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2

설날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새해 인사를 두번씩 하네요. 신묘년이 시작되는군요.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단기 4344년, 불기 2555년, 이슬람력 1432에서 1433년으로 넘어가고, 일본은 헤이세이 23년, 민국 100년(중국이라네요), 주체 100년(북한이죠)이랍니다.

그 어디에 계시던 토끼해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통계의 잔인함

거대한 수치라는 건 아무 감정이 없다. 그래서 그런 숫자를 볼 때 마다 복잡한 감정이 된다. 구제역 사태로 돼지 286만 4천 984마리(2월 2일 발표시 까지)가 살처분되었다. 귀여운 돼지, 고민이 많던 돼지, 심약하게 태어난 돼지, 많은 새끼들을 출산하고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던 어미 돼지, 이들 때문에 가졌던 누군가의 기쁨, 고된 노동, 보람 등등이 모두 286만 4천 984라는 숫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통계에 익숙한 고위 공무원들은 이 숫자 안에 들어있는 감정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일삼는다. 286만이 보상금으로, 소나 사슴의 숫자가 또 다른 숫자로 그저 치환되기 때문이다.

이거보다 더 심난한 숫자들도 있다. 40대 사망률, 차상위 계층자의 수, 재개발로 쫓겨난 사람들의 수, 겨울에 길거리에서 얼어죽는 노숙자의 수. 이 모두 숫자로 치환되면 보다 더 효율적이 된다. 겨우겨우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자리를 잡은 철수와 못난 부모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거친 방황의 시절을 보낸 영희, 아들 딸 다 사라지고 박스를 모아 생계를 영위하는 할아버지를 쫓아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냥 3명이 재개발 지구 보상 대상이다라고 말하는 건 쉽다.

마찬가지로 앞뒤 꽉 막힌 상황에서 온갖 고민을 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그저 40대 자살률에 미미한 영향을 미쳤을 뿐이라고 말하면 가벼워진다. 숫자 속에는 감정이 들어있지만 숫자를 숫자로만 대하면 그것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많은 이들은, 그 결정으로 이득을 볼 많은 이들은, 자신이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우리 교육 특유의 상상력 부족은, 그들로 하여금 비인간적인 결정이 끊임없이 계속되게 만든다.

이집트

http://blog.flickr.net/en/2011/02/01/anti-mubarak-protests-in-egypt/

이집트가 민주화를 위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위는 요르단, 시리아로 확산되고 있다. 언제나 민주주의는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도 많은 대가를 치뤘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걸 잘 유지하려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고도의 구조화는 시민을 삶에 치이게 만든다.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돌아볼 겨를도 없고, 똑같은 방송을 공중파 방송국 세군데에서 트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뉴스도 매번 똑같은 단어로 시작된다. 누군가의 생존이 걸린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보도하지도 않는 신문과 통신사는 연일 이집트의 시위 소식을 나른다.

어려운 시절이다. 이집트의 시민들이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시작보다 중요한 건 마무리다. 미국이 어느 순간 적극 개입할 것이고, 미국이 무슨 소리를 하든, 그들은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안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호포읍 이야기

1. 호프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나니 생각나는 것들 몇 가지.  a) 우선 이 영화의 제목은 "호포읍 대소동"이 더 어울릴 거 같다. "대소동"이라는 나름 전통적인 단어가 들어간 최고 제작비 영화가 됐을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