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8

과정

1. 나는 가수다를 봤다.

2. 복잡한 생각 - 현 시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옹호한다, 분명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 을 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썼다.

3. 그러다가 너무 길어지고, 내용도 이상해져서 그냥 지웠다.

4. 인터넷 커뮤니티 몇군데에서 검색해보니 꽤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5. 트위터에 가보니 윤종신이

동료 7명이 전쟁터 같은 시간대에 땀흘리며 노래합니다..시니컬하게 보지 않았으면..이왕 시작한거..더 많이 보고 듣게 해야죠..7명이 더많은 사람들의 맘을 뒤흔들기만을 바랍니다..그 방법적 고민은 제작진에 맡기고..전 응원할랍니다..

라는 트윗을 남겨놨다.

6. 그리고 나도 '나는 가수다 재미있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7. 선문답도 아니고, 뭔가 부족한 듯 하여 여기에 덧붙인다.

8.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건 프로가 집중하는 모습이다. 가수든 코미디언이든 아니면 전문 직종인이든 일반 회사원이든 마찬가지다.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집중할 터전을 만들어내는 것과 MC들을 통해 유머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 둘의 발란스를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9. 나는 가수다는 지금의 텐션이 유지될 수 있다면, 프로 가수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부분에서는 하여간 최상급이다. 2시간 정도의 리듬을 타야 하는 공연에서도, 보통은 3~4곡 부르는 행사장에서도, 쇼 프로에 나와 한 곡 부르는 순간에도 이런 긴장과 몰입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는 해야 한다. 구조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시마다 마사히코 수필에 마리아 칼라스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가만히 일어나 노래 부르는 머신으로 문득 변신하는 순간을 캐치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 순간은 정말 귀중하고 아름답다.

10. 슈스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의 관심이 아무래도 가창력이라는 한정된 부분에 쏠리기 때문이다. 음악에는 가창력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가수에게 중요한 것도 가창력만 있는 게 아니다. 밥 딜런이 슈스케에 나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사람은 알다시피 노래도 엉망이고 가사 전달력은 특히 더 엉망이다.

11. 편집에 대해 말이 많던데 딱히 이번 회에 불만은 없다. 윤도현이 부른 낯선 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스케치북이니 뭐니 하는 방송들에서 라이브로 본 곡들이다. 따지고 보면 일부러 다시 부를 이유도 별로 없었는데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정도 한다를 알려주고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데 치중했다고 생각한다.

12. 사실 김영희 PD의 방송이 그다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돌아와 쇼 + 감동이라는 코드로 새 영역을 개척했었는데 사실 그때의 재미는 감동 때문이라기 보다 그와 곁들인 일당 백급의 MC들 - 이경규, 신동엽, 김국진 등등 - 의 활약 덕분에 발란스가 맞춰졌기 때문이다.

13. 하지만 무한도전 등등의 프로그램 이후 우르르 몰려나오고, 아주 스피디한 진행의 MC 체제에 사람들은 익숙해졌고, 그러다보니 혼자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 나와도 아무래도 심심하다.

결국 방송은 MC의 유머를 따라가는데 급급하던지, 감동에 포커스를 맞추던 지 둘 중 하나가 되버렸는데 일밤은 그 발란스가 흐트러졌고, 재미가 없어졌다.

15. 솔직히 말하면 오즐과 뜨형도 꽤 재미있게 보기는 했다.

16. 나는 가수다 역시 이런 발란스의 문제가 있다. 결국 김영희 PD는 쇼 - 감동의 발란스에서 감동 쪽에 긴장감을 극적으로 불어넣는 방법으로 이걸 해소할 생각인 듯 하다.

17. 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사실 가창력이니 뭐니 하는 가수들의 경쟁보다도 앞으로 기존 곡들의 재해석으로 승부를 본다는 점이다. 이 기획이 가능한 다양한 장르들을 포섭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걸 집중해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18. 첫회 박정현 일등은 내심 생각했다. 스토리와 감정 기복이 너무나 확실히 드러나게 노래를 불렀다.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이 과연 뭐가 있을까. 정말 훌륭했다.

19. 윤도현의 과감한 베팅에는 조금 놀랐다.

20. 첫회는 이 두 가지 - 18과 19 - 때문에 재밌다고 느꼈다.

21. 어쨋든 다양성의 포섭이라는 점에서 힙합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멀리 보고 있는) 아이돌에게도 문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가수는 가창력 묘기 대행진이 아니라 감동을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계속 연구하는 자들이다.

22. 이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했다. 정리가 안되네... 무슨 소리를 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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