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5

장마, 방수, 방법

1. 최근 몇 년 간 장마는 시즌만 존재하지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마가 끝난 후 집중 호우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가 찾아왔고 며칠 째 흐리고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 시즌에 내리는 엉뚱한 비도 많았는데 이번엔 건조한 기단과 습한 기단이 만난 사이에 있는 제대로 된 장마다.

하지만 세상 일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이번 장마는 마치 습식 사우나에서 분무기를 뿌리는 듯한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지 말까 하면 어느새 안경이 물방울로 흐려지고 우산을 쓸까 하면 들고 다닌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영 별로다. 우산 이란 거 자체가 이 정도 비에 들고 다닐 무게가 아니다.

아주 얇아서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공기도 잘 통하고 좋은데 방수는 되는 비옷 같은 건 만들 수 없는 걸까. 고어텍스에 기대를 걸 만한 종류는 아닌 거 같다.

2.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습한 게 문제다. 습기와 열기는 부패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세상이 다 썪고 있다. 장마가 끝나면 옷장 열어놓고 제습기를 며칠 돌려야 겠다.

3. 저번 주는 습하고 더웠고 이번 주는 비오고 덥다. 비슷하지만 임팩트를 주는 종류가 약간 다른 데 저번 주는 더위였고 이번 주는 습기다. 그러면서 느끼는 게 역시 나는 습기 쪽에 훨씬 약하다. 더위는 차라리, 어디까지나 차라리지만 괜찮다. 이 열기 속의 넘치는 습기는 역시 기분이 나빠지고 컨디션이 악화된다.

4. 사실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할인 시즌을 이용해 이너용 다운 자켓을 하나 구입했다. 그렇지만 택배로 도착한 옷을 시착 해보는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5. 작년에 안팔려서 재고로 넘어온 다운 자켓이 250만~300만벌 가까이 되는 데 올해 감산 계획이 없다는 뉴스를 봤다. 롱 다운 파카를 감산한다고 해도 숏, 사파리 타입 등을 늘려 수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출하량을 줄여 마이너스 성장을 감당할 주식회사는 많지 않지... 그런 곳이 있다면 주식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없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인데 올해 역시 겨울이 따뜻하다면 주인이 없는 다운 자켓 500만~600만 벌 가까이가 국내를 떠돌게 된다. 어쩔려고 이러는 거지...

이 사태를 극복하려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나서서 부시크래프트, 겨울 트레킹 비박 라이프 같은 걸 적극 홍보하는 수 밖에 없지 않나. 길바닥에서 잠을 자보세요! 다운 파카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따뜻한 겨울에 다운 파카를 입는 어번 라이프의 즐거움 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맡겨 보시든가...

아웃도어의 갈 길은 역시 1번의 반팔 티셔츠만큼 가볍고 부담없는 데 방수는 되는 옷이다.

6. 번역을 하나 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납득 찮은 점이 많지만 좋아하는 책이라 그냥 별 말 없이 하기로 했다. 물론 롤스로이스 뒷자리에 앉아 인생은 왜 이렇게 허무한 걸까 같은 걸 고민하는 인생은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좀 많이 팔리고 그래서 각종 패션 책 번역 붐이 일어나 일이 많아지면 참 좋을텐데 대체 무슨 방법이 있는걸까.

7. 다음 주에 인터뷰가 있는데 좋아하는 옷과 좋아하는 책을 들고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주 어려운 문제군... 딱히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바람만 불어도 잊어버릴 아주 작은 감정을 찾아내 증폭시켜야 하는데...

8. 작년 겨울 몇 가지를 대비한 덕분에 그래도 자려고 누웠을 때 곤혹스럽고 세상에 대한 원망이 한없이 쌓이고 그렇지는 않다. 시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덥진 않고, 쾌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눅눅하진 않다. 작년에 비하면 나아진 거 같긴 한데 이상하게 잠은 잘 안 온다.

습도 60%에 섭씨 26도의 동굴 같은 곳이 있다면 이주해 들어가 이번 여름을 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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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 음색,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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