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0

논쟁

심상정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이에 일종의 토론이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 2.0에 요즘에는 가본 적이 없는데 그곳이 그라운드고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를 보고 알았다. 논쟁의 핵심은 노무현 시대가 신자유주의인가 아닌가이다. 이 논쟁이 의미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토론에 의하면 한미 FTA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 토론은 의미가 있다. 당의 대표와 전 대통령 사이에서 의미있는 토론이 벌어진다는 것은 말한대로 책임 정치의 구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지 모르고, 또 지금 우리나라 경제 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다 내공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라 테크니컬한 면에서 구경 자체에 흥미로운 면들도 꽤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뤄져야할 노무현 시대에 대한 해명과 규정 작업을 조금 앞당기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 이 시점에 심상정 대표가 왜 저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경제사학자도 아니고, 심지어 전 대표도 아니고 현 당 대표다. 만약에 노무현이 자신이 했던 정책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하면 어쩔거고, 아니라고 하면 어쩔건가. 그게 매크로한 시점으로는 의미를 가질 지 몰라도 지금 당장에 무슨 소용이 있나. 논리적 완결성도 좋고 좌파 특유의 도덕적 우위성도 좋다. 그걸 대체 왜 지금, 거기다가 풀어내고 있는걸까.

당 대표라면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당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 더 낫게 만들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체 지금의 경제 정책, 외교 정책 등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군가. 혹시나 노무현이 전 대통령으로서 지금 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지금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나.

왜 이 바쁘고 험난한 시기에 거기가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물론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유의미할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일단 지금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도 끝도 없어보이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되는거 아닐까? 뭔가 계속 하고 있는건 안다. 하지만 결국 하나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거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만 유권자로서 저번 선거의 뼈아픈 패배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내 책임도 일부는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거기가서 토론 벌인다고 GM 대우 같은 대형 제조업체 생산 중단에 따른 협력 업체 문제가, 경제 양극화 문제가, 가스비 인상 같은 물가 문제가, 종부세 폐지에 따른 지방 정부 재정 문제가, KBS, YTN 등에 걸쳐있는 언론 자유화 문제가, 촛불 시위 이후의 시민 권리 문제가, 아니면 대북 일방 주의에 의한 북한과의 외교 문제가 눈꼽만큼이라도 해결되나? 눈꼽 만큼이라도 해결되면 말도 안하겠다. 왜 이 와중에 거기가서 그러고 있는걸까.

옛날 문제를 해결해야 지금 문제도 해결한다면 김대중도 나오고 김영삼도 나오고 한도 끝도 없다. 우리 정치에 쌓여있는 문제들이 한두개인가. 자꾸 잊어버리고 넘어가버려서 문제지 기억만 하고 있다면 지금의 논쟁은 언제든지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나 역시도 명확한 논쟁의 결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그저 하루바삐 노무현이 사실 저는 신자유주의자였어요 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게 아닌가 모르겠다.

적군이 몰려오고 있는데 이순신이 옳으니 원균이 옳으니 싸우면 뭐하냐. 일단 일본군부터 무찌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현 정부 문제만 가지고도 골치가 아프다. 빨리 빨리 다음 선거 대비하고, 지금의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정권 무찔러야지 꼴보기 싫어서 못살겠다 정말. 내가 투표하는 사람들은 대체 언제쯤이나 당선되는거야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해결 방법부터 이야기해야 하는게 순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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