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1

10월 중순

1. 세간의 기준이 어떤 지 명확히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먹방이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걸 먹거나, 좋은 걸 먹거나, 멀리가서 먹거나, 출연자가 포식형이어서 왕창 많이 먹거나 이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맛있게' 먹는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조금은 높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다. 그러므로 젓가락으로 밥알 숫자를 세면서 먹어도 그가 맛있게 먹는다면 그게 훌륭한 먹방이다. 고독한 미식가가 좋은 먹방이고 하정우가 훌륭한 먹방인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기준이 모호하게 보일 지 몰라도 세상에는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먹방이라면 화면으로 봤을 때 맛있게 먹어야 한다. 자기들끼리 있을 땐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화면으로 보면 별로라는 건 사석에서만 웃기는 개그맨과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먹방을 만들고자 하는 스태프에게는 그런 걸 캐치할 눈이 있어야 한다. 이런 걸 가지고 방송 감각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먹방이 인기야? -> 많이 먹는 사람 누구야? -> 강호동 정준하! 같은 단순 루트인 사람에게 다른 훌륭한 기획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어른의 세계란 이상한 일이 많이 있으므로 단편적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다.

여튼 먹는 모습이라는 건 먹는 이의 생김새, 자세, 표정, 입모양, 얼굴색, 입의 배치와 위치, 먹을 때 내는 소리(이건 구강 구조의 영향이 있을 거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먹방인이란 훈련을 통해서는 어지간하지 않는 이상 힘들고 타고 나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버릇의 측면에서 자라면서 얻은 환경과 습성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육성은 어렵고 무수한 우연의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예전에 식신 로드에서 정준하가 "아니, 그런 게 무슨 먹방이야" 하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는 많이 먹고, 빠르게 먹고, 먹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위 대사로 알 수 있는 건 단지 그가 먹방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 뿐이다. 맨친도 비슷하다. 강호동을 집중 조명하고, 분명 맛있게 먹는 면이 있긴 하지만 화면으로 봤을 때 감동할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맨친에서는 정준하를 게스트로 불러 먹방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듯 그건 좋은 먹방이 아니고 그저 많이 먹기다. 그런 거에 찍히느라 사라져간 새우들이 아깝다.

결론적으로 두 방송 모두 현재 출연진과 스탭진으로 훌륭한 먹방은 불가능해 보인다.

2. 여의도에 다녀왔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2013-10-21 16.12.37

3. 길을 걷는데, 좁거나 사람이 많거나, 앞에 있는 사람이 어기적거리면 울컥한다. 이 뿐만 아니라 요새 매사에 너무 조급해 하는 탓이다. 캄 다운, 캄 다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에어 킹으로 바꾸고 산 속에 들어가버릴까 싶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니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 인생이 망한 지점에서 리커버리를 해야 하는데 기운이 없다. 아군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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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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