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1

다수결 반대론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 각자가 다른 환경과 다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있고 원하는 것들이 있다. 그럴때 현실적인 요구와 효율 등의 요청으로 보통 다수결을 한다. 선거 역시 다수결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편의에 의한 선택이다. 다수결이라는건 50명이서 26대 24가 되어도 24명을 소수라는 이름으로 둘러싸고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건 어떤 안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협상과 타협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는 체제다.

어쨋든 왕조 등 독재가 싫다고 만들어진 것이고 다수에 의한 독재 역시 비슷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협상과 타협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이유"라는게 사실은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가 아니던가?

 

A는 100의 만족을 얻고 B는 20의 만족을 얻는 상황과, A는 70의 만족을 얻고 B는 50의 만족을 얻는 사회는 둘다 사회 내에 존재하는 만족도의 합은 120이지만 콸러티는 다르다. 다수결은 효용의 문제로 전자를 옹호한다.

협상과 타협은 무척 테크니컬한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시간과 노력 등 품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두들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타협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뭐든 사회적인 일들은 비용이 들고 시간 역시 주요한 자산 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우리는 협상과 타협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것을 적응하지 못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다. 타협을 하기 위한 자리가 이어지면 탁상공론이니, 결정자들이 앉아서 밥이나 축낸다고 뭐라고 하기 일쑤다. 이런 일들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쨋든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쳐도 그게 원칙이자 정책안을 고르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는건 잘못된 거다. 그러므로 반장 선거 같은건 몰라도 적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급회의 같은 데서 다수결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말하자면 시간이 많을 때, 이런 협상과 타협에 익숙해져야 한다. 길고 지리할 수도 있다. 짜증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고 익숙해져야 이 방법을 배우고 몸에 익힐 수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 소풍을 가려면(중고교 다 반마다 따로 갔었다) 대충 2군데 정도 고른 다음에 투표를 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의견은 당연히 다양하고 누군가는 탈락될 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수 의견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협상을 통해 양보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쉽게 말해 위 소풍이라면 협상을 통해 자신의 안을 포기하는 대신 새우깡이라도 한 봉지 얻어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물론 요구가 과다할 때 이를 제지할 방법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단 한명이 낸 의견이라도 가치를 0으로 만들고 묵살해서는 안된다. 그런게 민주주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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