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5

수경 스님

요즘은 내 바깥에 세상 따위는 없다라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 처지도 갑갑하고, 갈 곳도 없다. 그럼에도 가끔씩 들춰보는 뉴스들과, 망할 월드컵, 그리고 간당간당한 타인과의 관계들을 부여잡고 싶은 번뇌들이 나를 계속 구석으로 몰아넣는 기분이다.

나는 샤머니스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겹치는 운명적인 신호들에 매우 민감하다. 지금 나에게 닥쳐오는 시그널들이 의미하는게 과연 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수경 스님이 잠적하셨다. 수경 스님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 오랫동안 환경 운동을 하셨던 분 정도로만 알고 있다. 얼마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소신봉양하신 문수 스님의 일로 충격을 받고 매우 괴로워 하셨다고 한다.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신 것도 충격적이지만 나는 그 사건이 묻혀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더 충격적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고 믿고 있는 박정희 시대에도 전태일이 분신했을 때 사회적으로 큰 파정이 일어나 대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시위에 나섰고,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문수 스님의 소신봉양은 말 그대로 묻히고 있다. 뉴스로 보도조차 잘 되지 않고, 자세히 쳐다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다.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영혼을 팔아먹는 벌판이 바로 여기다.

얼마전 로마에서 꽤 큰 시위가 있었는데 기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다를게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천박하고, 더 야만적이다.

 

수경 스님이 글을 남겼다. 그 분 처럼 훌륭한 사람은 못되었지만, 나 역시 길을 떠나고 싶다. 그리고 바위 옆에서 졸다가 죽으면 좋겠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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