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8

10월 마지막 주

1. 신해철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확실히 느껴지는 감정이 유채영이나 은비, 리세처럼 재능이 잔뜩 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본 것과는 약간 다르다. 2014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뭔가 많은 것들이 끝이났다. 내 프라이빗한 주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 일은 특히나 복잡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약간의 사족 : 사실 굉장한 사람이었던 건 분명하다. 특히 94년 넥스트 2집이 나왔을 때 그 열풍을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굉장히 더웠던 여름...

어쨌든 내 측면에서 보자면 음악적인 면에서는 대략 97년, 사회적인 발화의 측면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효용을 잃었고 거의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그 이후부터는 그냥 어딘가 존재하는 유명한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의 작업들은 머리를 그냥 통과하였다. 즉 딱히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상태다. 물론 어디에선가 그는 계속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 모습이 뉴스로 들어 오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다. 말하자면 옛 기억과 함께 묻혀져 있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1968년에 태어난 사람이 이렇게 떠나간 것도 놀라운 일이고,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세대임에도 이렇게나 옛 기억에 함께 묻혀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만큼 막 덤비며 하고 싶은 말을 크게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사회에 몇 없는데 이런 일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것 역시 놀랍다. 그의 음악에 대한 기억은 그러므로 비록 생생하지만 하나같이 너무나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어제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그와 함께 옛 기억이 잠시 소환되었다. 옛 CD나 LP를 꺼낼 것도 없이 유튜브에 거의 모든 과거가 묻혀있다. 91년부터 94년, 그의 음악이 주변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때를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음악 곁에 있었던 그 시절도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깨어나 옛 기억을 다시 밀어내고 지금으로 돌아온다. 별 게 없어도, 지난하기 그지 없어도, 괴롭기 그지 없어도 여튼 나는 혹시 잠깐이 될 지라도 지금을 살아야 하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최근에 마음이 심난해 지는 상황은 일이 잘 안될 때. 그리고 돈이 없을 때 또는 돈이 있는 데 만날 사람이 없을 때. 후자 둘은 교집합이 없고 그러므로 연속적이다. 결론은 인생은 고통.

3. 제주도에 다녀오고 싶다. 원래는 원고 끝나고 다녀오려고 했는데 지금 기분 같아선 당장이라도 가고 싶다. 특히 곧 겨울이 올 거 같기 때문에... 최소 3일인데 컴퓨터를 들고 다녀오면 속죄의 기분이 좀 들려나...

4. 지금은 끝낸 잠깐의 팬덤 생활 엿보기를 통해 꽤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그중 몇 가지는 경험해 보기 전에는 분명 어려운 종류다. 여튼 대충 그 정도로 정리했는데 이번 백예린 양 사건(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데 이벤트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을 통해 또 하나 알게 된 건 : 스타는 팬과 친목질을 하면 안된다. 처음에 이해가 잘 안됐지만(스타와 팬덤의 개인적 친목은 어쩌면 로망이 아닌가) 이걸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스타와 팬덤 사이에 아주 미묘한 평등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5. ㅇㅂ와 ㄲㅅㅁ을 일종의 파시즘이라고 한다면 그 외 대다수 시민들은 세미한 형태의, 말하자면 적어도 죽음은 두려워하는 타입의 일방주의 노선을 선호한다. 다르다고 말들은 하지만 전체 프레임을 봤을 때 크게 다를 건 없다. 사회가 매우 빠르고 각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회 문제에 해결에 관심이 없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단순한 형태의 역시 매우 빠르고 이해가 쉬운 해결책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봤을 때 거기에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소위 '기성세대' 지식인들이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말하자면 잠깐이라도 안위할 만한 피난처 같은 것들이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마찬가지로 각박했던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 기억해 볼 만한데 여기는 후자에 대한 반감 형성에 치중하느라 전자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했다. 파시즘하고는 약간 다르긴 해서 새로운 단어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추세로 가다보면 자신들은 물론 크게 부정하겠지만 어쩌면 김문수나 이재오가 조금 빨랐을 뿐... 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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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연출,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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