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지독하게 조용하다. 멀리서 건물용 에어컨 냉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면 탱~ 탱하는 소리와 함께 아마도 보일러를 돌리는 디젤 기관풍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째서 디젤 기관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가하면 예전에 컴퓨터로 2차 대전 잠수함 게임을 해본적 있기 때문이다. 잠수함이라는건 시야가 제한적이고, 소나 등을 사용해 들리는 소리들에 민감하게 대처해야한다. 2차 대전이 배경이라 잠수함 자체의 기능은 정말 보잘것없고, 레이더가 말해주는 것들도 그닥 유용한게 없다.
밤중에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으며 연합군 화물선을 폭파시키려고 대서양 어딘가 물속에 가만히 매복하고 있는 재미가 나름 있다. 다만 게임에 오래 집중하는 편은 아니라 일주일쯤 하다가 그만 뒀었다.
어쨋든 그 게임을 하면서 잠수함에 시동을 걸면 위에서 말한 디젤 기관으로 추정되는 물체와 거의 똑같은 소리가 났었다. 고작 일주일 경험했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소리만 들으면 계기판과 레이더의 모습이 나오던 그 모니터와 불꺼진 방, 답답했던 헤드폰이 생각난다. 기억이란건 참 이상한 현상이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잠시 졸다가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라는 제목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사람이 쓴 짤막한 산문집을 읽고있다. 솔직히 영문도 모를, 그냥 우연히 집어 넘겨대고 있는 책이다. 머리 깎으러 미장원에 갈때마다 덴츠라는 영문 모를 만화책을 읽는데(18권까지인가를 다 읽고 다시 처음부터 다시보고 그런다) 그것과 비슷한 용도다.
어제 새벽에는 비가 그렇게 오더니 오늘 낮에는 꽤 더웠다. 해가 지면서 날이 급흐려졌고, 예보에 의하면 내일과 모레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릴거라고 한다. 날씨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세기말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 전부터 휴대폰 메모장에다 끄적거리다가 에버노트로 보내버렸다. 에버노트로 갔다는건 내게 완연한 보류 상태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모르겠다 싶으면 발전소로 가고, 의지를 좀 부리면 이글루스로 가고, 이건 안되겠다 쓸데 없는 소리를 너무 했네 싶으면 에버노트로 간다.
세기말에는 떨어지는 운석에 대한 이야기와, 약간 19금과, 이제는 아마도 완전 연이 끊긴 어린 친구에 대한 걱정을 썼었다. 어린 친구 같은 경우 여전히 아쉬움이 있지만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부실하니 뭐. 그래도 아끼는 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타인이 자신의 문제, 특히 정신적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건 관계가 무척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서로 바라는게 없을 수록 훌륭하다. 물론 이런건 거의 불가능이고, 울고 불고 머리가 쑤셔도 서로 치근덕거리는게 더 옳겠지만.
두통이 끊이질 않고, 계속 졸린다. 밥은 하루에 한끼, 혹은 1.5끼 정도 먹는거같다. 패션붑에 매일 포스팅을 한개씩 올리고 싶고, 영국 사람들에게 녹차를 팔고 싶은데 생각만한다. 지금같은 삶이 의미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여기는 계속 조용하다. 에어컨 기계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티셔츠 안쪽에서 땀이 나는게 느껴진다. 조금 불쾌하다. 건너편 건물 복도의 형광등 불빛은 조금 예쁘다. 조그마한 휴대폰을 깔짝 거리느라 손에서도 땀이 난다. 이것 역시 조금 불편하다. 비는 언제쯤부터 내릴까. 우산을 가져왔던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