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31
against G20
이걸 쓴 다음날 한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근대로의 복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30075734&Section=01
손호철 교수가 프레시안에 올리는 컬럼. 옳으신 말씀이지만 무덤덤하거나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라기 보다는,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뭐, 어차피 일개 시민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변명이지만.
이노베이션, 혹은 변동이라는건 시민들의 의식과 공감대가 함께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걸 다시금 느낀다. 사실 이전 2번의 정부가 보여줬던 일종의 반동적 시도(신자유주의적 시도들)에 대한 진보 계열의 비판에도 마찬가지 잣대가 드리워질 수 있다.
이상은 있었지만 전략은 없었다고나 할까. 조중동을 희화화 할 줄은 알았지만 영향력을 감소시키는데는 실패한 과오를 치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게 역사고, 또 느리지만 한칸 한칸 나아가는게 역사다.
유럽에서는 200년이 걸렸다. 40년 만에 해냈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이제 40년 밖에 못했으니 부족한게 많구나, 할일이 아주 많이 남았구나 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근대로의 복귀라기 보다는 이제 근대가 된거다.
어쩃든 민주주의라는건 어떤 면에서는 꽤 피곤한 제도이기 때문에(깨어있지 않으면 당한다) 이제 익혀야 할 것은 정신의 부지런함이 아닐까 싶다.
20090328
컴퓨터 크래시
모 블로그에서 지식in에 대한 비판글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별 관련있는 내용은 아니라 트랙백이나 링크는 생략.
일본 코미디 동호회 때문에 네이버에 가입해 있었는데 작년인가에 결국 탈퇴를 했다. 활동을 한 건 아니고 내 느낌과 세간의 평가와의 갭이 존재하는지가 궁금해서 가입했었다.
예전에는 정말 어지간하면 탈퇴같은걸 안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성격이 (어떤 부분에 있어) 조금씩 더 까칠해 지는지 뭔가 맘에 안들면 굳이 찾아가 탈퇴도 하고, 탈퇴의 변도 남기고는 한다. 뭐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까칠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정이 넘쳐요 덩실덩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거나 뭔가 알고 싶은게 있을때 보통은 구글링을 하던가 하게 되는데(구글링으로 찾아낸 하드웨어 관련 사이트의 글이 문제 해결에는 가장 큰 도움을 준다) 그래도 습관처럼 네이버에서 검색을 누르게 된다.
네이버의 가장 위대한 점 중 하나는 그 자판 배열의 편이성이라고 생각한다. naver이라는 글자는 정말 타이핑하기가 용이하다. 어쨋든 이번에도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습관적으로 네이버에 갔는데 여튼 답은 딱 두가지다. 시스템 복원을 하세요, 아니면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XXX를 설치해서 검사해보세요.
내가 찾은 문제들에는 유독 바이러스 이야기가 많았다. 프로그램 메뉴 부분 글자가 하얗게 나왔다 - 바이러스에요. wininet.dll 오류가 난다 - 바이러스에요. IE가 다운된다 - 바이러스에요. 컴퓨터가 갑자기 꺼진다 - 바이러스에요. 윈도우 라이브 라이터가 구동 안되요 - 바이러스에요.
물론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복사-붙임해서 뭘 물어보든 똑같은 답들이다. 아주 복잡하게, 긴 내용으로 쓰잘데 하나 없는 헛소리를 해 놓은 답변들 천지다. 이거 말고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들이 다 이 모양이다. 이런게 무슨 집단 지성이라고 서로들 좋다고 난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여튼 검색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여기다 일단 써 놓으면(그래도 이 포스팅이 뭔가 도움은 좀 되야지) - 아래 문제는 XP의 경우다.
프로그램 메뉴에 파일, 편집 이런게 하얗게 나오는 문제가 생기면 제어판에서 시스템 등록정보 - 고급 탭의 성능(시각 효과) 부분을 클릭해서 나오는 메뉴를 하나씩 눌러보면 된다. 컴퓨터 마다 상황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컴퓨터가 갑자기 꺼질때는 일단 제어판 - 관리 도구 - 이벤트 로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서 꺼졌는지 확인해보는게 좋다. 크래시의 원인이 뭔가 패턴이 있는거 같으면서도 파악하기 힘든 모양으로 무척 다양하다면 대부분 램 이상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으니까 멀쩡한 램을 구해다 설치해 확인해 봐야 한다.
윈도우 라이브 라이터(WLW)가 갑자기 구동이 안되는 문제는 윈도우 라이브 디렉토리 안에 Dictionaries라는 폴더가 있는데 거기서 확장자가 LEX인 파일을 지워놓고 구동하면 된다. 사전 파일이다. 그게 없으면 맞춤법 검사가 안되는데 혹시 필요하면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
20090327
CPU id
지금 보면 꽤나 올디스한 기계를 25%씩 오버클럭해서 쓰고 있는데 잘 버텨주고 있다. 블로깅, 인터넷, 메일, 음악 듣기 등 사용 용도를 봐서는 전혀 다른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다만 케이스를 바꾸고, 납작한 모니터(아직 CRT다), 그리고 좋은 스피커 정도 붙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마음은 골드문트지만 오디오엔진 정도만 구입해도 괜찮을거 같은데…
어차피 ‘샘틀’ 이라기 보다는 ‘엔터테이너’라는 느낌이다. 몇 년면 더 버텨주라.
20090325
Design under Constraint
Design under Constraint : How Limits Boost Creativity
- Wired.com
2장의 종이를 묶어 만든 16 X 10.875인치의 직사각형은 174제곱 인치만큼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전설적인 잡지 아트 디렉터이자 펜타그람의 파트너인 D.J.Stout는 이 박스를 채우는 기술과, 문자와 이미지의 예술적인 배치를 “직사각형 위의 variation”이라고 부른다. 지금 보는 이 잡지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잡지들의 주제와 내용들은 다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측면에서는 같은 하얀 빈 박스를 계속 다루고 있을 뿐이다.
Wired에서 디자인 팀은 이런 제한을 매일 아침 먹는 빵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편집상의 페이지들을 위해 우리는 단어와 사진을, 종이와 잉크의 부분적인 제한을 극복해 내기 위해 사용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정보 그래피를 실을 수 없다(아직은). 비디오나 목소리를 포함시킬 수도 없다(아직은). 음향 효과나 음악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아직은).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을 이 정적인 매개물에 포함시킬 수 없음에도, 이것의 가능성으로부터 깨달음과 놀라움을 찾아낸다. 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유하는 믿음이다. 사실 디자이너들이 듣는 가장 최악의 말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걸 맘대로 해봐”라는 말이다. 디자이너들은 한계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 제한은 성장과 혁신을 위해 비할 바 없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린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과 햇빛에 의해 크고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하지만 이 성장의 초기에 주의 깊은 가지 치기 - 아래에 매달린 가지들을 제거해 주면 - 를 해주면 나무는 더 크고, 튼튼하고, 빠르게 자라난다. 나무는 성장에서 궁극적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할 부분을 제외시킬 수 있게 되고 귀중한 양분들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같은 원리가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더 작은 자원이 주어질 수록,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 증거로 지난 세기의 문화적, 기술적 최고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만 해도 된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을 90도 직선과 주요 컬러에 한정시킴으로써 모더니즘의 도래를 알릴 수 있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싱글 코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Kind of Blue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 더 최근에 지금 마일즈의 대표 앨범을 듣고 있을 아이폰은 구속 내에서 이상을 향한 추구의 최고의 예다. 최초 화면이 28개의 단어로 제한되어 있는 지루하도록 단순한 구글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제한 내에서 작업하는 아이디어는 특히 더 작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드는 요즘 시대에 실제적으로도 중요하다. 월 스트리트, 디트로이트, 워싱턴 D.C에서의 한계의 부재는 잘못된 자유였음이 밝혀졌다.
이 모든 경제적 침체 안에서 미국의 개척이 평창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당신은 비난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지금이 기회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다음 페이지에서 우리가 선호하는 제한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제한을 강요하는 것이 창조성을 억제하지 않을 수 있다. - 사실 오히려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 바로 위에서 말한 ‘이 다음 페이지’라는 곳에 아주 긴 기사가 실려서 해석은 생략한다. 그 기사에서 Wired는 세가지 Manifesto를 제안한다.
1) Set the Data Free
오늘날 모든 공개 회사와 금융 기관들은 숫자와 통계가 가득 차 있는 끝도 없는 문서들 속에 그들의 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이 대신에 데이터에 쉽게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태그(XBRL) 사용을 의무화시켜야 한다.
2) Empower all Investor
모든 회사의 데이터에 식별 태그가 붙는다면 누구든 실적 비교를 위해 숫자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금융 기관들을, 단지 대차 대조표와 순익 계산서로 보는 것을 넘어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3) Create an army of Citizen Regulator
모두에게 데이터 접근권을 줌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자동적인 조절과 시장 상황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빗장을 풀어 낼 수 있게 될 것이고 일반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여기까지가 해석. 이제 내 이야기.
기본적으로 룰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좋아한다. 멋대로 입고와 이런 것보다는 프레피 룩이 유행이라는데 그 룰을 지키면서 어떻게 튀어볼까 생각하는게 훨씬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보고 혹해서 해석해 봤는데 내용이 약간 다르게 뻗어나간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고 이상적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아주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에 올리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해 무제한 적인 창조성은 온연히 신의 영역이다. 제한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제한을 대하는 태도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위의 기사대로 제한 내에서 머리를 굴려 극복해 내는 방안을 찾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제한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는 방법이다.
전자는 디자이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창조적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예를 들자면 대기업, 금융 회사들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언제나 규제를 없애자고 말한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역사 과정이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합이라는, mentally한 progress의 확신은 별로 없다. 발전을 재는 척도는 너무나 임의적이라 그다지 신용할 만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반-정-반 왔다갔다하는 시계추 정도가 더 신뢰가 간다. 민주성과 경제성 사이에 무슨 합 따위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이 안든다. 발전은 커녕 조화시킬 능력조차 없는게 인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작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더욱 확신에 차고 있다. 인간에게 존경할 만한 구석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은 이성과 발전이 아니라 임기 응변의 능력과 그 가열찬 생존력이라고 믿는다.
다시 경제 이야기를 좀 하면.
당연하지만 규제라는건 보호의 측면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대변하는 WTO나 IMF, World Bank에서도 규제를 없애는걸 제한한다. 나 역시 쓸데 없는 규제는 나라의 힘을 과대화 시키기 때문에 없애는 걸 찬성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규제가 있는 경우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규제가 없어지면 상황이 다르다. 규제를 풀고자 했었던 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규제를 풀고자 하는 자들이 책임을 지면 그들과 별 상관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책임을 지게 하고 뜻하지 않은 불이익을 받은 이들은 나라에서 구제해 주는게 최선의 해결 방안이다.
하지만 한국이 삼성 없으면 나라 망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미국도 별 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와 완전 같은 방향은 아니겠지만 결국 향하고 있는 방향은 비슷하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망하게 두고, 정말 망하는지 두고 보면서(물론 나같은 경우 절대 안망한다고 믿는다, 인간과 사회라는게 뭐 하나 없다고 다 망하고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제 할일 열심히 해 극복해 내는게 옳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니(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1+1=3이라고 생각하면 3이어야 하는게 옳다) 그 단계에서 우리는 또 해결책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저런 규제니 뭐니 하는게 아니라 전향적인 투명성의 확보다. 이건 분명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20090311
20090310
교육감 선거
교육감 선거가 끝나면서 부터 개인적으로 상당히 지치기도 하고, 일말의 패배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포스트를 꽤 많이 올렸었다. 대표적인게 다음의 포스팅이다.
http://macsmics.blogspot.com/2009/01/blog-post_31.html
그러고보니 여기 블로그가 아니라 딴데네. 발전소에 써놓은 건줄 알고 여기에 쓰기 시작한건데. 왜 이렇게 딴데가 많은건지 -_-
* 이에 대해 잠깐 덧붙이자면 블로그가 여기저기 널리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스킨의 문제. 그리고 방문자 수라든가 애드센스의 문제. 이 문제 때문에 나 자신도 골치아파서 좀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는데 그러고 보니 이것도 딴데다.
http://macsmics.blogspot.com/2009/02/blog-post_22.html
왜 이렇게 문어발인거냐 대관절. 그냥 이글루스와 발전소 정도에 몽땅 통합해 버려야겠다. 이거 원 뭐하는건지.
어쨋든 공 교육감이 오늘 법원에서 당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돈 받은거 때문에 벌금형이 150만원이 나왔는데 그 액수면 당선 무효가 된다. 1심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어쨋든 그런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살짝 기쁘다 이건.
20090308
지리멸렬
20090307
블로그 가져오기
예정했던 개편을 대충 마무리했다. 사실 이 곳 블로그 ‘walk alone…’ 말고 ‘하루하루’라는 거의 일기장 비슷하게 활용했었던(과거형) 구글 블로그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 약간 고민이었다. 뭐, 별 내용있는건 아니지만 일기장 블로그라는게 몇 년 지난 다음에 보면 아, 그랬지 하는 재미가 또 있기 때문에 그냥 지워버리기도 그렇고 해서.
구글 블로그는 아주 간단하게 블로그 내보내기, 가져오기를 지원한다. 정말 간단해서 ‘하루하루’ 블로그에서 내보내기를 해 파일로 저장하고 ‘walk alone…’에서 블로그 가져오기를 하면 날짜순으로 게시가 된다. 나같이 중구난방으로 일 벌려놓고 수습하느라 골치 썩는 사용자들에게 이런 건 매우 훌륭하고 요긴한 툴이다. 다른 블로그에서도 표준화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서 스킨도 바꿨다. 이것 역시 ‘하루하루’에 썼던 스킨으로 구글 블로그 기본 스킨 중에 jellyfish인가 하는 것이다. 스킨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 고쳐서 쓴다던가 하는 재주는 없지만 이건 좀 단호하게 보이면서도 더불어 난삽한 패러독스가 맘에 든다. 한글로 썼을 때 유난히 거칠게 보인다. 약간 안타까운건 IE6로 보면 크롬이나 FF같은 다른 브라우저로 봤을 때만큼 거칠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블로그 정리를 한다고 말만 해놓고 생각하고 좀 다르게 간 감이 있는데 티스토리에 있던 블로그를 없애겠다고 마음 잡아놓고 엉뚱하게 더 공을 들이는 결과가 생겼다. 뭐 사는게 다 그렇듯 어떻게든 잘 풀려가겠지.
낙관은 새로운 낙관을 만들고 비관은 새로운 비관을 만든다는 사실을 믿는다. 물론 이에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의 냉정한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비록 낙관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내가 따라가고자 하는 방식은 아니다.
20090306
2005년의 강원도 여행 (묵호)
2005년 10월 경에 돌아다닌 이 여행은 두개가 겹쳐있다. 하나는 낚시나 한번 해 볼까 하고 서천에 다녀온 것. 후배가 전어를 잡아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전어는 부둣가에서 낚시 드리워서 잡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배타고 한참 나가야 한단다.
그냥 가기도 그래서 결국 파도가 산처럼 치는 부두에서 낚시를 드리웠는데 손바닥 길이만한 꽁치랑 손가락 길이만한 좀 입체적으로 생긴 물고기(우럭 새끼라고 한다)는 몇마리 잡았다. 옆에 꽁치 구워가며 소주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관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담도 휴게소에 가면 카페테리아 식의 식당이 있는데 약간 비싸긴 하지만 계란찜이 꽤 맛있다.
다음 날에 또 다른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예정되어 있었다) 근처나 한바퀴 돌고 오자고 해서 마침 단풍철이라 산 구경하다가 오대산까지 갔다. 그리고 주문진, 묵호항을 돌아 설악산 한화 콘도에서 자고 한계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타려고 갔는데 단풍철이라 그런지 꽤 서둘렀는데도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서 포기.
자판기 커피도 500원이나 해서(자판기가 500원이면 뭔가 억울하다) 역시 그만두고 한계령 휴게소에 갔다. 구름이 계속 지나가고 바로 앞차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도 머릿 속에 한계령 하면 그 뿌연 광경이 떠오른다. 멋졌다.
묵호 해수욕장에서 밤에 달이 떠있길래 모래밭 위에 사진기 올려놓고 찍은 한장. 수평선 부분에 밝게 보이는 건 오징어 잡이 배들이다.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묵호항은 다시 가보고 싶다.
2005년의 강원도 여행 (묵호)
2005년 10월 경에 돌아다닌 이 여행은 두개가 겹쳐있다. 하나는 낚시나 한번 해 볼까 하고 서천에 다녀온 것. 후배가 전어를 잡아보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전어는 부둣가에서 낚시 드리워서 잡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배타고 한참 나가야 한단다.
그냥 가기도 그래서 결국 파도가 산처럼 치는 부두에서 낚시를 드리웠는데 손바닥 길이만한 꽁치랑 손가락 길이만한 좀 입체적으로 생긴 물고기(우럭 새끼라고 한다)는 몇마리 잡았다. 옆에 꽁치 구워가며 소주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관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담도 휴게소에 가면 카페테리아 식의 식당이 있는데 약간 비싸긴 하지만 계란찜이 꽤 맛있다.
다음 날에 또 다른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예정되어 있었다) 근처나 한바퀴 돌고 오자고 해서 마침 단풍철이라 산 구경하다가 오대산까지 갔다. 그리고 주문진, 묵호항을 돌아 설악산 한화 콘도에서 자고 한계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타려고 갔는데 단풍철이라 그런지 꽤 서둘렀는데도 엄청나게 사람이 많아서 포기.
자판기 커피도 500원이나 해서(자판기가 500원이면 뭔가 억울하다) 역시 그만두고 한계령 휴게소에 갔다. 구름이 계속 지나가고 바로 앞차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금도 머릿 속에 한계령 하면 그 뿌연 광경이 떠오른다. 멋졌다.
묵호 해수욕장에서 밤에 달이 떠있길래 모래밭 위에 사진기 올려놓고 찍은 한장. 수평선 부분에 밝게 보이는 건 오징어 잡이 배들이다.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묵호항은 다시 가보고 싶다.
게이 프렌들리
아래 글에 관련되어 Amherst 칼리지에서 조사한 게 있다.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 180개의 LGBT 프렌들리 비지니스(바, 클럽, 디스코, 커피숍, 레스토랑, 호텔, 서점, 사우나, 레더 클럽 등)와 단체들(게이 센터, 게이 평등도, 헬스 서비스, 라디오 방송국 등)의 수를 다 더해 인구로 나눈 지표다. 즉 1인당 LGBT 프렌들리 기관수 정도 되겠다.
여기에는 범죄에 대한 혐오도, 경찰, 직장 차별, 소득 격차, 주거 상황 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건 제외하고 일단 손으로 셀 수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한 듯 하다. PDF 파일 전문은 아래 링크를 다운로드 받으면 읽을 수 있다.
https://www.amherst.edu/media/view/95641/original/Corrales%2BGay%2BFriendliness%2BIndex.pdf
이 기준에 의하면 게이 프렌들리 도시 1위는 로마다. 북유럽 국가 중 하나가 1위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이태리였다. 두가지 항목을 인구로 나눈 점수가 61점이 나왔다. 10위까지를 차례대로 보면 암스테르담, 프라하, 안트워프, 취리히, 베를린, 브뤼셀, 몬트리올, 바르셀로나, 코펜하겐이다. 비유럽권 도시로 유일하게 캐나다의 몬트리올이 올라와있다.
뉴욕이 62위로 생각보다 낮았다. 아시아권 도시 중에서는 방콕이 26위로 단연 높다. 한국의 순위는 낮을 것으로 당연히 예상했는데 부산이 111위로 가장 높았다. 위의 점수로 2.237점이다. 대구가 119위, 서울이 131위다. 일본도 고만고만해서 도쿄가 128위, 오사카가 134위, 나고야가 143위다.
게이 인 라틴 아메리카
[Foreign Policy 홈페이지에 2009년 2월에 올라온 이야기다. FP 한글판도 있기 때문에 번역을 올리기가 애매하기는 한데 이야기가 좀 재미있어서 해봤다. 문제가 생길 시에는 삭제할 예정이다. 이 글이 한글판에 실릴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나온다면 나처럼 발로 한 번역 말고 제대로 된 글을 한 번 읽어보는 게 나을 것이다.
closet을 뭐라고 해야할 지 잘 몰라서 그냥 closet 이라고 해놨다. 원래 이 글의 부재는 Is the Closet Half Empty? 이다. 남미의 LGBT는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방향하고는 상당히 다르게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듯]
많은 분석가들이 놓치고 있지만, 메이저한 사회 혁명은 남미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이 Gayer가 되어가고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남미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이걸 누가 알겠냐). 이 지역들은 점점 더 게이-친화적이 되어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남미는 closet의 땅이고 마쵸의 고향이었다. 오늘날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합쳐서 LGBT)의 권리를 위한 무브먼트는 이 지역들의 세계화, 개방형 제도라는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정당한 이유들을 스마트하게 메인 스트림 정치인들과 경제 협회들에게 알리고 있다. closet과 마쵸는 여전히 여기저기에 남아있지만, 남미는 이제 개발 도상국들 중에 가장 게이 친화적인 제도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게이의 권리의 확장은 민주화된 서구 유럽에서 1960년대에, 그리고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민주화되어 있고, 일종의 서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남미는 뒤로 쳐졌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제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1998년 에콰도르는 성적 성향에 따른 차별대우를 금지하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켰다. 1999년 칠레는 동성간의 성행위를 비범죄화했다. 리오 데 자네이로 주 법은 2000년에 공사 기관의 성적 성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시켰다. 2002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커플들의 결혼 등록을 보장했다.
정책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2003년 멕시코는 성적 성향을 포함한 차별 대우 금지 연방 법안을 통과시켰다. 1년 후 브라질 정부는 “Brasil sem homopfobia”(동성애 혐오증 없는 브라질)라는 비정부 기관들의 성에 관한 사회적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6년에 멕시코 시티는 남성과 여성관의 관습법적인 권리와 일치하는 권리를 동성 간에도 보장하는 Societal Cohabitation 법을 인가했다. 우루과이는 2007년 성별 관계없이 같이 5년 이상 함께 산 커플이라면 건강 보조금, 유산, 육아, 연금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8년 니카라과는 동성간의 관계를 범죄시하는 형법 법전을 재정비했다. 심지어 쿠바의 새로운 대통령 Raul Casto조차 자격있는 시민들의 성 전환 수술을 허가했다.
변화는 종이 위에서만 온게 아니다. 남미 도시들의 게이 프렌들리한 성향은 늘어나고 있다. 게이가 소유한, 또는 게이 프렌들리한 시설들(예를 들어 바, 서포트 그룹, 서비스 등)의 1인당 숫자는 증가 중이고 심지어 자유로운 서유럽의 도시들보다 높은 곳들도 있다. 이제 아무도 이 지역이 게이들의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으로, 그리고 도심 지역에서는 수많은 커밍 아웃의 증거들이 등장하고 있다.
무엇이 남미가 깨어나고 있는걸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한 대답은 정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더 이상 독재 국가가 아니다. 독재 상황에서는 대부분 게이들의 권리가 신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지역들이 도시화 되어가고 있고 남미의 도시들이 세계화 되어가고 부유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준다. 게이 라이프는 부유하고 코스모폴리탄한 도시들에서 살아남는다. 아랍이나 앵글로 캐리비안 도시들이 열악한 게이 프렌들리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인 무슬림이나 현저한 프로테스탄트 지역이 아니라는 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급류가 찾아온 더 놀라운 이유는 이 지역 LGBT 운동의 예상하지 못한 큰 영향력에 있다. 이 무브먼트는 일부 국가에서는 197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수도 없는 프리 라이딩 문제때문에 언제나 소규모이고, 작고, 골치거리들이었다. 그래서 강력한 국가 레벨의 리더들에게는 무시당해 왔다. 이런 경우 영향력은 전혀 없다.
대신에 남비의 LGBT 무브먼트는 스마트한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핸디캡을 극복해나갔다. 래디칼하고 필사적으로 변신해 가는 대신 그들은 더 거대하고, 더 영향력있는 사회 무브먼트들과 실용적인 협력 관계를 가졌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에서 헌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들은 더 강력한 페미니스트 무브먼트에 의존했다. 브라질에서는 건강 캠페인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걸 증명하면서 정부 관리들과 협력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에서는 게이 마켓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지역 경제 업체들과 함께 움직였다.
LGBT는 또한 세계화가 만들어 낸 수단들을 영리하게 사용했다. 그들은 게이 투어리즘을 시작했고, 문화적 취향을 변화시키기 위해 미디어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변화를 확장시킬 전술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과 아카데믹 포럼을 활용했다. 남미의 게이 옹호 그룹들은 급진적이지 않고, 반자본주의자도 아니고, 반세계화주의자들도 아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왔다. Given the antiglobalization tack of many progressive social movements, Latin American LGBT advocates are minoritues in more ways than just their sexuality.
물론 완전한 변화를 위해선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게이들의 권리는 도시를 벗어난 거대한 이 지역의 많은 부분들에서 여전히 아직 부족하다. 가장 명백한 이유는 우물쭈물하는 동성애 혐오증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게이-권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브라질에서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동성애는 신의 법칙에 반하는 범죄다”라는 말에 58%가 동의했고, “동성애는 치료받아야 할 병이다”라는 문장에는 41%가 동의했다. 이는 성장하고 있는 게이 권리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와 거의 같은 이유가 게이 권리의 성장을 만들어냈다. 더 높은 가시성과 영리한 로비 전술은 동성애 혐오 의견을 선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뛰어난 정치적 전술들에도 불구하고, LGBT 무브먼트는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좌파 정당들의 뚜렷한 지원을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정당의 도움이 거의 없는 건 LGBT 무브먼트가 받아들인 후기 유물론적 가치와 세계화에 대한 사회주의 좌파의 전통적인 경멸에서 유래할 것이다. 이건 아마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또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타고난 보수주의로부터 내려오는 정치에 대한 마초적 접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같은 유일한 예외를 제외하고 좌파 대통령들은 게이 그룹들이 원하는 것보다 소심한 게이 제도들을 서포트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작년에 좌파 대통령인 라페엘 코레는 다른 수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조항들에 섞어놓았음에도 개인적으로 동성간의 결혼을 새로운 헌법에 법제화하는걸 막으려고 했다. LGBT 사람들이 정당 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게 사실이라고 해도, 남미에서 그들이 언제나 언제나 원하는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미에서 LGBT 무브먼트가 분명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 게이 라이트와 편안한 지역들은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물결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법규와 이웃의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출발이지만 동성애 혐오라는 반대 방향의 물결과 통치하는 정당과의 연합이라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The closet may be opening, but the jury is still out.
20090303
2002년의 정선
2002년에 정선에 처음 갔다. 요즘 꽃보다 남자에서 구혜선의 아빠 역을 맡고 있는 안석환 씨가 정선에 다녀온 다큐멘터리를 당시에 KBS에서 방영한 적 있는데, 그 화면에 나오는 산과 강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뺏겨 정선행을 결심했다.
7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증산에서 출발하는 정선선은 지금은 정선역과 구절리 역 밖에 서질 않는데 당시에는 역이 6개인가 있었다. 함께 갔던 후배와 내렸던 역도 나전역이었다. 요즘은 꽤 인기 좋은 레일 바이크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기차를 타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여행이었지만 강원도 쪽이 그렇듯(강원도 뿐만 아니라 대도시가 아닌 곳들은 거의 다 그렇다) 대중 교통 시스템이 로컬 주민들이 아니면 이용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한시간에 한 대, 하루에 네 대 뭐 그렇다) 그저 젊은거 하나 믿고 죽자고 걸어다녔던 기억 밖에 없다.
2008년에 차를 이용해 다시 정선을 찾은 적 있는데 2004년인가 있었던 수해에 길이 바뀐 곳도 있고, 당시 찍었던 사진하고도 다른 모습들이 꽤 있었는데도 지나갔던 곳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역시 걸어다녔던 곳과, 차로 지나다녔던 곳은 다른가 보다.
2002년의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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