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8

컨셉질

1. 블로그를 여하튼 계속 하고 있으니까 트위터에 긴 글은 잘 못쓰겠다. 그런게 생각나면 바로 여기로 옮긴다. (계속)을 써가면서 잘 쓰는 분들을 보면 - 예를 들어 아사히 계정 - 신기하고 부럽다.

2. 무도에 프라이머리가 나온 걸 봤는데 그 컨셉의 얼굴 박스를 다들 요구해서 벗기고, 선글라스가 나오자 그것도 벗은 모습을 굳이 확인들을 했다. 뭐 어차피 프라이머리는 박스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자주 공개를 하니 큰 상관은 없다라고 할 지 모르겠는데 결국 이런 건 얼굴을 보고자 하는 우리의 습성에서 비롯된 거 같다. 하지만 왜 굳이 얼굴을 봐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도도하거나 팜므 파탈 컨셉의 음반 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한 뒤 인터뷰 때는 씩씩하고 어리고 야망이 넘치는 스무살 소녀로 돌아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는 걸그룹 멤버들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활동 기간 중에는 컨셉을 유지하는 게 보는 사람과의 약속이고 그걸 깨트리는 건 역시 컨셉의 연장선 아래 정도에서다. MC가 그걸 깨트리는 건 말도 안되고.

예전에 고양이 컨셉으로 나온 아이돌 가수에게 이시바시가 "이거 괜찮겠어"라고 질문했더니 자신은 없다는 듯이 살짝 웃고 "냥~"하고 대답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데 그 정도가 딱 좋다. (사실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가수의 고양이 컨셉이라는 건 정말 말도 못하게 한심했지만 저 정도라면 이왕 하는 거니 그래도 잘 해라, 활동 기간 몇 주만 잘 버티면 되! 하고 응원하게 된다.

영화배우는 시즌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으니 약간 다르다. 대부분은 영화가 개봉될 때 쯤이면 다른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워낙 영화라는 건 유리된 독립 세계의 느낌이 (내 경우엔) 강하다. 배우 한 명의 캐릭터라는 게 더 길게 스며들어 존재한다.

여하튼 어차피 방송에 나오는 예능이나 음악이나 캐릭터를 만들고 유지하는 걸 보는 즐거움 아닌가. 왜 그걸 굳이 그런 걸 찾아내 박살을 낸 다음 맨 얼굴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또 사람들은 맨 얼굴을 보려고 하는 건지, 왜 시간내서 방송을 보면서 그의 어설픈 날 모습을 봐야 되는 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TV에 나오는 사람의 본 모습 같은 건 관심이 없다. 내 친구도 아닌데 그 사람이 알고보니 이상한 놈이면 어떻고, 괴상한 놈이면 어떻고, 착한 놈이면 또 뭐 할건가. 착한 놈이라고 못 하던 개그가 잘 될 리가 없고, 괴상한 놈이라고 멋지던 노래가 멋 없어지지도 않는다. 물론 범죄라도 저지른다면 그건 내가 사는 사회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수 있으니 관심을 가지게 된다.

스캔들도 연예인-연예인의 경우처럼 이후에 보는 예능 방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둘이 커플인 걸 모른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유머 같은 거)이 있는 것들 외에는 별로 관심없다.

연예인에 대한 인간적 관심이라는 건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가 알고봤더니 바람둥이, 알고 봤더니 성격 안 좋다느니, 알고 봤더니 블라블라... 그런 거 대체 뭐에 쓰는 건지. 그런 점에서 이상하고 괴팍하게 보이는 연예인에 좀 더 호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내 친구가 될 가능성도 없고 심지어 내 지인이 될 가능성도 없는 모니터 안의 존재에 왜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는 걸까. 지나가다 어쩌다 실제로 보면 어 생각하곤 다르게 생겼네 정도의 쾌감은 있을 수 있고 또 많이 양보해서 가십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그러니 상관없는 부분도 있다고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방송에서 일부러 컨셉을 '깨트리는' 모습 따위는 안 봤으면 좋겠다.

3. 오늘은 종일 집에 있었는데 뒹굴거리다 트위터를 보니 김연아 문제로 시끄러웠다. 사실 김연아 문제는 아니고 김연아에 대한 요구 vs 쉴드치는 분들. 이런 사건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데 솔직히 요즘 들어서는 어차피 알아들을 생각도 없는 이들에게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다.

블로그를 오래 하면서 느낀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자를 읽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거다. 물론 종종 흥미롭고 재미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고 그게 기쁘고 많이 배우기도 하고, 그 분들의 인류애에 가끔 감동도 하지만 그건 북한산 계곡에서 사금을 건지는 것과 비슷한 거다.

인터넷의 유명한 유머, "저 뒤에 공간있다구요" 같은 일은 매일같이 광범위하게 반복된다.

그것과 더불어 솔직히 어떤 기대같은 걸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23살의 글로벌 퍼슨이 동료였던 게이의 결혼식 소식에 '곤혹스러운 웃음' 따위를 지었다는 건 믿을 수가 없다. 그 기사 때문에라도 의견 표명하는 걸 듣고 싶어졌다. 만약에 저 기사가 잘못된 거라면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정정 해명이라도 내야 되는 거 아닌가.

4. 최근 트위터에서 쓸데없는 리플라이를 너무 많이 한 거 같아서 줄이고 싶은데, 타임라인을 보다보면 어느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누군가 뭔가 궁금해하는 걸 보면 덩달아 궁금해져서 구글을 뒤적거려보고 있다. 찾아봐야 고맙다는 이야기는 커녕 좋은 소리도 못 들으니 요새는 혼자 보고 마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그래도 실수로 리플라이를 단다.

결국은 손을 묶든가, 트위터를 멀리 하든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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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평화,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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