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7

두려운 그들

약 15년전쯤에 전경들을 처음 본거 같다. 아니, 물론 그 전에도 본적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얽혀서 맞닥트린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하철 신촌역에서 올라오는 출구를 다 막고, 방패를 들고 일렬로 주르륵 서서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부르고, 빤히 쳐다보면서 가방과 학생증을 검사했었다.

피할 수 없음. 그때 그걸 느꼈다. 저들에겐 지금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망갈 곳은 없다.

그리고, 그리고. 숨이 막히는 매케한 연기로 가득찬 길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왠지 증오에 차 있었다. 대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향해서 분노하고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사실, 대학 선배도 있었고, 아마 내 나이대에 입대한 동년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더구나 저 일이 끝나면 나와 별 다를 것도 없는 처지로 돌아갈텐데 대체 왜 저럴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러지는 않을텐데' 라는건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개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선, 조직이기 때문이다. 조직. 그것도 공권력이라는 무인칭의 조직. 그것을 감성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된건 훨씬 나중일이지만, 그들이 무서웠다.

전쟁터의 군인이 가지는 비인격성. 사실 인격을 가지면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을테니, 아니 아예 전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테니 군인 비슷한 종류가 가지는 필연적인 속성이다. 전쟁을 반대하거나, 폭력을 반대하거나를 떠나서 그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적군을 동정하는 순간 총을 맞는다, 시위대에 동감하는 순간 방어벽은 무너질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바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다. 아니 나 자신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변신하게 될 것이다. 변신하지 못하면 어차피 써주질 않는다.

나는 전경은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때 느끼는 그 거리감. 묘하다. 영미의 전후세대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전쟁이나 군대를 겪었다면 그들이 지금같은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질 때가있다. 이성이 사라짐을, 희미해짐을 겪어본다는건 견딜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다. 인식론에 관심이 많은 철학도여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방패를 주르륵 깔아놓고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걸 보면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생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무섭다. 가슴속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감이 스멀스멀거린다.

그런 무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내온 사람들이 그래서 부럽다. 공포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않고 돌진하지만, 그 속에 함께 있을때도 있지만, 역시 내 마음 속은 머뭇거리게된다.

아닌척해도, 솔직히 무섭다.

20080526

진화. 그리고 연대

관련한 이전 포스팅은 링크(클릭) 참조.

주말 이틀간 평화적 촛불 문화제는 거리 시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순간적인 진화의 과정을 보고 있는건 경이로운 경험이다. 소수의 주체가 있지만 그것을 선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애초에 선동에 혹할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제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주체는 시민이고,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모이고있다. 애초에 정부 기득권도 좌파도 이 속도를 못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정부 측이 촛불 같은거에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는 계속 나타나고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지 바뀌어야할 시점이 요구되었는데 이렇듯 홀연히 찾아왔고, 시민들의 미시적 패러다임도 홀연히 변신하고 있다. 뭔가 더 해야한다는걸 깨닫고 있다.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시민의 의지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고, 분열되고, 다시 진화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생생하게 보고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촛불 문화제와 길거리 투쟁, 즉 가투는 전혀 다른 일이다. 문화제는 보호를 받지만 가투는 보다 적극적인 공권력과의 싸움이고 현행법상 위법이다. 몇 십년간 집시법 개정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침묵했고, 개정은 실패했다. 이것들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목을 향해 날라오고 있다. 연대의 실패는 이토록 뼈아프다.

가투는 무척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막는 공권력의 입장에선 이건 일종의 전쟁이다. 그들의 임무이고, 반드시 해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의견 전달에 더해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험(잡힌다든가, 다친다든가)을 피하기 위해선 일종의 테크닉적인 요소와 행동 방침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전 가투 경험자들, 즉 운동권 출신들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노하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상태로 가투로 진화하는건 너무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공권력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된다. 이건 매우 힘든 싸움이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기존 운동권에 대한 반감들이 모여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문화제였다는 점에서 여기엔 복잡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과정상으로 보자면 촛불 문화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결과의 측면에서도 원하는걸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하우가 없으면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군중은 쉽게 흥분하고, 막는 자들도 쉽게 흥분한다. 사람의 이성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그다지 믿을만한게 아니다. 만약 4.19나 6월 항쟁처럼 100만명씩 모여있다면, 아니 적어도 몇십만명쯤이 모여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것도 아니다.

어차피 참여자로서도 이젠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도 없고, 누군가 통제할 수 있는 성질도 애초에 아니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거리의 시민들이 더 거대한 대중들로부터 소외받지 않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열망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080519

혼잡 부담금 징수

서울시에서 시내 교통에 혼잡을 유발하는 몇몇 대형 업소를 출입하는 차량에 대해 4000원 정도의 부담금을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당히 전향적인 정책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자동차 사용자들의 권리 의식이 매우 높은 편이고 이에 비해 보행자들의 권리 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라 반대가 심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권리 의식이라는 말은 정책에 대한 반발의 정도를 말한다.

나같은 경우는 육교, 지하도는 존재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돌아가려면 차나 돌아가지 사람이 왜 돌아가냐) 불편해 하면서도 딱히 반발이 많지는 않은게 참 이상하다. 하긴, 육교는 좀 없어졌다.

기본적으로 시내에 차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 오염에 민감한 편인데다가, 석유 값도 천정 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자동차 운행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정책에 찬성하고 있다. 정책이 얼만큼의 차량 통행을 줄일지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긴 한데 4000원은 좀 애매하긴 하다.

얼마전에 뉴욕 타임즈를 뒤적이다가 미국에서도 요새 기름값이 하도 올라 대중 교통 이용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나마 뉴욕이나 보스톤같은 대중 교통 체계가 마련되어 있는 곳은 아직은 괜찮은데 서부와 남부의 driving 중심의 도시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정책이 시행되기 위해선 선결되어야할 보완적인 문제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정책이 공청회 없이 결정되고, 일단 내지르기만 하고 보완책들이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되버리는 듯 싶다. 아마도 빨랑 빨랑 해야되~ 라는 강박관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각나는데로 말하자면 우선 아이를 데려와야할 부모 문제. 우리나라의 보육 시설 체계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고, 미취학 아동들이 있는 부모의 경우 집에다 홀로 내던져놓고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복잡한 시내 대중 교통 상황상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게 쉽지가 않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유아 보육 체계를 개선시켜나가는게 중요하겠지만 그게 당장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게 중요할 듯 싶다. 어린이 놀이방을 강제적으로 운용하게 한다든가, 아이가 있는 경우는 면제해 준다든가 하는 방안은 필요할 거 같다.

이는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하도 아무 차에나 장애인 스티커 붙이고 다니는 인간들이 많아서 그 정책의 실효성 확보도 중요한 일일게다.

이런 것들은 보면 사실 백화점 셔틀 버스의 부활도 생각할 만하다. 예전에는 서울의 버스 업체가 완전 사영이라 그 압력으로 백화점 셔틀 버스가 사라졌지만, 버스 전용 차선제 생기면서 시에서 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준 공영으로 운영되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백화점에서야 손님 늘리려면 알아서 버스는 굴릴테니, 이왕이면 사용하는 버스를 천연가스로 강제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거 같다. 미국과는 다르게 여기는 상당히 밀집된 도시라는걸 염두에 두어야한다.


사실 좀 더 넓히면 자동차나 기름에 붙는 세금도 덴마크나 벨기에 수준으로 더 올렸으면 하고, 배기량에 따른 누진세도 적용했으면 하고 바라기는 한다. 이럴 경우엔 자동차를 이용해 생계 활동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된다. 이걸 해결하려면 등록제, 허가제 등을 통한 면세나 감세같은 여러 방법이 있을텐데 이것도 저렴하게 해놓고 관리 소홀하면 역시나 사기치는 사람들이 잔뜩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걷은 세금으로 자전거 도로나 보행자 통로도 좀 잘 만들면 좋은데 경쟁력 운운하며 도로 만드는데만 돈을 쏟아붓고 있는것도 안타깝다. 여행 나가서 지방 돌아다니다보면 요새는 황당할 정도로 도로를 잔뜩 만들어놨다. 몇대 다니지도 않는 길을 구불 거린다고 길 펴서 하나 만들고, 길 폈는데 좁다고 또 만들고... 경북 산길에 만들어진 새 지방도를 두시간정도 달리면서 건너편에서 오는 차 딱 두대 본적도 있다.

운송업 종사자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생각하면 이런건 통으로 국가나 지방 정부에서 아예 운송 공기업 같은걸 만들어서 운영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운송료 가격이 오를테고 (저가로 때려치는게 힘들어지니까) 대번 대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니까 어렵긴 하다.

하여간 이 나라는 제값 내는걸 과다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자들이 참 많고, 정부는 사람들이 잘 살도록 노력하는것보다 GDP 순위 한칸 올라가는걸 더 좋아하니 그것 참. 잘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오토매틱 - 매뉴얼 차량 문제도 관심이 많은데, 알다시피 오토매틱이 기름도 20%가량 더 쓰고 그러므로 매연도 20%가량이 더 나온다. 즉 지금 거리의 오토매틱 차량만 다 매뉴얼로 바꿔도 공기가 20%정도는 깨끗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홍보계획은 없나 싶다.

어쨋든 결론은, 기름 사용량 줄이는 것도 중요하고 매연 줄이는 것도 중요한데, 그렇다면 차 안타고도 잘 지낼 수 있게 만드는데도 방점을 좀 많이 두십사 하는 이야기다.

이유, 정답, 기억

1. 앤 드뮐미스터 패션쇼를 통해 에델 케인이라는 뮤지션을 알게된 후 음반을 쭉 들어보고 있다. 패션인들이 좋아하는 음악, 패션쇼에 사용되는 음악에 약간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꽤 괜찮은 편이다. 라나 델 레이가 싫어한다는 데 그 이유도 조금 알 거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