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8

짧은 여행의 기록

아직 어떤 식으로 여행 기록을 남길지 잘 모르겠다. 제대로 남겨놓은 사진은 2002년 9월 정선 여행부터 남아있고, 제대로 기록해 놓은 여행 일지는 역시 정선에 다녀온 2008년 10월 여행부터 남아있다. 정선 여행은 항상 뭔가의 전기가 되어주는 기분이다.

지금 생각은 사진은 가능한 배제하고 주르륵 주르륵 글만 남기는 블로그를 만드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행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쓸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마음이 서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애드센스는 붙여놓는다.

여하튼 좋은 내용으로 잘 가꿔나가고 싶다.

짧은 여행의 기록

아직 어떤 식으로 여행 기록을 남길지 잘 모르겠다. 제대로 남겨놓은 사진은 2002년 9월 정선 여행부터 남아있고, 제대로 기록해 놓은 여행 일지는 역시 정선에 다녀온 2008년 10월 여행부터 남아있다. 정선 여행은 항상 뭔가의 전기가 되어주는 기분이다.

지금 생각은 사진은 가능한 배제하고 주르륵 주르륵 글만 남기는 블로그를 만드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행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쓸 만한 재주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마음이 서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애드센스는 붙여놓는다.

여하튼 좋은 내용으로 잘 가꿔나가고 싶다.

20090227

아프다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계획했던 일들이 뒤로 밀리고 있다. 어제는 자장면을 먹으러 갔는데 그 잘먹던 음식을 단 한 젓가락 먹고 내려놨다. 원래 이런 냄새가 났었던가 싶다. 

몸이 아프다. 배가 좀 아프고, 두통이 심하고, 숨이 차고, 눈이 침침하다. 그리고 너무 너무 춥다. 19만원이나 나온 가스 가격에 아랑곳 하지 않고 보일러를 펑펑 틀어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딱 달라 붙어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땀이 나는데도 춥다.

정신도 멀쩡하지 않다. 이제 만성이 된, 수도 없는 실패의 경험들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사실은 내가 제발로 가고 있는) 있다. 갈 곳을 잘 모르겠고 요행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부상조하며 가속도가 붙는다. 헛헛헛 웃으며, 어디선가는 손을 털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쥘 것은 쥐고 가자. 

20090222

블로그 개편

괜시리 방만하게, 더불어 문어발로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들을 대충 정리를 좀 하기로 했다. 한국 대기업도 아닌 주제에 문어발은 무슨. 어쨋든 문어발은 대체적으로 불황을 아비트리지 해주기는 하지만 효율성이나 효과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간단하게 말해서 블로그의 소비자가 한쪽으로 크게 몰리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총합은 유지되더라 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복잡하니까 관두자.

대충 봐서

이글루스 -> 패션, 기계, 일상 (73스토리지를 없애자)
walk -> 이게 좀 애매한데 우중충한 일상 (하루하루, 티스토리를 없애자)
발전소 -> 약간 발전적인 것들(번역 등),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들(정치/경제)

이게 핵심인데 아키텍트는 없애고 그걸 여행 블로그로 바꿀 생각이다. 이만큼 돌아다니면서 뭐 하나 남겨놓은게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그리고 뭔가 약간은 전문적인 블로그를 하나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없앨 생각이다. 이글루가 사람이 제일 많이 오기는 하지만, 아는 사람도 많이 오고 그래서 너무 퍼스널한 이야기는 잘 못 올리겠다. 

어쨋든 소소한 + 개인적인 이라는 관점에서 walk, 이곳이 말하자면 지주 블로그 같은 곳이다. 방만한 인생도, 방만한 블로그, 방만한 방도 다 정리하고 2009년 2월 말을 기점으로 약간은 새 사람이 되야지. 밝은 생각이 밝은 결과를 만든다. 핫핫핫.

SAAB의 파산 보호 신청

Saab가 스웨덴 정부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GM의 계열사인 사브는 GM이 미국 정부에 160억 달러의 추가 지원 자금을 요청하면서 사브의 청산을 시사했고, 이에 사브는 자구책으로 스웨덴 정부에 긴급 자금 지원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사브의 스웨덴에서의 고용인원은 2만 5천에서 3만 명 정도라고 한다. 얼마 살진 않았지만 그동안 살면서 사브의 흥망성쇠를 거의 다 본거 같다. 스웨덴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 팔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 했는데, 이제 청산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별 일이 다 있는게 세상이다 정말.

20090217

부랑자냄새

여기는 천지인 키패드로 열악하게 타이핑하는 곳이 되버려서 일단 가능한 한 문장부호는 생략. 점점 문자 메세지풍이 되가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가 나름 꾸준히 뭔가 올리는 블로그가 세곳이나 되버렸다 이글루는 패션과 일상의 잡념들을 올리는 말하자면 주력이다. 발전소는 뭔가 발전적인 조언을 옮기거나 정치/경제, 그리고 이곳 워크는 소 콜드 가장 찌질한 곳이 되가고 있다. 어쨋든 셋다 초 마이너지만 이글루는 나름 분투하고 있어 야후 블로그 랭킹 천등안에도 들었다. 히~

저번에 후배놈이랑 여행갈때 츄리닝을 안가져가서 그놈 집에 하나 있는걸 빌렸었다. 롯데 신입 연수할때 받은거라는데 이게 생긴건 좀 그래도 꽤 따뜻하다. 어쨋든 그걸 돌려줄 타이밍을 못잡고 종종 쓰고 있다. 그간 몇 번을 끙끙 앓았는데 그때마다 그 츄리닝을 입고 보일러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잤다. 그러고 한번도 안빨았다. -_- 어제 어쩌다 그 츄리닝을 입고 밖에 나와 지하철을 탔는데 어디선가 서울역 지하에서 나는 바로 그 냄새가 난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나한테 나는 냄새 ㅠㅠ

어느새 이렇게 한칸 앞까지 와있는거 아닌가 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솔솔 피어오른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ㅠㅠ 발렌타인 초콜렛도 받았는데. ㅠㅠ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버리는 거냐. 이렇듯 어느날 갑자기 훅 쳐지진 않을까 싶은 포비아가 있다. 모두들 모른척 하겠지. ㅠㅠ 나는 열라 아는 척 해야지.

이거 말고 다른 포비이도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거 휴대폰 메일로 보내서 올리기 하니까 엉망 진창이구나. 역시 휴대폰으로는 미투데이 정도인건가. 나도 쿼티 자판 와이파이 기기 가지고 싶다. ㅠㅠ

20090215

나오미 클라인의 유토피아

벌써 8개월이나 전에 http://macrostar.egloos.com/4417640 이런 이야기를 쓴 적 있다. 글쎄 지금 상황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포지셔닝을 하고 있지만 어쨋든 마음을 뒤흔드는 '상황'은 존재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촤르르르 돌아가는 필름 소리에  마음을 뺏긴다.

나오미 클라인은 나와는 무천도사와 베지타 만큼 정도 전투력 차이가 나는 사람이지만 어쨋든 그에 대한 글을 읽다가(이 전 포스팅에서 조만간 번역을 올린다고 했지만 아직도 한참 남은 바로 그 아티클 - 뉴요커 지의 2008년 12월 8일 업로드 기사 Outside Agitator) 만난 흥미진진한 구절 한토막. 

이 글을 읽어보면 역시 세상의 레프티스트들은 비슷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짠한 감정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비록 각종 무브먼트 전선의 최전방에 있지만, 특히 비유로권 문제에 대해서 역시 제3자적 처지일 뿐이라는 사실 역시 느낄 수 있다. 어쨋든 그는 콜롬비아에 새 정권을 만들고자 하는 반군은, 전두환에 맞서 싸운 투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동남아시아 농민 자신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저런 경험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하겠지. 

개인적으로 '그녀'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로 통일. 이건 좀 더 생각해 보고 나서.



"저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게 훨씬 더 편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오미 클라인)가 유토피아가 이런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문득 했던 유일한 순간은 2002년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그와 루이스(남편)이 영화 "The Take"를 찍기 위해 가 있던 그때 아르헨티나의 정치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그 순간 진공 상태가 완전히 열려버린 아르헨티나에 기적적인 시간이 찾아왔었어요. 사람들은 2주일 동안 네명의 대통령을 쫓아 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이 없었어요. 모든 기관들이 위기에 빠져있었죠. 정치인들은 집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아주머니들이 빗자루를 들고 그들을 때렸어요. 

그리고, 밤 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 나서면 거의 모든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외 부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100명에서 500명 정도 사람들이 한 그룹을 이루고 있었죠. 약간이라도 더 싼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함께 식료품을 구입했고, 화폐가 거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것들 중 가장 고무되는 모습이었어요"

20090213

쉬어가는 타이밍

번역을 몇개 올렸더니 구글 어낼리틱스에 나오는 방문수 통계가 마이너스 24.18%'다. ㅠㅠ

나오미(노 로고를 쓴)와 루이스(남편, 액티비스트) 가족 이야기가 꽤 재밌어서 그거하고 뉴요커에 실린 존 업다이크에 대한 간단한 추모글이 있어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게 꽤 어렵다.

참고로 레이먼드 커버의 소설과 존 업다이크 소설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뉘앙스를 잠시 비교해 보자면 (퓨어한 개인적인 관점) :

커버는 단어 뜻이 다양한, 그러니까 사전 찾아보면 1, 2, 3 나와있는 단어들을 - 예를 들어 slip, stroke, gall, clam, holler, etc - 무척 많이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아주 쉽고 간단한 단어들을 사용해 소설을 쓰기 때문에 읽기가 쉬운 편인데 뭔가 다른 뉘앙스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읽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뭔가 있는거 같기는 한데 캐치하기가 쉽지는 않다.

업다이크는 굉장히 낯선 단어인데 찾아보면 쉬운 대체 단어가 있는 것들을 많이 쓴다. 아주 명확하게 자신의 의도에 맞는 한가지 단어를 찾다가 그리 된게 아닐까 싶다. 뉴요커지의 추모 기사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5일, 하루에 딱 세 페이지씩 꾸준하게 썼다고 한다. 

나인 투 파이브 워커 풍의 작업인데 세 페이지를 8시간 동안 일해서 썼다고 하면 단순화 시켜서 생각했을 때 한 페이지에 2시간 40분 가량이다. 프로페셔널한 작가로서 충분히 이것 저것 고려할 수 있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좀 다른 이야기.

1. 금 가격이 꽤 오르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300불대였던 금 가격은 2005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2008년 1000불까지 찍었다가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 2008년 11월에 700불까지 떨어졌었다. 지금 2009년 2월 현재 940불 가량이다.

금이라는건 사실 실질 수요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거의 고정되어 있고, 요즘처럼 각종 기계 장비 등의 수요가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는 같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수요가 투기 자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뜻이고 증권 등으로 떨어진 수익을 보충할 목적이 다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좀 더 올라가면 그러한 수요자들은 시세 차익을 보고 나가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각종 투자 회사들이 금 구입을 부추키는 것도 영 수상하다. 어쨋든 이건 개인적인 예상이므로 과연 맞는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일.

2. 이건 정말 그냥 해보는 것.

라니냐 현상으로 우리나라도 가뭄이 상당히 극심한데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이번 겨울 내내 여기저기에서 이상 기온 - 가뭄이라든가 홍수라든가 등등 - 발생하고 있다. 기상 이변이 생기면 무슨 일이 생겼던가 곰곰히 되돌아보면.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엘리뇨 현상은 1991-1992, 1993, 1994, 1997-1998, 2002-2003, 2004-2005 and 2006-2007에 나타났다. 이중에서 꽤 강력해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은 1997-1998 정도다.

라니냐 현상이 발생한 해는 1988-1989, 1995, 1999-2000, 2007중반, 2008년 말이다. 이중 강력했던 것은 1988-1989다.

옥수수






아무래도 농산물 가격이 제일 관련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뭔가 관련이 있기는 한건가... 귀찮다. 나중에 찬찬히 봐야지. 딱봐서는 별로 없는거 같은데. 1996년도 그렇지만 2008년은 확실히 난리였군.

20090211

관계의 지속

꽤 친했던 형하고 한 3년 전쯤 연락이 끊겼는데 문득 전화가 왔다. 뭐 별일 있어서 다시는 안본다 이런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안보게 된 이후 꽤나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한 일주일 전쯤 봤던거랑 비슷하게 떠들다 왔다. 사실 벌써 한 3주 쯤 전 일이다.

학교 다닐때야 매일 같이 봤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한 3, 4개월에 한 번씩은 보고 시덥잖은 이야기도 하고는 했는데 나름 양측의 심각한 꼴도 좀 보고 여행도 가고 했는데, 그러니까 3년 전에 전화를 한 번 해보고, 안 받길래 일주일 있다가 해보고 그 이후로 연락을 안했다. 이 험난한 세상, 새로 맘 통하는 편한 사람 한 명 만나기도 사실 어려우므로, 영 나쁜 놈 아니면 사실 나도 노력도 좀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런 면에서는 매우 소심하다. 전화 두 번, 혹은 세 번 까지가 맥시멈인거 같다. 그게 넘어가면 그때까지 연락이 없다면 무슨 생각이 있는거 같은데 좀 폐끼치는 기분이 든다. 적어도 나는 안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건데 바쁘면 또 그렇지 못하는거 아는데도 잘 안된다 그게.

어쨋든 혹시 얇은 관계의 실이나마 이제 끊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치근덕대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 엠씨 몽 말대로 보고 싶겠지, 그리울 때도 있겠지, 그래도 못살지는 않을테니까.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자주 생각나기는 한데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다. 물론 이렇게 내 맘대로 하다가 나중에 서운했다는 소리 듣기도 하고, 아마 그러지 않았어야 할 사람과 다시는 연락을 못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뉘앙스의 묘한 차이를 아직 잘 모르겠다. 인식론을 열심히 공부했음에도(이거랑 별로 관계없기는 하지만) 사람 마음 인식에는 영 잼병이다. 또 뉘앙스와 톤에 매우 민감한 내 테이스트의 영향도 있다.

어쨋든 이런 식으로 연락 안하는 사람이 꽤 되는거 같다. 그러다 이렇게 문득 전화오면 또 반갑고 그렇다. 세상 만사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습관도 버리고, 관계에서도 좀 용감해져야 한다는게 맞는 듯 싶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인데 이게 그렇게 맘대로 안되니까 문제지. 용기가 필요해 ㅠㅠ

20090210

관계

이 나이 먹어서 툭하면 우중충해지는게 무척이나 싫다. 예전에 무슨 책에선가 나이 먹으면 그만큼 무던해져서 살기가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보고 아, 정말 그렇게 되려나 했는데 개뿔.

20090204

힌트 매거진 인터뷰 : Hussein Chalayan

[케인즈 이야기가 하나 남아있는데 지겨워 하던 중 뭐 재미있는거 없나 번역해봤음. Haidee Findlay-Levin이 인터뷰했다.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그렇듯이 딱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전문 용어나 트렌드한 단어가 많아 내 실력으로 완벽하게 번역하긴 어려운데 그래도 나름 좋아하는 사람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 완전 의역이기 때문에 후세인의 말투가 궁금하시다면 맨 아래 있는 링크를 클릭]


지적인 엄격함은 소수의 디자이너들만이 지니고 있다. 터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받은 후세인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두번이나 브리티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받고, 최근 퓨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명된 후세인은 그의 미래적인 레이저 드레스처럼 패션계의 선두에서 경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 22~5.17, 2009년), 아마도 그의 작업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영국에서의 첫번째 전시에서 그가 "복고적인"이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했다는 거에는 약간 의문이 있다. 지난 15년간을 돌아보며 전시회는 살라얀의 대표적인 주제들 - 문화적 아이덴터티, 포터블한 건축물, 메카닉, aviation과 migration, 그가 감독한 단편 영화들과 아트 프로젝트 등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모두 wearability와 테크놀로지라는 단일한 미래를 향하고 있다. 전시회가 시작된 날 오후, 나는 나의 오랜 친구를 한때 그가 잘 가던 곳인 Covent 가든에서 만나 후세인 살라얀을 만들어낸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by Haidee Findlay-Levin

하이디 : 얼마전에 뉴욕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당신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죠.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그곳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진 않을지 물어봤었는데요.

후세인 : 맞아요. 좀 줄여볼까 해서 제 이름의 한 부분에 대해 생각을 했었죠.

하이디 :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당신과 같은 이름을 쓰고 있죠. 어떤 느낌이죠?

후세인 : 그게 어떤 의미이든 그저 이슬람의 이름이죠. 저는 이름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 이름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몇몇 매장들이 있었죠. 그것 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이름을 바꿔야 되나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에 이름의 길이와도 관계가 좀 있어요. 그냥 터키식 이름인 Chalayan으로 부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으로는 읽을게 줄어드니까 그게 더 나을 거 같기는 합니다.

하이디 : 정치적으로, 우리는 지금 전환점을 보고 있는데...

후세인 : 사담 후세인이 사형을 당하고, 또 그 다음에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는걸 보는 건 좀 아이러닉 합니다. 이건 미국의 위대한 점이에요.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죠. 미국은 이런 리버럴한 제도에요, 만약 잘 사용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모던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바마의 경우에 저는 그가 새롭게 시작할 진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저같은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점이 있는지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 옷을 사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안보기를 바랄 뿐이죠. 그렇지만 캘빈 클라인의 이름이 랍비 아인슈타인 같은 거였다면, 그가 옷을 파는데 있어 지금하고는 상황이 상당히 달랐을거라고 확신합니다.

(레이저 드레스, 08 SS)

하이디 : 당신의 이번 전시회나, 평상시 작업들을 보면서 제게 떠오르는 가장 주된 주제는 아이덴터티와 이주, 그리고 displacement 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후세인 : 저는 그런 혼합된 지역에서 왔습니다. 정말 수프같은 곳이에요. 제 유전적 풀은 수많은 다른 문화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국가라는건 언제나 단일 문화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짜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건지 찾아내는데 언제나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터키의 키프로스 또는 그리스의 키프로스에 대해 알죠. 하지만 사실 그 섬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정복 당했었습니다. 그게 이 질문을 만들어냈죠.

하이디 : 그리고 영국으로 왔죠.

후세인 : 맞아요. 키프로스라는 멀티-에스닉한 장소에서 영국이라는 또다른 멀티-문화로 옮겨왔죠. 여기에는 최근 이주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키프로스에서 이주는 아주 긴 시간 속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오스만 투르크 왕조의 진짜 후손입니다. 아주 하이브리드한 왕국이었죠. 술탄은 러시아, 이태리, 폴란드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렘에는 터키인이 아닌 여자들만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이미 하이브리드 문화가 존재했죠. 영국도 수백년간 마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이디 : 그런 것들이 당신 작업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저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패션쇼를 보는 것은 매우 감정적인 경험인데요.

후세인 : 맞아요. 저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하이디 : 하지만 그것들은 매우 테크니컬하고 테크놀로지컬합니다. 감정과 테크놀로지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키죠? 처음에요.

후세인 : 저는 감정적이면서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정말 이 둘 사이에 있어요. 감정적인 생각으로 컬렉션을 시작하고 바로 제 이성이 이걸 가능하게 만듭니다. 저에겐 스토리텔링이나 시적인 부분이 있고 이런 아이디어들을 기능적인 부분들이 제 팀과 함께 물리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건 제 어머니의 가족으로부터 왔어요. 사물을 바라보고, 읽어내죠. 이건 Coffee-Cup 리딩(커피 자국을 보고 점치는 터키식 사주) 같은 거에요. 어떤 것을 바라보고, 여기에 다른 해석을 부여하는건 제가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해보는 것은 영국 교육을 통해 배웠죠.

하이디 : 아주 어렸을 때 런던에 왔죠. 거의 런던에서 교육받았나요?

후세인 : 오락가락했어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저는 사실 런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5살 부터 12살, 그리고 또 16살부터 18살까지를 키프로스와 터키에서 교육받았죠. 단지 9년간 살았을 뿐이지만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이디 : 키프로스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후세인 : 키프로스는 아주 작은 섬이에요. 바다가 있고, 날씨도 좋고, 음식도 맛있죠. 거기에 디자인 문화는 없습니다. 그곳은 제게 관능과 역사적인 호기심을 주었지만, 런던에 와서야 패션 디자인에 대한 추구가 생겨났습니다.

하이디 : 만약 당신이 다른 곳에 살았더라도 지금같은 독특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후세인 : 아니죠. 런던에는 독특한 앵글로 색슨이 있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진보적이면서도 관용적입니다. 뉴욕이 그나마 좀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 유럽의 다른 장소와 비교할 때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이주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 관용이 존재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날씨에요. 날씨가 안좋으면 당신은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뭔가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됩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밖에 나가면 재밌는게 많아요. 이건 진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주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디 : 따뜻한 해안가 같은 환경에서도 여러 beach 문화 같은게 있습니다만...

후세인 : 멋지게 보이는 것과 섹스하고자 하는 거죠. 물론 여기에도 엄청나게 섹스가 있습니다. Sex Galore! 하지만 런던을 독특하게 만드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왔다는 점입니다. 개방성은 과거 행동들의 결과물이죠. 제국주의의 악행들이 그런 나라로부터의 이주를 감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퍼니쳐 드레스, 00 FW)

하이디 :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죠. 뒷마당에 드레스를 묻고 나중에 그걸 파냈는데요.

후세인 : 사람들은 땅이라든가, 시골과 관련된 것이 있으면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땅에 묻은 드레스가 LED 드레스만큼 진보적이고 현대적이라는걸 발견했어요.

하이디 : 동의합니다. 그것은 급진적이기도 했고, 시간과 무관하게 남죠.

후세인 : 바로 그거에요. 당신은 저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땅에 묻은 드레스처럼 제 올리브 밭도 테크놀로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때때로 테크놀로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만,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하이디 : 세인트 마틴에서의 생활에 대해 알려주시죠.

후세인 : 세인트 마틴은 잘 조화된 대학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물화 포트폴리오로 입학했고, 또 어떤 사람은 완전히 패션 빅팀이라서, 또는 건축적 배경이 있어서 입학이 허가됩니다. 그런 컬러풀한 곳이에요. 영화 Fame처럼 말이죠.

하이디 : 그런게 런던이 다양한 인적 자원이 있다고 알려진 이유일까요?

후세인 : 사실 더 큰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아마 금융 시장에는 돈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패션 쪽에는 없어요. 돈이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좀 더 창조적이고 열정에 가득 차게 만들어냅니다.

하이디 : 그래요, 열정에 가득 차있죠. 당신은 항상 테크놀로지, 예술, 건축, 영화 그리고 인류학 등에 대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뭘 해도 잘 할 것 같은데 왜 패션을 선택했죠?

후세인 : 저는 어디서도 성공 못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있어서 관심의 초점은 저는 패션을 선택했고, 패션에 대한 제 방식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게 언제나 저의 목표에요. 저는 옷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냅니다. 만약 영화를 찍는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겁니다. 여기에 세계들의 통합 같은건 없어요.

하이디 : 하지만 왜 옷이죠?

후세인 : 저는 부모님이 헤어진 이후 여자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강인하지만, 또한 상처받기 쉬운 분들이죠. 저는 그래서 언제나 여성들에게 힘을 부여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한 몸에 매혹당했어요. 인간으로서 만들어내는게 무엇이든, 예를 들자면 건물이나 자전거, 시스템들 말이죠, 그것은 몸의 확장입니다. 저는 언제나 몸을 찬양하고 싶고 제가 하는 모든 일들에 그것을 집어넣고 싶습니다. 제 부모님은 저를 건축가로 키울려고 했었죠,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몸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패션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99 FW)

하이디 : 하지만 건축도 상당히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데요.

후세인 : 제 생각엔 패션이 몸과 훨씬 더 가깝습니다. form 뿐만 아니라 movement에서도요.

하이디 : 이번 전시회를 보면, 마네킹들이 뭔가 이것저것 하고 있는거 같은데 뭘 하고 있는거죠? 그리고 이 마네킹은 특정한 사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건가요?

후세인 : 뉴욕의 Sarah Ziff라는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모델일을 하지는 않아요. 저는 언제나 그녀가 고져스하고 매우 애정이 넘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네킹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마네킹들은 올리브 밭에 물을 주거나, 벽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유리를 닦거나, 벽에 뭔가 쓰거나 하고 있어요. 이건 공간을 정화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쇼에 사용된 반은 4년 전에 네덜란드에 있는 Groninger 박물관에서 있었던 쇼에 사용했던 겁니다. 반은 새로 제작했고요. 마네킹이 어디에 있던지, 그 새로운 장소와 독특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새로운 작업을 담은 새로운 버전의 마네킹들도 있습니다. 윈드 드레스나 (아래 사진) 낙하산 드레스 그리고 레이저나 LED 드레스 같은 것들이죠.

하이디 : 여러 디자인 상을 받았고, 5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Tilda Swinton과의 공동작업으로 터키를 대표해서 나가기도 했고, 영국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Memb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MBE)를 받기도 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후세인 : 저는 여왕에 의해 뭔가 시작될 필요는 없어요. 그런건 엄마나 할머니가 시켜서 하는거 같은 거죠. 그런 기반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의미가 없는 종류이긴 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렇지 않겠죠.

하이디 : 당신은 그 영예 위에서 쉬겠다고 멈추진 않겠죠. 당신이 적어도 상당히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나요?

후세인 : 작업은 끝나지 않아요. 저는 놀라운 일들이 있다는걸 느낍니다. 하지만 제 작업들은 더 발전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같은 것들이죠. 저는 LED 패브릭을 좀 더 발전된, 하지만 프로토타입은 아닌 것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쉐이프를 바꿀 수 있어서 패브릭 자체에 변화가 내재된 것 같은 드레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의 진보는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02 FW)

하이디 : 퓨마와의 작업 진행은 어떻죠? 당신 자신만의 세계를 얼마나 집어넣을 생각입니까?

후세인 :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집어넣을 것입니다. 또한 제 세계와 별로 관계없는 견해들도 집어넣어야겠죠. 저는 퓨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저는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퓨마는 신발 회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옷이 아니라 신발을 통해서 아이덴터티를 만들어내죠. 저는 옷을 가지고도 그들의 아이덴터티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스포츠웨어-라이프스타일 회사들은 패션 레이블보다 테크놀로지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합니다. 매우 흥분되는 일이죠. 제 자신의 라인들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은, 예를 들어 지방시 같은 회사와는 파트너십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하이디 : 당신은 매우 많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실현되었지만 일부는 예산 제한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퓨마와 작업하게 된게 당신의 좀더 큰 야망을 실현시키는데 도움이 될까요?

후세인 : 퓨마와의 파트너십은 우리에게 일어날 최선의 일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제 브랜드를 확장시킬 기회를 주고,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만들고, 매장을 열도록 해 줄 것입니다. not in a big way, but in some capacity.

하이디 : 당신의 비전에 대한 쇼케이스가 있어야 할텐데....

후세인 : 여성들이 옷을 입어보고, 그것을 그들의 삶과 함께 통합시킬 수 있는 그런 랩을 창조할 매장이 필요합니다. 캣워크나 박물관에서 단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요. 우리는 매우 훌륭한 매장에서 국제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배타적입니다. 랩 같은 것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실험적인 작업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데에는 문제될게 아무 것도 없어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꼭 상업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commercial이라는 단어는 잘못 사용되고 있어요. 당신 옷이 웨어러블하다면, 그게 상업적인 겁니다. 꼼데가르송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해 놓은 일을 보세요. 그들은 패션 주류의 논의와 무관하게 그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들을 보면서 급작스러운 유행과 무관하게 당신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런 걸 만들어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박물관에서의 쇼는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제 자신의 전체를 보여줄 수 있죠. 어떤 방에는 하나의 옷이 있고, 다른 방에는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있죠.

하이디 : 많은 당신의 아이디어들이 상당히 중요한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그런건 많이 알려져있지 않죠. 당신은 그 영향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텐데요.

후세인 : 저희들의 잘 알려져 있는 작업들 말고, 덜 알려진 작업들을 참조한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알려지지 않죠. 만약에 디자인이 카피된다면 그것은 아첨같은 겁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이 카피된다면 그건 무서운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 머리 속에 들어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는 건 정말 무섭고 혼란스러운 일이죠. 예를 들어 다른 디자이너가 튈(얇은 망사)를 가지고 에어로다이나믹 쉐이프를 만들어낼 생각을 한다던가, 오가닉과 메카니컬을 합쳐볼 생각을 한다던가, 제가 언제나 해왔던 방식으로 그들 작업에 메카니컬한 부분을 포함시킨다던가 한다면, 그건 혼란스러운 일이죠.

하이디 : 당신의 작업들을 통해 상당히 많은 유머와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쇼 끝난 후의 파티에서 당신 아버지를 본 적 있는데 댄스 플로어를 돌아다니며 모든 여자들과 춤을 추시더군요. 그분으로부터 그런 성향이 온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요.

후세인 : 저는 애정과 웃음이 넘치는 지중해 문화로부터 왔습니다. 우리는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둔한 데가 많죠. 저는 제 자신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업은 시각하게 하죠. 이건 다른 거에요. 그리고 또한 제 작업에 유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매우 심각할 때, 때때로 그것들은 웃기는게 되죠. Yashmak이나 Living Room 같은 시리즈들 조차도 말이죠. 때때로 심각함과 유머가 결합될 때 우스운 종류의 어떤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너무 뜨거우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제 작품들이 심각하게 웃기는(serious fun)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90203

구글 리더에서 계속 오류가 발생한다

구글 리더 별표 항목(Starred Items)에서 며칠째 에러가 난다.

별표 항목을 공개로 해놓고 공개된 항목 보기 하면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별표 항목을 자주 쓰는데 안되니까 너무 불편하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나로서는 도대체 알 수 없고. 구글 도움말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여기에다가. 좀 보고 와서 고쳐줘요. ㅠㅠ

20090202

사진을 찍으러

하루종일 우중충하다가 사진이나 찍자 싶어서 길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밤에 W호텔과 쉐라톤 워커힐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꽤 괜찮았던게 생각나서 5시 반 쯤에 광나루 역에 도착 호텔 셔틀 버스를 탔다. 금방 도착은 했는데 아직 해가 떠있어서 시큰둥.





나무 계단에서 아직 얼음이 있는 한강을 바라보다가 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싶어 잠깐 돌아다녔더니 금새 다리 끝이 아파온다(요새 좀 아프다, 거의 다 낫긴 했는데 괜히 무리할 타이밍은 아니다). 워커힐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옆에 젊은 중국인 세명이 떠드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할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번뜩 들어 달랑 사진 두 장 찍은거만 들고 다시 셔틀 버스 타고 내려왔다. 강변역까지 타고 와서 테크노마트 푸드 코트에서 살다 살다 최고로 맛없는 마파두부 덮밥을 먹고 무인양품 매장을 어슬렁거리다 귀가. LABO 세일을 하고 있는걸 그냥 지나친게 조금 아깝다. 폭신폭신한 스웨터가 무척 맘에 들었다. 이런 시기에 만나다니 내 팔자가 아닌 거겠지.

그래도 밤에 온 전화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다. 일희일비 하는 자신이 밉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타이밍도 있는게 인생이다.

만사, 음색, 포기

1.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펜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가 문제가 되었다. 사라사 볼펜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커서 다이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케어케 검토 후 사라사, 제트스트림, 유니볼, 무인양품 볼펜 등이 공통 규격의 심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