가 달려있는 봉을 손으로 끌며 돌아다니고 있다. 봉의 끝에는 두개, 혹은 서너개의 약이 들어있는 비닐통이 있고, 비닐관과 주사 바늘로 팔에 연결해놓고 있다. 생명을 연장하는 줄, 건강을 회복시키는 줄. 대부분은 자신의 링겔병에서 흘러나오는 약을 바라보며 능숙하게 흐르는 양을 조절한다.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거의 안보이지만 입원 병동의 풍경은 확실하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두들 뭔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이런 복도를 본 적이 있나싶게 드물게 긴 복도 끝에 앉아 하릴없이 소설책을 읽고 있는 동안 꽤 많은 사람이 옆에 앉는다. 그리고 훅, 훅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호흡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말을 걸고, 누군가는 그냥 간다.

가만히 책을 보고 있는데(읽고 있기는 어렵다) 덜그럭 덜그럭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다가온다. 그리곤 덜컹하며 앉아있던 긴 의자가 흔들린다. 그리고는 앉아서 몸을 휙휙 돌리며 체조를 한다. 동작이 상당히 과격해 의자가 흔들거린다. 조금 불쾌해진다. 그리곤 예의 그 훅, 훅하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은 그대로 책을 향하고 있었는데 몹시 거친 목소리로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엔 일단 아무도 없고 그러므로 혼잣말이 아니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은근히 혼자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일단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초등학생 가슴에 다는 손수건처럼 생긴 거즈를 목에 붙이고 계신다. 폐와 관련된 병인건 확실하다. 다시 말한다.

이 복도 끝까지 200미터 되겠나?

복도 끝을 쳐다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확실히 길다. 100미터는 넘지 싶다. 기묘하게 길다. 그쯤될거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딱히 퉁명스럽게 말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렸을거 같다. 나는 다만 낯을 좀 가릴 뿐이다. 대답을 듣더니 가만히 계산을 한다. 갔다 오면 400미터, 800미터, 에휴. 너무 빨리 걸으시는거 같아요라고 말해봤지만 대답은 없다.

할아버지는 다시 400미터짜리 운동을 위해 출발한다. 역시 좀 빠르다. 그다지 좋은 계획으론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서 담배를 끊기는 끊어야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휴게소 테레비에서는 총리 청문회 방송을 계속 하고있다. 날은 여전히 맑고, 환절기 낮답게 아직은 살짝 덥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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