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보면, 견고해 보이던 세계 경제의 두 축 미국과 EU가 무너져가는 와중인데 이게 진정되고 다시 체력이 회복될 때에 과연 누가 세계 경제의 주도축이 될 것인가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다. 이는 미국의 군대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또 군대가 달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상보 관계를 이뤄가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이게 내포하는 문제는 미국의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때 세계 경제에 파급 효과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유럽이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유로화를 만들게 된 것도 포스트 달러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 현재로서 미국의 경제 규모에 육박하는 섹터는 일단은 유럽 연합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기축 통화를 보유함으로서 얻게 되는 미국의 추가 이익, 그리고 미국이 흔들릴 때 필연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같이 흔들리게 된다는 점에서 슬슬 짜증을 낼 법도 하다.
만약에 이게 20년 후 쯤 벌어졌다면 중국도 끼어들어서 더욱 복잡해졌을텐데, 60여년 만에 찾아온 기축 통화를 둔 싸움에서는 일단 중국이 주도할 만한 형편은 못된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다음에 찾아올 기축 통화 전쟁에서는 아마 중국이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큰 일이 있지 않는 한 이건 내 인생 안에는 오지 않을 듯 싶다.
그 다음 문제가 되는건 우리 나라의 포지셔닝이다. 이번에 300억불 통화 스왑은 일단 가장 문제가 되고 있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시그널링이 포함되어 있다.
첫번째는 지금까지 정부에서 외화 보유고 운운하며 부정해왔던 것과 다르게 유동성에 실질적인 문제가 있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 말대로 외환 보유고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스왑은 필요가 없고 한은이 비행기로 날라다니며 은밀히 이 건을 추진할 이유도 없다. FRB 스왑말고 IMF 스왑도 껴있다는데 (뷰스앤뷰스에만 나와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정부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므로 (정부는 투자자들이 쓸데없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스왑을 추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쨋든 믿을 만한 버팀목이 필요한 상황인 건 틀림없다. 참고로 CDS는 통화 스왑 발표보다 먼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쪽에 소문이 먼저 났나보다.
두번째는 지금 이 와중에 우리가 미국 경제와의 밀착도를 보다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IMF의 지원을 받는 몇몇 나라들과, 이번에 통화 스왑이 결정된 몇몇 나라들이 이로써 달러 기축이라는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이건 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미국이 오늘 발표한 바에 의하면 3분기 성장률은 0.3% 감소했고, 소비 지출 3.1% 감소했다. 아직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미국에는 카드 연체, 자동차 할부 연체, 실물 경제 등등 문제들이 잔뜩 남아있다. 더구나 ABS 상품은 이런 카드나 자동차에도 만들어져 있다. 주택보다 덩치는 작지만 실업률의 향방에 이 모든 것의 움직임이 달려있다. 이런 미국 경제의 향방에 우리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우리의 주된 교역국은 2003년 이후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런데 그런 중국이 얼마전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지금 달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난 가만히 앉아 두고 볼 생각이다라고 선언한거다.
이렇게 되면 안달이 나는 쪽은 유로권과 달러권이다. 위안이 기축 통화가 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의 달러 보유국이자(러시아는 5위다), 아무도 무시 못할 경제 대국으로 커가고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자민당이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 - 캐스팅 보트 - 을 맡을 생각인가 보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나서서 나는 미국 편이에요 라고 주장해봐야 득될게 별로 없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조용히 있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포커판에서 내가 뭐가 들었는지 알려주면서 혼자 든든하게 생각해 봐야 별볼일 없다. 그럴 바에야 은밀히 캐스팅 보트 쪽에 붙는게 나을거 같은데 지금 정부는 미국 달러 기축이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 싶다.
선물 거래는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는 주식 시장의 교훈은 외교에도 통한다. 어쨋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두고 봐야지. 망할 거라는 확신이 들면 풋사서 들고 있으면 되는거고. 9.11때 1000원짜리 풋이 50만원이었다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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